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감당할 수 있는 똥 찾기

퇴사 권하는 여자7

by 호밀밭의 사기꾼

슬픈 일이지만 기대치를 낮추면 만족감은 올라간다. 업에 대한 하향평준화를 지양하자고 외쳤지만 스스로 만족감의 기준을 낮추지 않으면 이 현실을 견디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더 나은 것, 더 좋은 것, 더 괜찮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 좋겠지만 우리가 지금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 세계에서 그것을 꿈꾸기란 점점 더 어려워진다.


퇴사를 결심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자, 퇴사를 고민할 때 갈팡질팡하며 스스로에게 내던지는 말이 바로 "어딜 가나 똑같을 것이다"라는 말이다. 다른 데라고 다를까. 그렇다, 다른 데라고 크게 다를 거 없다. 대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곳인가, 아닌가 하는 차이가 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퇴사를 결심할 때는 보통 1. 여기만 아니라면 어디라도 좋다 2.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종류의 똥은 견딜 수 없다, 둘 중 하나를 희망하게 된다. 뭐 1번이나 2번이나 같은 말일 수도 있는데, 2번을 기준으로 삼은 선택은 아주 중요하다. 종종 저 사람은 어떻게 이런 똥같은 환경에서 저렇게 잘 버티고 있지?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건 여기가 나에겐 최악의 똥이지만 그 사람에게는 견딜 수 있는 똥이기 때문이다.


어딜 가나 똑같을 것,이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물론 회사는 대체로 똥같다(라고 생각하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다). 노동력과 돈을 교환한다는 것은 어딜 가나 쉽지 않다. 어딜 가나 병신같은 상사가 존재할 것이며, 어딜 가나 지독한 야근과 철야도 존재할 것이고, 어딜 가나 연봉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며, 어딜 가나 괴상한 시스템은 존재할 수 있다. 그런 환경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니 자신에게 맞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똥을 찾아가는 것은 중요하다.


지금 퇴사를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를 먼저 생각해보자. 연봉이 불만이었다면 어찌됐건 여기보단 연봉이 좋은 곳을 찾는 것에 주력해야 할 것이며, 싸이코 같은 상사가 문제라면 철저한 수소문을 통해 비교적(?) 정상적인 인간이 많은 곳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징글징글한 야근과 과도한 업무량이 문제라면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이 행해지는 곳을 찾아야 할 것이며, 회사가 망해가는 것 같으니 탈출해야겠다면 전망이 밝은 회사를 찾아가야 할 것이다.


물론 자신이 찾는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회사는 흔치 않을 것이다. 가령, 지독한 야근이 싫어서 퇴사하려고 하는데 새롭게 찾은 이직처가 업무량이 적어 칼퇴가 가능하지만 연봉을 낮춰야 할 수도 있다. 현재 직무가 자신에게 맞지 않아서 다른 분야를 해보고 싶은데 분야는 딱 맞지만 살인적인 업무량으로 정시 퇴근은 꿈도 못꾸는 회사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지금 견딜 수 없는 똥을 피해 이직을 한다면, 견딜 수 있는 똥은 무엇인가 하나씩 체크해보는 일이 필요하다.


퇴사 사유가 남들에겐 하찮은 이유일 수도 있다. 그런 건 전혀 신경 쓸 것 없다. 그들이 인생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데 "그깟 이유로 퇴사를 한다고?"라는 시선이 두려울 게 뭐가 있나. 너에겐 '그깟 이유'가 나에겐 '절박한 이유'일 수 있다. 내가 무슨 이유로 퇴사를 하건 낫유어비즈니스다. 너나 나나 다 같은 똥물에서 뒹굴고 있다. 어차피 퇴사를 결심했다면 '나는 자신에게 맞는 똥을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주체적인 인간이다' 생각하며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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