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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춘천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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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우 Jan 10. 2023

쓸모



   은 면 요리를 좋아한다. 오늘도 시판 파스타 소스를 사다가 재료를 잔뜩 넣어 파스타를 해 먹을 예정이다. 소스가 담겨있던 유리병은 여러모로 쓸모 있어서 라벨지를 떼려고 깨끗이 씻어 말려 놓곤 한다. 이미 우리 집에는 3개의 유리병이 제 일을 하고 있다. 하나는 병아리콩, 하나는 서리태, 하나는 참깨를 품고 있다. 공장에서 찍어낸 똑같은 용량의 유리병이 색이 다른 잡곡을 제각각 품고 있는 모습은 무척 사랑스럽다.




   작은 것의 쓸모를 찾는 일을 좋아한다. 버려지는 것에서 가치와 쓸모를 발견하면 왜인지 나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포장재나 용기를 버리기 전에 쓸만해 보이면 깨끗이 설거지해서 말린 다음, 찬장 맨 위칸에 보관한다. 된장 통, 고추장 통, 음료병, 과일이 담겨있던 플라스틱 상자 같은 것들이 찬장에서 자신의 쓸모를 기다리고 있다. 쓸모가 생긴 것들은 오랜 시간 땅속에서 기다리다가 마침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는 씨앗처럼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는다.

   곡선이 아름다운 탄산수 유리병은 식물을 수경재배하기 좋은 화병이다. 물에서 잘 자라는 스파트필름의 뿌리를 깨끗이 씻어서 담가놓으면 파인애플처럼 귀여운 모습이 된다. 반찬을 배달해 먹고 남은 플라스틱 통은 못을 담아두거나, 요리하고 남은 채소를 보관하기 딱 좋다.




   왜인지 작은 것, 하면 잡초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 발치에 치이는 자그마한 잡초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자신의 쓸모를 증명한다. 콘크리트는 갈라지고 벽돌은 부서진다. 움직이지 못하는 잡초는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때가 되면 틈 사이에서 피어나 온몸으로 생명을 외친다.

   잡초를 들여다보면 우주를 엿보는 기분이 든다. 아득한 것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손등 위 점처럼 작은 하늘색 꽃잎을 가진 꽃마리, 흰 꽃다발 같은 뚝갈, 공원에 많이 보이는 자귀풀, 냉이, 민들레, 이끼, 봄맞이꽃,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들풀들. 땅에 이롭지만, 농업에는 해가 되어 잡초로 분류된 풀들.

   무엇이든 오래 바라보면 내 안에 의미가 생긴다. 잡초 또한 들여다보는 이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된다. 아주 작은 풀잎 하나에도 제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전과 같지 않다. 오래된 시처럼, 들여다보는 각자에게 각기 다른 빛깔의 뿌리를 내린다.




   친구와 부산에 간 적이 있다. 시간이 남아 해변 근처에서 크루즈를 타게 되었다. 배 위에서 근처 공원과 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큰 소리를 내며 나아가던 배는 바다 한가운데 멈춰 섰다. 사위가 조용했다. 찰랑거리는 파도 소리가 작게 들렸다. 선장은 운이 좋으면 돌고래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저기, 1시 방향 보세요!”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몇 사람이 돌고래를 발견했는지 상기된 목소리로 동행자에게 저기 보라며 공중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소동이 두세 번 정도 반복되었으나 나는 아무리 봐도 돌고래가 안 보였다. 그러다가,

   “삐-”

   돌고래 소리가 들렸다.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휙 돌리니, 수면과 결이 다른, 맨질맨질한 돌고래의 이마를 본 것 같기도 하였다. 지금 여기에 인간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맞아. 바다에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지. 지구에 사람만 사는 게 아니지. 알 수 없는 감정이 차올랐다. 돌고래 음성이 내 안에 뿌리내리는 순간이었다. 이 바닷속에 사는 무수한 생명체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생명의 무게에 압도될 것 같았다.

   텅 빈 듯한 망망한 바다에서 같은 돌고래 울음소리를 듣는 일은 ‘나의 바다’에서 ‘그들의 바다’로 전환시키는 경험이었다. 바다가 무궁무진한 개발 대상이라거나, 인간의 기분전환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인간은 인간에게 쓸모없는 생명이나 장소는 다 메워버린다. 쓸모란 도대체 무엇일까.

   쓸모란 국어사전에서 ‘쓸만한 가치’라 말하고 있다. 가치는 ‘대상이 인간과의 관계에 의해 지니게 되는 중요성’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결국 인간에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가치를 부여받는 것이었다. 보물로 만드는 것도, 쓰레기로 만드는 것도, 익충과 해충으로 나누는 것 모두 인간 중심이었다.

   쓰레기는 이제는 누군가에게 쓸모없어진, 가치를 부여받았던 것들이다. 만약 가치가 자연 중심이라면 가치의 사전적 의미는 어떻게 될까. 나는 자연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돌고래에게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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