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by MoonA

내 인스타 포스팅에 익숙한 이름이 좋아요를 눌렀다. 우리 아빠. 만 78세의 아빠가 얼마전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고, 나를 팔로잉하셨다. 이제와서 아빠한테 비밀로 할 일이 무어 있겠는가. 아빠가 내 이야기를 읽으시는게 나는 좋다. 대화가 많지 않던 부녀가 이렇게라도 일상을 알게 되고 더 가까워지는 것이 나쁘지 않다.


한국전쟁당시 낙동강 모래사장에서 아버지 목마타고 피난가던 그 3살 아이일때 78년을 살아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며 태평양 건너 사는 딸이 3초전에 올린 사진을 볼 수 있게 될 거라고 상상이나 하셨을까.


아빠는 말씀이 별로 없으시다.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나는 아빠의 머릿속 그림을 다 알 수가 없다. 아빠가 자신의 인생을 어떤 색으로 칠하고 계신지, 어떤 장면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지, 무엇이 아프고 무엇이 그리운지.


말하기도 글쓰기도 좋아하는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보다는 아빠를 더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이 이 지점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호기심.


그 점이 가장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그 호기심들을 다 채울만한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너무 없이 살아오셨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한국에 있을때 아빠가 가보자, 해보자하시면 제일 먼저 찬성을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어릴 때, 형편이 좋지는 않았어도 집에 레코드 플레이어, 그러니까 그때 전축이라 불리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아빠는 레코드를 제법 모으기도 하셨다. 스피커 회사에서 일하시면서 소리에 관심이 많으셔서 때마다 스피커도 제법 괜찮은 것들로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비싸지 않은 선에서 저렴한데 아이디어가 좋은 제품들이 집 구석구석에 꽤나 많았다. 새로운 것들 앞에서 아빠는 늘 '보는 사람'이 아니라 '해보는 사람'이었다. AI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알려드리면 돋보기 안경으로 앱을 열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키는데로 해보시곤 한다.


작년 엄마스테이에 이어 올해 아빠스테이를 끝내며, 다시 상기한다.

매년 한 달씩 한국에서 보내는 시간은

부모님의 삶을 조금씩 이해하는 여정이기도,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나도 부모님도 살면서 서로에게 못해준 것에 대한 부채감대신

이제라도 이렇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음에

더 많이 감사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아빠 스테이 연재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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