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7. My Own Private Idaho

by MoonA

이른 아침, 아직 어둑한 길과 공기를 더듬어 길을 나선다.

뜨거운 냄비 손잡이를 수십, 수백번 들고 나르며 뜨거운 것에 대한 두려움에 익숙해진 사람처럼, 만남도 헤어짐도 수십, 수백번 반복하면 두려움에 익숙해진다. 그리하여 우리는 에어비앤비 현관문에 서서 내일 또 볼 듯이, 서로를 꼬옥 끌어안으며 인사를 나눈다.

오레건을 빠져나가는 길목에 시어머니 댁에 들려 이번 여행에선 마지막이 될 인사를 나눈다. 애리조나에 놀러오시라는 우리들의 제안에, 니네끼리 있기 심심해서 그러냐는 그녀만의 시크한 농담이 베이비파우더처럼 보송하게 느껴진다. 부모님과 함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더 자주 만들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과하게 이고 사는 나이기에 너무 과하거나 가볍지 않게 이런 농담을 하는 그녀가 점점 좋아진다.

오랜 시간에 걸쳐 그녀의 상식과 나의 상식이 교집합을 조금씩 찾아가는 것 같다.

오레건의 전형적인 겨울날씨, 비오는 길을 뚫고 아이다호로 향한다.

초등학교 고학년때 시작한 취미, 영화감상. 비디오가게 단골이었던 우리집 식구들은 주말엔 주말의 명화나 토요명화를, 주중엔 비디오가게에서 빌려온 서너개의 영화를 다같이 모여앉아 보곤 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기록하고 내 생각을 끄적이던 걸 좋아하던 나는 영화를 보고나면 꼭 공책에 영화감상평을 썼다. 영화보다 영화배우얼굴 감상평이 더 주를 이루었던것 같기도 하고.

그때, 나이때문에 볼 수 없었던 영화, 'My Own Private, Idaho' 라는 리버 피닉스와 키아누 리브스주연의 영화는 볼 수 없었기에 더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되었다. 그래서인가, 아이다호는 나에게 그 두 배우를 떠오르게 하는 곳이다. 안타깝게 요절한 배우 리버 피닉스의 날카로운 콧날과 우수에 찬 눈이 아이다호의 이미지이다. 물론 아이다호 감자와 함께. 부산 어묵같은거다. 아이다호감자는.

호수 위로 자욱하게 안개가 깔려있다. 하늘에 있으면 구름, 땅에 있으면 안개, 성분은 같지만 위치와 상황에 따라 참 매력적인 수증기다.

아이다호 진입 전, 먹을만한 곳을 검색하니 Hal's Burger를 추천한다. 그닥 당기지는 않지만, 달리 뾰족한 대안도 없다. 오늘 해가 지기 전에 아이다호에 입성하려면 돌아돌아갈 여력이 없기에. 새벽부터 달려도 아직 오레건이기에.

무심히 고개를 돌리면, 무심한 눈이 훓고 지나가는 풍경에 다 지나고서야 흠칫 놀라 돌아보게 되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지나간다. 길고 긴 길 위에 있는 동안엔 얼얼해지는 엉덩이와 뻐근해지는 허리와 띵띵 붓는 다리같은, 하찮은 것들에 여차하면 정신을 빼앗기기 쉽다.

오늘 저녁엔, S와 R을 만난다. 두 해전 미국으로 온가족이 이민을 온 S와 R은 오기 전에 있었던 한아름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증명하듯이 잘 지내고 있다. 한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미국인 남편들은 한국인 아내들보다 더 미국에 돌아와 사는 것을 두려워한다. 한편 이해가 되기도 하고 한편 고소하기도 하다고, 한국인 아내들은 입을 모은다. 삶의 무게의 저울이 내 편에서 저 편으로 넘어가는 기분이 -비록 그 기분이 오래 가지는 않아도- 꽤 괜찮기 때문이다라고 하면 너무 솔직한가?


여튼, 이 여행에서 만날 마지막 친구들을 향해 다시 어둑해지는 길을 서둘러본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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