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내시경

방문 6일 차

by MoonA

서른 즈음 처음 했던 내시경 검사에서 만성 위염 진단을 받은 이후, 주기적으로 받던 검진을 미국에 와서는 6년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내 몸 중에 제일 미덥지 않은 위, 그도 그럴 것이 살면서 내가 제일 막 대했던 위, 그래서 언젠가 한 번은 심통을 부릴 것 같은 위. 그래서 차라리 못 본 척했던 위. 그래서 겁이 났다. 지난해 미국에서 생애 첫 대장내시경을 할 때도 용기를 내지 못해 못했던 위 내시경을 예약한 그날이 바로 오늘이다.


나는 이제 마흔보다 쉰에 더 가까워져 있다. 그리고 주변에 동시대를 같은 속도로 보낸 지인들 중에 현재 병환을 얻고 시한부를 선고받았거나, 이미 세상에 없거나, 혹은 현재 암일 수도 있는 조직검사 중이거나 한다는 이야기를 전보다 더 많이 접한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대합실에 앉아 근래 유난히 움푹 들어가 보조개인지 팔자주름인지 모르게 된 얼굴엔 필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믿고 지내던 이가 뒷통수를 후려치던 그날의 알 수 없는 속을 내시경으로 들여볼 수 있었음 그렇게 아프지 않았을까, 내 위나 그의 마음이나 차라리 모르는게 낫지 않을까 뒷통수를 맞는 순간까지, 대비할 수 있으면 뒷통수가 덜 아플까, 맞는건 매한가지일텐데... 등등등의 생각을 한다.


친절한 남자 의사 선생님의 얼굴은 아무리 봐도 쉬이 시한부선고를 할 것 같진 않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얼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앉았다.

위염으로 보이는 부분들이 군데군데 보이는데 혹시 모르니, 조직검사를 해보려고 합니다.
헬리코박터균은 없으시고요.
조직검사 결과는 일주일 뒤에 다시 방문하시면 되겠습니다.

조. 직. 검. 사.

그래, 그냥은 안 넘어갈 나이 맞지 하며 기름종이같이 얇은 멘탈을 뚫고 올라오는 걱정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간판들을 꼭꼭 짚어 읽으면서 두더지 게임하듯 아래로 찍어 누른다. 그래도 제일 큰일은 병원문을 열고 들어가는 거였고, 그거 했으니 속이 시원하다고 저 밑에 깔려있는 생각을 끄집어 올려본다.




오후엔, 20대를 함께 일했던 친구들을 만난다. 한 어학원에서 풋풋한 20대를 함께 일했던 그녀들이 이젠 모두 자기 이름을 걸고 일을 하고 있다. 그때 참 여러모로 힘들었지만 그때 그 시간이 우리를 단단하게 해 준 건 분명하다는 증거다.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냈던 우리들의 말들은 배탈을 일으키지도, 설사를 일으키지도, 또 경련을 일으키지도 않다. 그리하여 속뜻을 알아보려 내시경을 들이밀 필요도, 떼어내 조직검사를 해야할 말들도 없다. 그래서 1년에 한 번의 만남이 어색하지도 불편하지도 않다. 이런 친구들이 있는 나는 참 운이 좋다.


그녀들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길었던 하루를 마무리할 곳으로 데려다줄 버스에 오른다.

집에서 기다리는 누군가에게 귀가시간을 알리는 이 오랜만의 긴장감. 쉰이 다 되는 딸이 집에 와야 잠이 드는 칠순이 넘은 부모님을 위해 카톡을 넣고, 한 시간 남짓을 달린 버스에서 내려 아파트 뒷길을 종종걸음으로 걸어 들어간다. 하루 종일 잊고 지냈던 '조직검사'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앞으로 일주일, 기억력 감퇴가 두려움을 이기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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