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는 이해하는 거 아녜요

퇴사 권하는 여자8

by 호밀밭의 사기꾼

"회사의 입장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야."

"그만 좀 이해해. 우리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왜 우리는 맨날 회사를 이해하고 상사를 이해하고 맞춰주고 배려하냐. 이해는 강자가 해주는 거지 약자가 하는 거 아니다."


동료들과 서로의 고충을 나누며 수다를 떨 때, 동료는 항상 '그 입장도 이해는 된다'고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해 좀 그만하라'고 말했다. 특히 상사와 대화를 하고 난 직후에는 뭐에 홀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방금 전까지 억울해 죽을려고 하던 사람이 '그래도 이해는 한다'고 말하곤 하는 것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은 늘 약자이고 을인데, 어떤 갈등이 생길 때마다 우리는 월급 주는 사람, 혹은 인사권을 가진 사람, 혹은 평가권을 가진 사람을 '이해한다'고 말한다. 아니다. 잘 생각해보자. 그것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길 외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냥 이해한다고 넘겨버리는 것이다. 아주 쉽게 말해서 '그래서 내가 이해 안 하면 어쩔건데?' 싶은 거다.


부당한 명령이 떨어진다. 아, 이것은 너무나 부당하다. 조금 꿈틀해본다. 이것은 부당합니다. 회사 사정이 이러저러하니 니가 이해 좀 해라. 아, 네, 이해는 하는데요, 하지만 부당합니다. 그럼 어떡하니? 못하겠어? 니가 못하겠다고 하면 내가 뭐가 되니? 아니 그 입장은 이해하는데요,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내 사정 좀 봐줘라, 회사 돌아가는 거 알면서 그러니. 아, 네, 이해는 하는데요....


이해는 한다, 하지만 딱히 방법이 없다. 바로 이때 우리는 '아, 그래 다들 사정이 있는 거니까, 회사 사정이라는 것도 있는 거니까, 내가 이해해야지.'의 함정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이해한다고 생각해버리지 않으면 달리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늘 손해를 보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도 우리보다 강한 대상을 '이해'하며 산다. 정작 우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회사는 결코 우리를 이해하고 배려해주지 않는데도 말이다.


회사는 전체라는 이름으로 굴러 간다. 전체를 위해 개인은 희생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분명 전체는 여러 개인이 모였을 때 존재할 수 있는 것임에도, 그 전체라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전체가 잘 되기 위해 개인의 사소한 사정 같은 것은 봐줄 수가 없다는 걸 아주 당연하게 주장한다. 그리고 그런 회사를, 우리는 아주 너그럽게 이해해버린다.


약자는 이해하는 거 아니다. 회사는 당신을 이해해주지 않는데 당신은 왜 회사를 이해하나.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들이 거기에 맞서 들이받아도 모자랄 판에 왜 이해씩이나 해줘야 하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 모두 이기적으로 굴어도 좋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도, 달라지는 게 아무것도 없어도, 결국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게 되더라도 마음만은 '그건 니 사정이고'의 자세로 살자. 자신의 영혼을 지키려면 회사에 길들여지지 말자. 당장 내가 퇴사하는 일이 조직이나 상사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 되더라도, 그건 늬들 사정이고,의 마음으로 지금 내 커리어와 영혼의 건강만 생각하고 결정하자. 당신이 어떤 결정을 하든, 회사는 굴러가게 마련이다.


회사는 당신을 잊는다. 아무리 헌신하고 노력하고 성과를 내도, 결국 당신은 수많은 일벌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당신은 회사를 이해하고 맞춰준다고 생각하겠지만, 회사는 그것을 당연한 일벌의 자세로 생각한다. 스스로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 그러니 이해 따위는 개나 줘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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