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권하는 여자: 외전
"이렇게 하면 담당자가 없어도 누구나 이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며 연간 0억을 절감할 수 있게 됩니다."
비용 절감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직원의 입에서 이런 말이 흘러 나왔다.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지금 저 사람은 자신의 노동력을 여러 직원에게 분산시켜 자신의 노동을 의미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자신의 업무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담당자, 즉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없애버리는 중이었다.
회사가 비용 절감 아이디어를 고민하라고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의 업무에서 찾는다.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아이디어라는 것은 담당자를 없애버리거나 업무를 없애버리거나 하청업체 비용을 후려치는 일밖에 없다. 어느 쪽도 즐거운 일이 아니다.
"기존에 거래하던 업체보다 단가가 낮은 업체로 교체했더니 비용이 연간 0억 절감되었습니다."
발표 가운데 이런 말도 나왔다.
세상에 싸고 좋은 것은 없다. 가격이 싸다면 품질이 낮을 테고, 가격이 싼데도 불구하고 품질이 좋다면 누군가의 노동이 착취되고 있음을 의심해봐야 한다. 약자일 수밖에 없는 하청업체를 낮은 단가를 기준으로 선정하고 그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하다면 당연히 단가는 무한대로 낮아진다. 회사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택배비 2500원이 좋은 예다. 택배비가 2500원이 되어서 소비자는 만족하겠지만 그로 인해 착취당하는 택배노동자를 생각해보자. 큰 회사의 노동자는 작은 회사의 비용을 후려치고 작은 회사의 노동자는 착취당하거나 더 적은 비용으로 또다른 하청업체를 후려치고 있을 것이다. 물론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는 그들이 착취를 당하건 말건 상관이 없다. 비용을 절감하지 않으면 내 모가지가 날아갈 판이니까.
그런데 웃기는 건 비용을 절감하지 않으면, 그래서 회사가 이익을 내지 못하면 내 모가지가 날아갈 판이니 열심히 비용 절감 아이디어를 구상하지만, 그 아이디어란 대체로 자신의 일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 대부분이고 그렇게 되면 언젠가 그 자리는 사라진다. 이렇든 저렇든 결과는 똑같다. 어쨌거나 같은 결론이 나지만 개미들은 언제나 열심히 일한다. 열심히 성과를 내려 애쓰고 생산에서 성과가 없으면 비용을 줄여서라도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보려 하지만 비용을 줄인다는 건 스스로의 목에 칼을 대거나 누군가의 심장에 칼을 찌르는 일로 이어진다.
비용 절감 아이디어 발표 후에 이어진 '대표이사 한말씀'에서는 "열심히 하는 것은 가치가 없다. 가치(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지금 해고당한 사람들이 일을 못해서 짤리는 게 아니다" "이것은 구조조정이 아니라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일이다"라는 말이 반복되었다. 저 말도 안 되는 발표들을 들으며 복잡했던 머릿속에서 갑자기 텅- 소리가 났다. 또 다시 귀를 의심했다.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구역질이 났다.
회사 구내식당에는 잔반의 양을 비용으로 환산해서 '여러분은 어제 000원을 버리셨습니다' 하는 문구가 걸려 있다. 그 밑에는 잔반을 줄이는 사소한 습관이 회사의 자산, 비용을 아끼는 습관으로 이어진다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잔반을 줄이는 것이 회사의 자산과 비용을 아끼는 일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개소리인가.
구내식당 밥은 공짜가 아니다. 끼니당 얼마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이 돈은 월급에서 차감된다. 개인이 비용을 지급했고 잔반을 남겨 음식을 버리게 된다는 게 왜 회사의 비용을 낭비하는 일인가. 잔반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 먹는다면 비용이 절감되는 것인가? 차라리 잔반을 줄이는 것이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라고 했다면 수긍했을 것이다.
회사의 모든 것이 비용의 문제로 귀결된다. 모든 것이 '비용 절감'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교통비를 줄이고 사무용품 구입비를 줄이고 회식을 줄이고 제작비를 줄이고 하청업체 단가를 줄이고 사람을 줄인다. 업무에 필요한 모든 제반비용이 줄어들고 급기야 해당 업무를 진행하던 담당자까지 사라지면 남은 인력의 업무는 점점 늘어나고 노동 시간과 강도가 올라간다. 이 모든 것은 '효율적인 조직 운영'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된다.
블랙홀이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바닥이라고 생각하는데, 내일이 되면 더 깊은 바닥을 목격한다.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다. 어디서 멈출지도 모르겠다. 끝이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