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짱이아빠 Nov 04. 2022

그녀들은 발야구를 하지 않는다.

me and NZ (10)

한국과는 달리 뉴질랜드 학교는 매 시간 교실을 옮겨서 공부한다.  대학과 같은 시스템인데 학교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학기 초반엔 물어보며 교실을 찾아다녔다.  그 스트레스가 컸는지, 하루는 교실을 찾지 못해 땀을 뻘뻘 흘리는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깨기도 했다.  잠시 교육 과정을 소개하자면, 고학년이 될수록 필수과목이 사라지고 자신의 전공과목을 선택하게 된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주로 5과목을 선택해서 1년을 배우게 되는데, 그 5과목이 대학 입학시험 과목이 된다.  저학년은 필수과목이 대부분인데, 영어와 체육은 졸업할 때까지 필수 과목이다.  




학교에 적응하던 시절, 첫 체육 시간이었다.  탈의실에서 체육복으로 갈아입었다.  탈의실이 운동장 옆에 있다는 것도 문화 충격이었다.  원래 체육복은 교실에서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나가는 게 국룰 아닌가?  체육시간에 운동은 남녀 학생 모두가 같이 했는데, 매번 여러 가지 종목의 운동으로 땀을 흘리게 만드는 게 체육시간의 목표가 아닌가 했다.  어릴 때부터 한 가지의 운동은 계속하기 때문에 여기 친구들은 신체 건강했다.  학교 첫 체육시간 종목은 축구였다.  뉴질랜드에서 축구는 여자 운동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한국에서 주구장창 하던 게 축구여서 기뻤다.  뭔가를 보여주자 마음을 먹었지만, 잔디구장에서 처음 뛰어보는 거라...   우리 체육반 친구들과 축구를 했는데, 마침 공을 몰고 들어가 사이드에서 공을 골대 근처로 올렸다.  그러자 혜성같이 나타난 백인 여자애가 2 미터는 족히 점프하여 헤딩슛을 했다.  '퍽!'  골인이었다.


'방금 내가 뭘 본거지?'


헤딩슛을 그것도 여자애가 때렸다.  원래 한국에서 체육시간이란 남학생들은 축구, 여학생들은 피구 혹은 발야구를 하는 시간이다.  한 번도 예외 없이 그렇게 체육시간이 흘러갔는데, 뭐라고?  맙소사 헤딩슛 이라니.


"잘했어 신입!"


그 친구는 엄지를 높이 치켜세웠다.   음...  대체 여긴 어떤 곳인가...

후에 가끔 체육복을 안 가져갔는데, 그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체육복을 안 가져와서 시합을 못하느니 떠들어 댔다.  그 친구들 덕택에 체육복은 꼭 챙겨 다녔다.




입학할 때 선택한 과목은 과학, 수학, 생물이었다.  여기에 영어, 체육이 포함되어 5과목을 공부했다.  영어는 정규 과정을 배울 수 없기 때문에(배우기엔 실력이 너무 소박하다.) 국제학생들은 ESOL 반에 소속되었다.  한마디로 영어학원의 연장 정도 되려나.  거의 모든 아시아 국가 출신 학생들이 그렇듯이 수학은 쉬웠다.  1년 내내 100점을 맞았다.  잘해서가 아니라 정말 쉬웠다.  고등학생이 중학생 수학 문제를 푸는 느낌이었다.  문제는 과학과 생물, 특히 생물이었다.  세포 내부의 하나하나를 발음과 더불어 단어를 외워야 했다.  알겠지만 모든 단어들이 라틴어 느낌이고 평소에 쓰이지 않는 단어들이다.  리보솜, 미토콘드리아..  평소에 얘기해 본 적 있는가?  이러한 단어들이 수백 개씩 쏟아졌다.  각각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기 전에 단어 자체가 안 외워졌다.  과학 시간에는 뭘 자꾸 설명하라 했다.  뉴질랜드 교과과정은 사지선다형이 없다.  시험도 문제가 딱 5개 나온다.  설명하라. 4시간 줄게.  다행히 시간은 넉넉하다.  


한국에서 15과목을 공부했는데, 뉴질랜드에서는 5과목만 하면 된다고 해서 별것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공부를 영어로 해야 하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선생님이 해오라는 숙제는 '그런 게 있었나요?' 하고 못해가고, 알지도 못하는 시험을 가끔 본다.(분명 선생님은 말씀하셨는데 내가 못 알아 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험을 보라고 하면, 공식 대입해서 문제 풀던 사람이 갑자기 설명을 영어로 길-게 어떻게 할 수 있나.  또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이번 연도에 과학을 통과하지 못하면 유급이 되어 내년에 다음 학년 과학을 공부하지 못한다.  그러고 보니 학년은 고3인데 고1 반에 들어와서 공부하는 학생도 종종 보였다.  


별거 아니다.  진짜 별거 아니었다.  다 적응을 하고 공부하다 보면 쉬워진다.  공부에 어느 정도 성의만 보인다면 유급은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얘기해주는 선배가 없었다.  또다시 두려움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한국에서는 자퇴 처리되었고, 뉴질랜드에서 유급당하다가 한국으로 쫓겨가는 상상을 해 봤다.  말도 안 돼.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교과서를 외우자"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  교과서에서 문제가 나오니까 교과서를 외워버리면 시험을 잘 볼 수 있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랬다.  그런데 뉴질랜드 교과서는 한국의 교과서와 정말 다르다.  한국의 교과서는 일반 책 사이즈라면 뉴질랜드의 교과서는 큰 백과사전 사이즈이고, 올 컬러에 글자가 깨알 같은 대학 원서 느낌의 두꺼운 책이었다.  심지어 어떤 과목은 교과서도 없이 프린트로만 진행되기도 한다.  


"참고서를 왕창 사서 공부하자."


교과서도 못 믿겠어서, 주말에 시내 서점으로 갔다.  참고서를 사고 싶어서 봤는데, 딱 한 종류의 참고서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참고서가 한 과목당 100개 정도 될 텐데, 뉴질랜드는 참고서가 한 종류이다.  심지어 참고서가 없는 과목도 있다.  뉴질랜드 전국 학생들이 이 한 종류의 참고서로 과학을 공부한다.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지 참고서를 파는 곳은 아니었다.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  이렇게 난 유급이 되는 건가?  


< 뉴질랜드 서점 위트콜스 >


작가의 이전글 '연가'의 원곡 '포카레카레 아나'를 아시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