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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오 Apr 16. 2020

우리들만의 판타지.

and ; 시즌1의 끝과 시즌2의 사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햇빛이 따사롭던 캠핑장에 급작스럽게 비가 찾아왔다. 여름 장마같이 굵은 장대비가 쏟아지다가 이내 비가 잦아들더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간헐적으로 몰아치는 바람은 캠핑장 한쪽으로 몰리며 돌풍으로 변했다. 이로 인해 유하 아빠네 원목 폴대가 순식간에 부러졌다.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만, 자칫 큰 사고가 될 수도 있던 사건이었다. 산간 속에 위치한 캠핑장이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말로 단정하기엔 정말 이상한 날씨였다.


오락가락하는 비로 인하여 우리는 상자 속에 잠자고 있던 비옷을 꺼내 입었다. 하나는 올리브 그린과 민트의 중간 정도쯤 되는 나뭇잎 무늬의 비옷이었고, 다른 하나는 빨간색 체크무늬의 비옷이었다. 모두 일 년 전 생애 두 번째 캠핑에서 비를 맞이한 후, 곧바로 이케아에서 사두었던 비옷들이었다. 그로부터 일 년 만에 처음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었다.


어디서 그런 아이템을 가져오셨어요?


한 번은 초록색 비옷을 꺼내 입더니, 그다음에는 빨간색 체크무늬가 나오니 옆에서 보고 있던 유하 아빠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아 그게.
캠핑 두 번째 만에 비를 맞는 바람에
곧바로 사뒀죠.
근데 일 년 전에 사고, 지금 처음 입어봐요.


곧바로 웃으면서 비옷을 사게 된 일화를 말했더니 유하 아빠가 '그랬군요'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처럼 기분 좋은 웃음과 함께 말이다. 바로 그때, 불현듯 깨달았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 씨가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1번 타자 데이브 힐턴이 2루타를 날린 순간, 자신이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깨달음을 얻었던 것처럼.


난 우리의 캠핑 이야기가 글이 되겠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 글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줄지 아닐지를 떠나서, 지금까지 겪었던 우리 가족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글로써 보일 수도 있겠다는 것을 말이다.


비온 뒤 하늘에 뜬 무지개 @geumjiokyeop






글을 써보는 것은 더뎠다. 현생이 무척 바쁘다 보니 시간을 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남편에게도 이런 글을 써볼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보는 것도 한참 뒤에나 가능했다. 솔직히 뭘 써야 보여주기도 하고, 물어보기도 하지.


워낙 이것저것 관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인지라 또 대충 얘기했다가는 이번엔 또 글이냐며 남편이 타박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20년 넘게 되고 싶어 하는 꿈이 작가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으므로 어쩌면 남에게 보여줄 만한 이야기를 써서 보여준다면 남편도 이번엔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글을 한자, 한자 써보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글은 수월하게 써졌다. 이래서 사람들이 경험에 기본 한 글을 쓰라고 하는 걸까? 20년 가까이 픽션만 생각하던 나에겐 정말 생소한 작업이었다. 첫 번째 글의 초안을 남편에게 보여줬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남편은 잘 썼다며 칭찬까지 해줬고, 마침 TV에서 캠핑 클럽이라는 예능 프로도 나오고 있었으니 시기적으로 적절하다는 반응을 보여왔다. 내친김에 우리들의 캠핑 이야기를 브런치에 연재하는 게 목표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독립출판까지.


그러자 남편은 브런치를 처음 알았단다. 확실히 글을 친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겐 브런치는 관심 밖 세상인가 보다. 솔직히 고백하면 난 브런치가 처음 론칭했을 때부터 알았었다. 하지만 곧바로 작가를 신청해서 되어야만 쓸 수 있다는 사실과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소설보다는 비소설에 더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단념하게 되었지만.






소설이 아닌 비소설로서 나의 경험과 생각을 글로 써본다는 것은 내게 있어 첫 경험이었다.


항상 닥쳐있는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난, 필연적으로 소설에 빠져들었고 그중에서도 판타지 소설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20년 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소설은 판타지임에 변함이 없을 것이다. 판타지 소설은 현재의 나를 잊을 수 있는 탈출구이자,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기폭제였다. 그런데 상상력 하나 없는 에세이를 쓰자니 이건 비유하자면 소금 없는 고기구이 같은 느낌이랄까? 감칠맛이라곤 하나도 없는 담백한 이야기를 과연 쓸 수 있을까?


