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가 된 딸이 회상하는 우리 엄마의 이야기
명절을 맞아 회사 자아는 잠시 접어두고, 효녀인 척 딸의 자아를 꺼내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평소엔 "바빠서"라는 이유로 연락도, 잘 찾아가지도 못하는 딸이,
명절 연휴 동안만큼은 글로나마 효녀인 척해보려 한다.
우리 엄마와 나는 두 바퀴 차이, 24살 차이 띠동갑이다.
예전엔 "엄마가 젊으니 좋겠네!"라는 말이 좋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나만 좋은 말이다.
어린 나이의 엄마는 날 낳으며 무섭지는 않았을까. 대단하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세 자매의 장녀라는 이유로 본인의 꿈보다는 이모들을 위해 살았던 그 옛날,
경기도 용인 남사면에서의 어린 시절 엄마 이야기.
질릴 만큼 많이 들어온 이야기지만, 새삼 들을 때마다 가슴이 한편이 아리다.
하지만 이 무뚝뚝한 충청도 여자 딸내미는 늘
엄마 앞에서 그 이야기를 들어도 울지 않으려 애써 담담한 척한다.
우리 엄마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사가 있다.
애가 1학년이면 엄마도 1학년이야.
준비물인 화분 값은 주지 마, 그냥 가져가
애기엄마 힘내!
내가 중학교 여름방학 즈음이었나.
꽃집 사장이면서 저렇게 멋대로 명랑하게 꽃값을 깎아주던 우리 엄마의 어느 날 대사가 떠오른다.
엄마의 MBTI를 검사해 본 적은 없지만, 분명히 따뜻한 카리스마의 리더 ENFJ일 것이다.
우리 엄마의 꽃집은 신기하게도 법원과 검찰청 사이에 있다.
처음엔 "누가 꽃집을 이 삭막한 곳에 차리냐" 했지만, 그녀는 달랐다.
법원과 검찰청...... 아! 공무원 인사이동에는 난과 꽃이 필수구나.
이런 전략가인 그녀를 내가 반만 닮았더라면 회사원이 아닌 사업을 했을 것이다.
일명 진상 손님이 "손님이 왕 아니냐!" 소리쳐도 "왕 아닙니다!" 하며 꿈쩍 않는 강철의 팩폭 T자아 여인.
그런 그녀도 자식 앞에서는 눈물의 감성 F자아의 바보다.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이 나와 내 동생을 낳은 거라는 말에, 당사자인 나는 그저 한없이 미안할 뿐이다.
속 썩이고 애교 하나 없는 딸 아들 낳은 게 세상 잘한 일이라는
저 바보 같은 여인에게 무슨 말을 더 해줄 수 있으랴.
그저 조용히 엄마의 신인 하나님께 빌어야겠다.
다음 생에도 언니 동생이고 싶다던 둘째 이모와 함께, 그때는 하고 싶은 걸 원 없이 하고 온실 속 화초처럼
살다가 또 나의 엄마로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뭐, 이번 생에는 일단......
무뚝뚝한 딸이 나름의 방식으로 효도하기를 오늘도 말로만 다짐해 본다.
명절인 김에 용기 한번 내보자.
"바빠서", "쑥스러워서" 미뤄뒀던 고맙다, 사랑한다 한마디.
오늘 하루만큼은 말로만 다짐하지 말고 진짜로 해보자. 나처럼 글로만 떠들지 말고ㅋㅋ
그리고 밥 먹다가 잠깐,
당신과 당신의 엄마, 서로의 1학년을 한번 떠올리며 이야기 주제로 넌지시 던져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