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자는 틈을 타서 아침 운동을 나선다.
Seaside, OR 은 'Lewis & Clark'의 미국 서부 발견길의 마지막 도착지였다.
Lewis와 Clark은 1804년, 미국의 대통령 Thomas Jefferson이 당시 매입했던 루이지애나의 서쪽을 탐사할 탐험대를 조직했고, 그 임무를 맡았던 인물들이다. 탐험은 루이지애나에서 출발해 미주리 강을 따라 록키산맥을 넘어 이곳에 도달했다. 이들이 지나간 왕복 약 8,000마일의 경로를 따라 조성된 'Lewis & Clark Trail'은 현재 미주리, 캔자스, 네브래스카, 몬태나, 오리건 등을 관통하며 미국 서부 개척의 상징이 되었다.
요즘 유난히 많이 보이는 문구들이 있다.
그냥 해.
혹은
해보기는 해 봤어?
이런 길을 보면 가던 길에서 방향을 틀어 진입해 보면 될 것을 쳐다보면서 갈까 말까를 고민하는 나를 발견하는데, 그럴 때 이런 말이 생각이 나는 것이다. 떠올려보면,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는 이런 말이 필요 없었던 것 같다. 이미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더 많았으니까. 말보다 행동, 생각보다 행동이었던 때, 솥뚜껑은 손을 데고서야 뜨거운 것임을 배웠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솥뚜껑 비슷한 것을 보기만 해도 손이 이미 후끈거리는 지금은 이런 말들이 더 많이 들리고 보이는 것 같다. 시간이 좀 더 걸릴 뿐 저 끝까지 돌아갔다 아무것도 없음 돌아 나오면 그만이라는 걸 알지만, 뭐랄까... 이젠 귀찮다고 하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ㅎㅎㅎ
숙소로 돌아오니 E와 I가 만들어준 따끈한 음식이 기다리고 있다. 컵의 색도, 접시의 색도, 음식의 색도 참 너무 마음에 든다.
달리다가도, 좋아하는 음악을 듣다가도, 즐거운 대화를 나누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불쑥불쑥 불안이 올라올 때가 있다. 눈앞에 이렇게 색감 좋은 음식이 놓여있을 때에도 그러할 때가 있다.
그 불안의 이름은 '이러다가도 불쑥 나쁜 일이 생길 것만 같은'이다. 갑자기 다가올 불행에 준비해야 한다고 외치는 녀석.
그럴 땐 얼른, 지금처럼 이렇게 불안에 이름을 붙이고, 실제로 현재 이렇게 불안할 만한 일들이 있는지 떠올려본다. 밴드를 붙여놓은 작은 상처 또는 손톱 아래 가시래기들이 스칠 때 따끔거리는 것 같은 일상의 고민들이 있을 뿐이다. 큰 쓰나미라고 여겨질 만한 일들은 없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엔. 그리하여 이 '이러다가도 불쑥 나쁜 일이 생길 것만 같은'이라는 녀석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린다. 이 녀석도 별 수 없이 지나갈 것을, 앞서 스쳐간 비슷한 종류의 녀석들을 통해 배웠으니까.
마주 보고 앉은 이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불안을 내치는 절차가 머릿속에서 끝난다. 후루룩 들이키는 커피맛이 너무 좋아서 탄성을 내지른다. 어쩌면 이들에게는 좀 과하게 들릴지도 모를 만큼. 나만의 빅토리라서.
조식을 마친 우리들은 Seaside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차로 약 40~4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Nehalem Bay에 가보기로 한다. 실은 바다를 바라보며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를 볼 수 있다는 Hug Point State Recration Site를 들려가기로 했지만, 그곳이 일시적으로 입장이 금지되어있다고 한다. 다신 없을 것 같지만 또 기똥차게 오고야 마는 '다음 기회'에 가보기로 한다.
몽환적인 풍경의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걷기 시작한다. 내일도 보고 모레도 또 볼 수 있는 것처럼 오른쪽에 둔 파도를 꽤 오랫동안 모른척하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간다. 그리곤 불현듯 내일도 보고 모레도 또 볼 수 없음을 모두 동시에 자각한 듯, 멈춰 서서 파도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침묵이 어색할까 염려할 틈 없이 파도가 재잘거리고 있다.
나보다 푸르고, 나보다 아름답고, 나보다 깊고, 나보다 곱고, 나보다 반짝여도 단 한 톨의 질투도 불러일으키지 않아서 좋다. 의지와 관계없이 올라오는 시기와 질투가 옳지 않다고 나 자신과 다투지 않아도 되니까.
그들이 하는 말들을 그림자와 해가 듣고 있는 것 같은 사진이라, 사진 편집하며 아래 위로 조금씩 잘라낼까 했지만 그리하지 않기로 했다.
E와 I는 나에게 지금보다 불안이 더 자주 더 크게 더 오랜 시간 머물다가던 시절, 나를 붙들어준 고마운 사람들이다. 나만 보면, '괜찮아. 그렇게까지 안 해도 괜찮아. 네가 상상하는 그런 일 생기지 않아.'라는 메시지를 말로, 때로는 행동으로 보여주며 설명서 없는 시간들을 버티게 해 주었다.
워낙 로맨틱하고 자상하고 다정한 E는 우리와 만나기 전부터 사둔 장작들을 태우러 해가 진 바다로 나가자고 제안한다. 12월 31일, 올해의 마지막날. 지난 몇 해 별 감흥 없이 보냈던 연말을 생각하면, 바닷가에서의 장작불이 솔깃하다가도 워낙 추위를 싫어하는 나랑 I는 장작의 양을 흘끔 쳐다본다. 저걸 다 태우려면 얼마나 걸릴까? ㅎㅎㅎ 그리고 또 둘 다 동시에 같은 것을 깨달은 듯, 담요를 두 개씩 양쪽 어깨에 걸치고 바닷가로 나선다. '까지꺼, 오늘 아니면 언제 또.'가 아니었을까? 우리가 깨달은 것이.
칠흑같이 어두운 바닷가엔 파도가 보이지 않는다. 쉼 없이 들리는 파도소리에 저기에 바다가 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잘 마른 장작이 따닥따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기 시작하자 주변이 조금 더 보이기 시작한다. 둘러앉은 우리 네 명의 얼굴이 보인다.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광채로 이마와 광대가 번들번들하다. 나는 이걸 세월이 준 반짝임이라고 부르겠다.
그날의 나는 참 많이 부족했음을 인정하지만, 그날의 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음도 인정하고 껴안아주는 대화들이 오가며, 진지할 법하지만 무겁지 않은 대화들이 오가며, 준비한 장작들이 모두 다 탔다.
만날 때마다 느끼지만, 어떤 고민도 크기가 확 쪼그라드는 건조기를 가지고 다니는 것 같은 I가 뚝딱 차려낸 자정을 기다리는 한상 차림. 바닷가에서 오들거리느라 생긴 허기를 채우는 뚝딱 한상 차림을 앞에 두고, 시차로 인해 먼저 2026년을 맞이한 집에 있는 아들딸들과 지인들에게 연신 느낌표와 하트를 전한다.
곧이어 우리에게도 찾아온 2026년, 준비해 둔 샴페인의 뚜껑을 성공적으로 쏘아 올리고, 뜨거운 포옹을 나누자, 추켜올리고 있던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온다.
2026년, 올해도 살아보자고요. '잘'이라고 썼다가 지운다. 그냥 살기만 해도 충분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