그것이 과연 플랫폼에서 받아들여질까?


글을 쓰는 동안 브런치 작가 성공기와 실패 기를 많이 찾아봤다. 정말 많이. 대부분 브런치 작가가 된 사람들의 후기는 비슷했다. 자기소개에 대해 성실히 할 것,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등을 첨부하라는 것, 그리고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쓰라는 것. 여기서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300자 자기소개였다. 생각보다 300자는 너무 짧았다. 하고 싶은 말을 주저리 쓰다 보니 300자는 그냥 훅 지나가버렸다. 확실히 정리된 나의 소개가 필요했다. 나를 설명할만한 키워드가 별로 없는데도 이렇게 어려운데, 자신에 대해 어필할 부분이 많은 사람은 어쩌지?






첫 깨달음부터 브런치 작가 신청까지 대략 2개월이 넘게 걸렸다.


출퇴근 버스에서 폰으로 글쓰기, 점심시간 카페에서 글쓰기, 저녁시간 아들을 재우고 난 뒤 남는 시간을 활용한 글쓰기. 내가 하루 중에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4시간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시간 또는 분 단위로 쪼개져 있으니, 실제로 글을 집중해서 쓸 수 있는 시간은 1~2시간이 채 안될지도 몰랐다. 글이라는 것이 ‘아~ 이제 글 써야지!’ 하면 곧바로 타 다다다~ 하고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실제로 글 하나가 나오기까지는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다. 거기에 퇴고의 퇴고의 퇴고와 같은 무한 퇴고 루프를 타면, 글 하나가 나오는 시간은 무한정 늘어난다.


우여곡절 끝에 신청한 브런치에서 며칠 뒤 선물이 마법처럼 날아왔다.



브런치에서 날라온 선물같은 편지



그때의 기쁜 감정이란.


스스로 20여 년간을 작가가 되고 싶다고 꿈을 꾸어왔지만 실제로 그 비슷한 것에 다가간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나를 작가로 불러주면서 나의 글을 기다린다고 하는데 행복하지 않을 글쟁이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단연코 그날은 2019년 들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사실 2019년은 나와 우리 가족에게 있어 가장 불행했던 한 해였기에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은 더더욱 행복한 순간일 수밖에 없었다.


정초부터 우리 가족을 늪으로 몰아갔던 시아버님의 중증 암 진단에서부터, 더운 여름날 시골에서 올라온 친정아버지의 암 진단까지. 일 년 한 해 동안 우리 가족은 병이라는 커다란 늪에 빠져 있어야만 했다. 그것만 있었을까? 우리 가족을 한순간에 뒤흔들어버린 크고 작은 사건들이 연달아 몰아쳤다. 그 안에서 우린 그저 웅크리고 숨죽이고 있어야만 했다. 제발 이 시간들이 얼른 지나가기를 무탈하게 해결될 수 있기를...


그 우울의 늪에서 우리 셋은 캠핑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만이 우리의 살길인 것처럼.


언젠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캠핑이 남자의 로망이 아닐까라고. 로망이라는 것이 현실에서 이룰 수 없거나 힘든 허구의 것을 말한다면, 어쩌면 누군가의 로망인 캠핑은 현실에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일종의 판타지 같은 것이 아닐까?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우리만의 판타지.


실제로도 캠핑을 떠나 있을 때면 현실을 어느 정도 잊을 수 있었다. 캠핑장 안에서의 우리 셋으로 집중할 수 있었다. 정말 우리 가족. 나와 남편과 아들의 시간으로 말이다.






깊은 늪이었던 2019년이 저물고 2020년이 떠올랐다. 우리 가족의 캠핑도 시즌 1이 저물고 시즌 2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판타지를 꿈꾸기 시작했다. 앞으로 시작될 [우리는 캠핑을 갑니다 시즌 2]는 우리의 네 번째 집과 함께 전국을 누비게 될 듯하다. 아직은 그 시작 단계지만.


어쩌면 시즌2는 호흡이 긴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기다림의 여유와 새로운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천천히 나아가야지.


나도 아직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에세이를 이제 시작하려 한다.


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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