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둘로 가를 수 없으니, 애꿎은 마음이라도 갈라 하나는 미국에 하나는 한국에 둔다. 그런데 그 추상적인 것도 쉽지 않다. 강박처럼 마음의 양을 둘로 정확히 나눠야 어느 한쪽이 서운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저울이 잠시라도 한쪽으로 기울면 양심이 아파져서.
출국장에서 또 울까 봐 공항버스를 타겠다고 한번 우겨보았다. 립스틱을 바르는 엄마와 모자를 눌러쓰는 아빠의 고집을 꺽지 못하고 차 트렁크에 추가 수수료 제한선인 딱 21kg을 채운 여행가방을 싣는다. 익숙해질 만도 한 떠남은 또 처음인 듯하다. 기억력이 안 좋아져서 더 그런가 싶기도 하다. 나쁜 기억이 지워져 가는 장점은 좋은 기억도 함께 지우는 단점과 손깍지를 얄궂게 꽉 끼고 있다.
공항주차장 H구역은 출국장과 가까워 아빠가 때마다 주차를 하는 곳인데 오늘은 일요일이라서인지 갓길 주차조차도 빼곡히 빈틈이 없다. 두 번을 돌아도 자리가 나지 않는 것을 본 내가 오늘은 여기서 헤어지자고 제안드렸고, 비상등을 켠 채, 가방을 내리고, 급히 포옹을 하고, 순간 급하게 튼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발사함과 동시에 등을 돌리고 걸었다. 마치 탑승에 늦은 것처럼.
가방을 체크인하고 출국장으로 향하는 중,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주차자리 용케 찾아서 지금 올라가는 중이니까 잠깐만 기다리라고.
아... 꿰매어놓은 상처를 다시 열어야 하는 느낌이다. 안 울고 가려고 했는데. 히죽거리며 웃는 동생의 얼굴과 그 뒤로 내가 입국장에 방금 도착한 얼굴을 본 듯, 또 새삼스레 반가워하시는 부모님 얼굴이 뒤따른다.
출국장 앞 복작거리는 대합실 의자에 앉아, 딱히 더 나눌 얘기는 없지만, 오도마니 시간을 잠시 보낸다.
이제는 진짜 헤어져야 할 시간.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줄이 길어지는 것을 보고 내가 먼저 일어섰다. 여러 번 해보니까 가면 또 오고 오면 또 가고, 그렇더라고 각자의 버전으로 얘기한다.
나는 이번엔 잘 참았는데 아빠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터지고야 말았다. 눈물이. 나는 그 눈물이, 혹시 지금 보면 내년엔 못 볼지도 몰라서 나는 눈물인가 혼자 생각하다 또 수도꼭지가 열릴까 목구멍뒤로 상상을 삼켰다.
진짜 가요. 곧 또 봐요.
언제나 그렇듯, 출국장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많은 사연들은 분주한 손길로 신발을 벗고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고, 재킷을 벗고, 주머니를 뒤지고, 용량제한을 미처 생각지 못한 대형 치약을 뺏기는 사이,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사라진다.
그리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사람들이 가득한 탑승구에 앉아 곧 만나자고 남편과 아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집에 간다.
방랑자가 잠시 몸을 뉘일 집으로.
2025년 봄, 한국에서의 시간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