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오 Jun 08. 2020

3화 캠핑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우리는 캠핑을 갑니다] 시즌 2

나중에 크면 엄마랑 결혼할 거야.


어느 날 목욕을 하던 아들이 말했다. 순간 이게 말로만 듣던 결혼 드립인가 하여 잠깐 동안 아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말간 눈동자가 지금만큼은 진심이다. 기쁨과 당황, 웃음이 뒤섞인 감정으로 물었다.

“왜 엄마랑 결혼하고 싶은데?”

“결혼은 제일 사랑하는 여자와 하는 거잖아. 지금 내가 제일 사랑하는 건 엄마니까. 엄마랑 결혼하려는 거지.”

묘하게 논리적이었다. 윤리적으로 직계가족을 포함한 근친과는 결혼을 하면 안 된다는 문제를 떠나서 그냥 논리적인 주장이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 아들에게 유전자가 어떻고를 설명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기에 웃으며 다른 부분을 지적했다.

“그럼 좋은데. 네가 크면 엄마는 아마 꼬부랑 할머니일 텐데 그래도 괜찮겠어?”

그러자 아이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안돼!! 시러!!”

아들은 자신이 커도 우리들의 모습은 언제나 지금의 모습일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자신의 엄마, 아빠가 늙는다고 생각하니 충격받은 듯했다. 그런 아이 얼굴에 결국 내가 한발 물러섰다.

“그래. 나중에 커서 그때도 네가 엄마를 제일 사랑하면 결혼하자.”

그러자 안심한 듯 아들은 물놀이에 집중한다. 그러다 문득 다른 게 생각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나중에 엄마랑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또 커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또 낳고, 낳고, 낳고, 낳고 하면 엄-청 많아지겠다...”

입을 장난스럽게 벌려가며 말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그저 난 웃음 지었다. 차마 그때엔 할머니 할아버지도, 어쩌면 엄마와 아빠도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하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만화가 있었다. 그 만화의 주인공 남자애가 아버지에게 울면서 말하는 장면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남자애는 죽은 엄마를 잊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울면서 이렇게 말한다.


가족은 느는 거야...라고.


그 남자아이는 유년시절, 엄마와 할아버지, 할머니를 차례로 잃어가면서 겪은 커다란 상실감을 갖고 있었다. 그랬기에 아직도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새로운 인연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거의 십여 년 전에 봤던 만화책 한 부분을 아직도 기억하는 것은, 나 또한 가족을 잃어간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을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와 아빠, 우리 4형제자매와 함께 보냈다. 총 9명이나 되는 대가족은 그때 시골에서도 흔치 않은 대가족이었다. 하지만 시간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고 하던가. 9명이나 되는 시끌벅적한 집은 조금씩 생기를 잃어갔다.


중학교 때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수업을 듣는 동안에도 몰랐었는데, 집에 올라가는 길에 들린 보건지소에서 동네에 초상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얼른 집에 올라가 보니 우리 집이 초상집이었다. 할머니가 주무셨던 방은 관을 모신 방이 되었고, 우리 집은 장례식장이 되었다. 그땐 생애 첫 장례식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일반적인 장례의 모습이라 생각했었는데, 어른이 된 지금에 돌이켜보니 그건 이제 찾아보기 힘든 마을 장례식이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여름 감자를 캐서 처음으로 쪄서 먹던 날이었는데, 하얀 거품을 물고 돌처럼 굳어버린 할머니를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이후로 포슬포슬 찐 여름감자를 보면 할머니가 떠오른다.


대학교에 들어서는 한없이 작아져만 가시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뼈만 남은듯한 모습으로 의료기기에 의지한 채 우리 사 남매가 내려와 얼굴을 보일 때까지 눈을 감지 못하시던 할아버지는 그렇게 돌아가셨다.


북적이던 작은 시골집은 우리들마저 도시로 가고 아빠와 엄마 단 둘만이 남았다. 언제까지고 젊고 건강하실 것 같았던 그 두분도, 어느새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셨다.


