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회사가 아름다워 보이는 환상

퇴사 권하는 여자 9

by 호밀밭의 사기꾼

"내가 몇 번 이직을 해본 경험으로 보건데, 이직을 하면 할수록 첫 회사가 가장 좋았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첫 직장에서 이건 아닌가 싶어 이리저리 눈을 굴리고 있을 때, 그런 나의 낌새를 눈치 챈 직속 선배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때 속으로 흥! 어딜 가든 여기보단 나을걸? 하며 콧방귀를 팡팡 뀌어대며 그 말을 무시했다. 그리고 이후 이어지는 여러 번의 이직 과정에서 나는 매번 그 선배의 나직한 목소리를 떠올렸다. 아, 그녀의 말이 진리였던 것일까.


이직을 하면 자기도 모르게 매 순간 전 회사와 이직한 현 회사를 끊임없이 비교하게 된다. 어? 이건 뭐지? 전 회사에서는 안 그랬는데. 전 회사에서는 이렇게 했는데. 전 회사에서는 적어도 이런 점은 좋았지. 전 회사와는 모든 게 반대되는군. 하아 괜히 이직했나? 물론 이런 혼돈의 시절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사라지게 마련이고 곧 현실에 적응한다. 문제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그라들지 않을 때 벌어진다. 아, 도저히 안 되겠어, 이 이직은 잘못된 선택이었어! 하는 확신에 이르면 또 다시 퇴사의 유혹에 빠져 정신을 못차리는 사태를 맞이한다.


내가 아무리 퇴사를 권한다고는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퇴사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당신이 이 회사를 떠난 데에는 분명하고 명확하고 확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잘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 고통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다른 선택을 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회사란 대부분 똥같다. 여러 종류의 똥 가운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똥을 찾기 위해 이직을 결심했을 것이다. 그러니 다른 회사에 간다고 똥이 갑자기 황금이 되진 않는다. 그저 조금 다른 종류의 똥이 놓여 있을 뿐이다. 낯선 것들은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 된다. 이직 후 가장 중요한 것은 '낯선 대상에 대한 경계'와 '선택에 대한 의문'을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멸치볶음과 김치와 된장국에 계속 밥을 먹다가 멸치볶음은 너무 짜고 김치는 너무 시고 된장국의 재료는 매번 상해 있는 걸 견딜 수 없어 메뉴를 갈아 엎었다. 계란말이와 장아찌와 생선국으로 바꿨는데 먹어보니 생선국에서 생선 비린내가 난다. 계란말이는 심심하고 장아찌 달다. 헐. 된장국에서는 비린내는 안 났었는데. 저기요? 전에 먹던 된장국은 재료가 상해 있었습니다. 기억 안 나요? 멸치볶음은 간간해서 밥이랑 어울렸는데. 저기요? 그거 너무 짜서 계란말이로 바꿨잖아요. 기억 안 나요? 김치가 없으니 먹은 것 같지 않아! 저기요? 김치가 너무 셔서 장아찌로 바꿨잖아요. 기억 안 나요?


이직을 몇 번 해보고 나면 첫 회사가 가장 좋았구나 하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여기서 또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나쁜 기억은 언제나 빨리 잊혀진다. 또한 자신의 경력과 위치에 따라 매 순간 일과 회사를 대하는 태도는 달라진다. 당신의 첫 회사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그시절이 유일하게 비교 대상이 전혀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경험치가 높아질수록, 비교 대상이 많아질수록, 눈도 높아진다. 기대치가 올라가고 평가 요소가 많아지면 이 회사가 좋은 회사인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을 내릴 때 훨씬 까다로워진다. 첫 회사는 이미 지나간 시간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데, 다시 말하지만 나쁜 기억은 빨리 잊혀진다. 기억에 의존한 평가는 절대 정확할 수 없다. 첫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요소들은 이미 상당히 잊혀졌을 것이다.


이직의 순간마다 엑스증후군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새 애인과의 연애 초기 달달한 시절이 지나가고 갈등이 생기면 자연스레 구남친, 구여친을 떠올리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라. 구남친, 구여친과 왜 헤어졌는지 왜 이별에 이를 수밖에 없었는지를. 전 회사를 왜 퇴사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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