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권하는 여자 11
여러 번 반복한다. 진짜 강조한다. 절대 기억하라.
이기적인 사람이 되십시오.
회사 동료들과 술을 먹으면서 나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자기중심적인 것과 이기적인 것은 다른 말이라고. 이건 절대 같은 말이 아니라고.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자신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기 마련이지만 이기적으로 구는 건 다른 말이라고. 이기적인 사람은 자기 주변에 오직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만 배치하는 사람이라고. 그러니 이기적인 사람 앞에서는 철저히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인간적인 신뢰를 쌓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회사라는 조직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너와 내가 수평적 위치에서 어떤 '이익'에 엮일 수 없는 관계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회사에서의 관계란 그것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기가 쉽지 않다. 특히 상사와 부하라는 수직관계 아래 어떤 정보를 장악하는 데 있어 매우 불평등한 조건을 갖고 있다면, 그리고 상대적으로 정보 접근에 불리한 위치에 서 있다면 신뢰라는 말은 애초에 성립될 수가 없다.
당신의 상사가 '우리는 신뢰관계에 있다'고 말한다면, 그 말을 특별히 더 의심할 필요가 있다. 미약하나마 권력을 1만큼이라도 더 갖고 있는 자가 말하는 그 신뢰는 상위자의 편의에 따라 가볍게 변형되고 변질된다. 한마디로 당신의 상사 혹은 당신의 회사는 언제든 당신의 뒤통수를 후려칠 수 있다는 말이다.
당신이 퇴사를 결심했을 때는 이미 뒤통수를 열일곱 번은 얻어 맞은 뒤일 것이다. 앗차, 똥 맞은 거였구나!라고 느끼는 순간 이미 늦었다. 똥을 맞는 바로 그 순간 알아채지 못했다면 당신은 그냥 지금껏 쭈욱 호구였을 것이다. 호구인 줄도 모르고 호구였을 것이다. 호구임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필요한 모든 것을 쪽쪽 빨린 뒤다.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지고 더 이상 딛고 일어설 디딤판도 없으며 끌어올려줄 동아줄 따위도 없다. 젠장 여기를 빠져나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데 그렇다고 지금까지 호구로 산 시간을 보상받을 길도 없어! "(마크 와트니의 첫 문장으로)아무래도 좆됐다!"
하지만 늦지 않았다. 퇴사의 순간까지 완벽한 호구가 되지 않을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 여러 번 반복한다. 진짜 강조한다. 절대 기억하라. 회사나 상사를 이해해주지 말고, 사정을 봐주지 말고, 남은 일 걱정하지 말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떠나라. 회사는 퇴사자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사직서를 제출하는 순간, 당신의 시간은 그냥 하얗게 지워질 것이다. 누구도 당신의 공을 기리지 않고, 당신의 존재를 기억하지 않으며, 당신의 부재를 아쉬워하지 않는다.
누군가 당신에게 의리를 강조하며 회유하고 호소하고 사정한다면 입을 꼬매버리자. 의리를 져버린 것은 당신이 아니다. 퇴사에 의리는 없다. 누구든 무엇이든 마음껏 탓해도 좋다. 퇴사의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건강하고 씩씩한 마음으로 새 걸음을 준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