만약에 내가 소설이 아닌 글을 쓴다면 아마 그건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만큼 내게 가족은 아주 중요한 키워드였고 동시에 트라우마이기도 했다. 어쩌다 보니 지금은 캠핑을 주제로 한 에세이를 쓰고 있지만, 사실 큰 틀에서는 가족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줄곧 내가 말해왔듯이 우리는 캠핑을 통해 가족이 되어감을 배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과 하는 캠핑, 아들에게 가족을 물어보면 친가와 외가를 모두 말한다. 아들에게 있어 가족은 ‘모두’다.







어렸을 적에 친구들을 보며 부러웠던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가족과 함께 주말에 드라이브를 다녀오는 것이었다. 왜냐면 우리 가족은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다 같이 놀러 가기엔 가족이 많기도 했거니와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우리는 가족이 공동으로 기억하는 추억 따윈 거의 없었다. 그나마 공동의 기억이라고는 명절에 다 함께 모이는 일뿐이었다. 그마저도 항상 좋은 분위기로 끝나지는 않았지만.


상황이 그렇다 보니 가족이 공유하는 기억은커녕 가족 구성원의 누가 뭘 좋아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공동의 취미나 여가는 사치였다. 그렇게 보낸 나와 나의 형제자매의 유년시절은 우리 남매에게 가족이라는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랬기에 남편과 아들과 함께 보내는 캠핑의 시간은 내게 있어 무척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점점 더 빠르게 그리고 아쉽게.

하나의 가족을 이루고 아들을 낳고 기르며 시간의 흐름을 더욱 강하게 느끼고 있다. 흔히 시간의 흐름을 우리는 속도에 비유하고는 한다. 10대에는 10km/h로 20대에는 20km/h로 30대에는 30km/h로 40대에는 40km/h로 흐르다 종국에는 순식간에 죽음으로 끝나고 마는 그런 이야기. 과연 그럴까 싶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어느새 30년 이상을 살아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도시에서의 시간은 더욱 빨랐다.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시간은 말할 것도 없을 정도로 바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밥 먹고 회사에 또는 유치원에 간다. 저녁에야 끝나 집에 돌아오면 저녁을 먹고 씻고 잠이 든다. 매일의 반복 속에서 시간은 무한으로 빠르게 돌아간다.

주말에는 하루 종일 집에서 장난감 놀이와 TV, 태블릿으로 보는 유튜브와 넷플릭스로 하루가 채워지고, 주말은 각자의 시간으로 변한다.

그렇다면 캠핑에서의 시간은 어떨까?

사실 캠핑에서의 시간은 때론 느리게 가고, 때론 너무 빠르게 흘러가기도 한다. 제목에서처럼 절대로 거꾸로 흐르는 일 따위는 없다. 하지만 캠핑에서의 시간만큼은 우리가 가족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진다. 한 명은 TV 앞에 한 명은 태블릿 앞에 한 명은 침대 위에 있던 게, 캠핑에서는 한 테이블에 한 자리에 같이 붙어 있다. 그 시간만큼은 오롯이 가족에게 주어지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가족이었던 시간은 점점 늘어난다.

결국 시간의 속도와 상관없이 우리는 캠핑의 시간 속에서 가족의 시간을 발견한다. 어쩌면 그건 우리에게 있어 가족의 시간을 벌어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가 함께했던 눈부신 시간과 나날들을 통해서 말이다.


가족과의 캠핑 시간은 가족에게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시간이 된다.







작가의 말


우리는 캠핑을 갑니다 시즌 두 번째 이야기는 현재 시점과 거의 동일하게 가기 때문에 매끄러운 이야기의 진행을 보시긴 어려우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첫 번째 브런치 북도 매끄러운 진행이었는지 되묻고 싶지만, 부족함에서 최선을 다해보고 있습니다.)


제 글이 누군가에게 공감이 되고 힐링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2화 남들은 쉽게 하던데, 왜 우리는 이렇게 힘든 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