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지 않는 퇴사

퇴사 권하는 여자10

by 호밀밭의 사기꾼

나는 최근 정말로 퇴사를 했다. 퇴사를 결심하고, 퇴사를 준비하고, 퇴사를 진행하며 복잡한 생각들을 한 줄기씩 꺼내놓기 시작한 게 바로 이 시리즈였다. 이번 퇴사는 보통의 퇴사와는 다른 점이 많았다. 불과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정리해고되는 동료 수십 명을 목격해야 했고, 괴상하게 돌아가는 회사에서 더 이상 희망을 찾지 못한 이들의 퇴사 행렬을 목격하거나 그에 동참해야 했다.


멍청이 같이 4년 전 퇴사할 때의 이유들을 레드썬! 잊어버리고 다시 재입사한 회사였는데 (그렇다, '전 회사가 아름다워 보이는 환상'은 바로 나를 향한 글이었다.) 그때의 실망감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격한 절망을 느끼며 두 번째 퇴사를 하게 됐다.


지난해부터 회사에서는 구조조정(이라 쓰고 정리해고로 읽음)으로 수많은 동료들을 내보냈다. 자신이 해고당하는 일도 엿같지만 동료가 해고당하는 모습을 손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일 또한 매우 엿같은 일이다.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퇴사란 얼마나 잔혹한 처사인가. 당연히 그 일은 떠나게 된 사람이나 남게 된 사람 모두에게 상처가 되는 일이었다. 모든 것이 조용하게 은밀하게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런 와중에 구조조정을 지휘한 수장은 전 직원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가라앉은 분위기를 다스려보겠다고 이렇게 말했다.


"나간 사람들에게 미안하지 않으려면 남은 사람들이 더 열심히 잘해서 성과를 내야 한다.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떠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뭐라고?


그는 늘 '역지사지'를 떠들어댔지만 이런 일에서만큼은 스스로 역지사지가 안 되는 모양이다. 쟈, 그럼 역지사지를 떠먹여주겠다. 당신은 해고당했다.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다. 회사가 어려워진 것이 당신 때문은 아니다. 하지만 회사가 어려워졌으니 당신이 나가야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렇게 회사를 나왔다. 회사는 그렇게 당신의 인건비를 아껴서 이익을 냈다. 주식이 올랐다. 자, 그래서 기쁜가? 나를 해고한 회사가 내 인건비를 희생시켜서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다. 그래서 기쁜가?


우리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리보전하고 앉아 있는 그들이 가볍게 누군가의 일자리를 뺏고, 저성과자라 칭하며, 역량 부족 따위를 들먹이면서 퇴사를 종용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도록 화가 나고 당장 그 입 다물라를 외치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하지 못했다. 무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졌다.

물리적인 폭력만이 폭력은 아니다. 직접적으로 투척되는 똥만이 똥은 아니다. 회사는 이렇게 난데없이 똥같은 일들을 벌이고 똥같은 말들을 내던지면서 마음을 다치게 한다. 그리고 해고에 대한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저런 기이한 궤변을 싼다.


해고라는 이름 앞에서, 상처 받지 않는 퇴사는 없다. 어떤 금전적 보상을 보장한다 해도, 강제로 밀쳐지는 일이 유쾌할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받지 말자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해고는 앞으로 더 쉬워질 것이다. 아빠의 연봉을 깎아 아들을 취업시키자는 멍청한 정책이나 내놓는 이 나라에서 이미 '쉬운해고'는 현실이 되었다.


황당하게 슬픈 말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너도나도 해고자가 될 것이다. 그러니 시키는 대로 순순히 사직서를 쓰지도 말고(되도록 엿을 많이 먹이고 나오라고 권하고 싶다. 남은 이들 걱정은 하지 말라. 해고의 순간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은 당사자인데 누가 누굴 걱정하나. 질러라), '내가 무능한가?' 생각하며 자신을 탓하지도 말자.

'무능'과 '유능'은 객관적으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분류될 뿐이다.

당신은 그저 오늘의 전략에 따라 분류된 대상일 뿐, 노동하는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박탈당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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