너와 나의 인연은 짧은 듯 길어서
끊어진 것 같으면서도 이어져있는 것 같아.
내가 너를 계속 보았더라면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처음 만났을 때처럼 너는 여전히
내게 한없이 작고, 예쁘고, 안쓰러워.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해.
그 아이와의 인연의 시작은 2012년 끝에 온 겨울이었고, 오로지 내 욕심이었다.
내가 부린 몇 안 되는 욕심 중 어쩌면 가장 잘했고, 가장 후회한다. 동물을 좋아했지만 부모님의 허락 없이는 집에서 키울 수 없었고, 길을 다니면서 마주치는 길고양이들이 안쓰러워지면서 욕심을 부렸다.
그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면 동네도, 아니 골목길 앞이 깨끗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밥을 챙겨주기 시작했다.(생각해보면, 앞에 골목길 이유는 정당화시키기 위한 핑계가 분명하다.)
처음에는 간식으로 시작했다가 얼마 후부터는 본격적으로 밥을 사서 챙겨줬다. 그렇게 챙겨주기 시작할 때 만난 아이였다. 당시에는 밥 먹으러오는 아이들 중에서도 작아서 '꼬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마 고양이의 삶을 시작하고 1년이 되지 않았을 때였던 것 같다. 다른 고양이들도 잊을 수 없지만 꼬마는 유독 생각나는 고양이 중 한 마리였다. 삼색 털을 갖고 있던 그 아이는 내게 밥을 꾸준히 먹으러 찾아왔고 나와 만나고 6-7개월이 되었을 때 아기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찾아왔다. 아기 고양이 세 마리의 엄마가 된 꼬마는 왠지 모르게 더욱 안쓰러웠다. 꼬마의 아기 고양이 중 한 마리는 얼마 되지 않아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우리 집 차 옆에서 떠났고, 또 다른 한 마리는 먹을 것을 줘도 먹지 못하고 기운이 없어서 몇 번의 시도 끝에 병원을 데려갔는데 선천적으로 영양섭취가 힘든 몸이라 병원에서 버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 가기 전 그렇게 울면서 제 어미를 찾아대는 탓에 꼬마가 와서 경계를 하고는 했는데 병원에 가기 직전에는 아기도 울지 않고, 꼬마도 그저 바라면 보고 있더니 아무래도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아기 고양이의 소식을 듣는 나도, 그 소식을 전해주는 병원 원장님도 소리 죽여 울었다. 그렇게 세 마리 중 두 마리가 일찍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노란색 털을 가진 한 마리가 남았다, 우리는 그 아이를 '노랑이'라고 불렀다. 꼬마는 제 새끼 노랑이와 함께 매일같이 찾아와 밥을 먹고 갔다. 꼬마와 노랑이가 제일 내게 곁을 잘 내주어서 적당히 경계하면서도 적당히 와서 이따금씩 감동을 주곤 했다. 노랑이가 점점 크고, 1년이 되어갈 때 즈음 꼬마는 나의 집 근처를 떠나 활동영역을 바꿨다. 그 후에는 밥을 먹으러 오는 날이 현저히 적어졌고 볼 수 있는 날도 적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을만하면 마주치곤 했는데 그럴 때 '꼬마야~'하고 부르면 대답하고는 쫓아오곤 했다. 그러면 나는 또 먹을 것을 내어주었다.
내가 도서관을 그만두고, 커피를 시작하면서 사정이 어려워졌고 내게 밥을 먹으러 오는 아이들도 몇 없어서 나는 길고양이들을 챙기는 것을 그만두게 되었다. 다행히 동네에 한 분이 챙겨주시고 계셨기 때문에 걱정이 덜했고, 나만 눈을 가리고 못 본 척하면 되었다. 그렇게 길고양이들과의 인연이 끊어진다고 생각할 때, 꼬마가 찾아왔다. 뱃속에 생명을 품어서 배가 볼록해진 상태로 말이다. 나를 경계하면서도 '꼬마'하고 부르니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 답을 듣고 나니 이 아이가 나를 기억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집으로 들어가 우리 집 막내 고양이의 간식을 꺼냈다. 경계하던 아이가 금세 먹을 것에 집중했다. 그 후로 해가 바뀌고 두, 세 번을 같은 모습으로 찾아왔다. 아무래도 먹을 것이 꼭 필요한 혼자가 아닌 시기에 내게로 오면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온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잊을만하면 꼬마는 찾아왔고, 내가 만들고 내가 끊어버린 그 묘연이 나는 그럴 때마다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