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부터 그랬다고 해.

by MoonA

한남동에 있는 난포한남이라는 퓨전 한식당에서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난다.


이태원이 지고 한남동이 뜬다더니,_아니 떴다니가 맞는 말이지 싶다. 이미 떴으니까._버스로 이태원을 지나 몇 정류장 더 가니_그전엔 이태원에서 주로 하차를 했었던터라, 두리번 두리번_또 다른 분위기의 동네가 나온다.


약속장소로 가는 길엔 팝업스토어 매장들에 인형같이 차려입은 점원들도 보이고 근사한 노천카페도 보인다. 골목안으로 들어서면서는 카카오지도를 봐야해서 쓰고 있던 썬글라스를 돋보기 안경으로 바꿔끼고 본격적으로 식당을 찾아나선다. 구석구석에서 이런 곳에 있었구나 싶은 여러나라 대사관들이 보이고, 평일 이른 시간인데도 줄이 늘어서기 시작한 인테리어 신박한 커피집, 밥집들이 시선을 끈다. 그렇게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지나니 '난포한남'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오늘 모이는 인원은 총 5명, 하지만 오전시간이 가능한 인원과 오후에 가능한 인원이 달라, 하루종일 시간이 있는 나와 A를 교집합으로하는 오전팀과 오후팀이 각 3명과 4명일 예정이다.



그리하여 오전엔 나,A 그리고 B가 난포한남에서 만나기로 했고, 아직 나머지 친구들은 도착전이다. 요이땅이라도 누가 외친 듯이 가게 안이 오픈시간 5분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가득찼다. 메뉴판을 엎치락 뒤치락 하는 사이 A와 B가 차례대로 들어왔다.

반가운 그녀들이,

책상 위 필통을 화다닥 떨구며 졸던 그녀들이,

서로의 교복 옷깃에 낙서를 하며 키득거리던 그녀들이,

귓등에 연필을 꽂고 턱을 치켜들고 거드름을 피우던 영어선생님을 곧잘 흉내내던 그녀들이,

국어시간에 영어사전을 펼치고, 영어시간에 사회탐구 문제집을 풀고 있던 그녀들이,

시린 마음도, 시린 잇몸도, 다 생각나지 않게 하는 마법같은 그녀들이.


눈만 마주쳐도 배꼽잡는 일,

쇠똥구리가 쇠똥만 굴려도 웃는 일,

낙엽이 굴러가도 웃는 일은 이제는 없겠다 싶을 땐, 고등동창들을 만나자. 모두 가능해진다.


월차를 쓰고 귀한 시간 내어 나왔던 B는 아이들의 귀가시간에 맞추어 인사를 나누었고, 나와 A는 오후모임을 위해 C가 일하는 까페가 있는 구로 디지털 단지로 향했다. 식당주인인 D도 일을 마치는대로 그곳으로 오기로 했다. 3학년 몇반 몇번이었던 우리들이, 그녀들이, 그후로 오랫동안 교실이 아닌 세상에서 삶을 꾸리고 살고 있는게 낯설게 여겨질 때가 있다.


마침내 모두 얼굴을 마주한 우리는 관절과 어깨와 눈시림과 만성피로같은, 우리가 처음 만났던 사춘기때는 없었거나 모양이 다른 새로운 현상들을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깔깔거린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안도감, 그때도 입시의 무게를 나만 지고 있는게 아님을 확인하고 깔깔거렸던 것처럼. 우리는 지금도 비슷한 걸 지고 간다. 물론 모양도 색깔도 내용물도 다르지만 지고 간다는 면에선 같다.


야, 새로운 거 아니라고 쳐.
스무살부터 그랬다고 쳐. 그런걸로 해.
관절통증도
어깨결림도
눈시림도
만성피로도
다 원래 그랬던거라고 쳐.
우리가 고등학교때 너무 신나게 놀아서
몸이 스무살때부터 이미 그랬다고 쳐.
갱년기 그런거 아니라고 쳐.
스무살부터 쭉 그런걸로 쳐.


호프집 한복판에 앉은 우리는 알바할 때 꼭 보곤 했던, 시끄러운 주책없는 아줌마는 되지 말자며 손으로 입을 가리며 키득거린다.

한때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마주하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라며 콧김 씩씩 뿜어내던 그녀들이 이젠 '그럴 수도 있더라.'라고 한다.


그럴 수 없는 일은 없기에, 숨겨야 할 일도 없는 그녀들이 있어서 참 좋다. 내가 이만치 변하기 전의 나를 기억하고 있는 그녀들이 있어서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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