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의 거리가 멀어지지 않았으면

2020.10.22 목요 일기

by 손은경

2020. 10. 22. 목. 맑은 날씨이나 잔뜩 먼지가 끼임.



규만쌤 만나고 오는 길이다.

전날 찾아 뵐 수도 있었는데, 퇴근길 오른 후 받은 연락이라 다음날 점심인 오늘을 기약하며 맺은 통화였다.


선생님한테 전화가 올 때면 나는 괜한 마음에 심장이 졸린다.


'초고 계약에 문제가 있던 건.. 아니겠지?'


어렵게 얻어낸 기회기에, 계약 파기가 나에겐 겁으로 다가와 그렇다. 선생님 연락이 마냥 반갑기 어려운 까닭이다.


선생님하고는 세번째 책으로 만난 사이다. 지난한 투고의 과정 끝에 간신히 인연을 찾았다. 엄마를 위해 쓴 글이, 어쩌면 내 욕심 뿐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때 즈음이었다. 우리 출판사와는 색이 맞지 않다거나, 작금의 출판 시황으로 출간이 어렵다거나, 아예 쌩까거나. 셋 중 하나의 메일(쌩까는 게 제일 많다.)만 받고 있던 때, 담백한 문장의 메일이 하나 날라왔다. 더도말고 선생님 같은 메일. 초고를 읽고 느낀 선생님 감성과 그리하여 책으로 내고 싶으니 연락 달라고. 좋은 인연이 되길 바라겠다고. 그렇게 선생님과의 인연 시작이다. 계약을 위해 한 번 찾아 뵈었고, 점심을 먹었고, 그리고 오늘은 초고 교정지 받으러 간 길이었다.


선생님 사무실엔 향이 난다. 방문할 때마다 나는 향내와 보이차내가 그곳에 있는 나를 안정감있게 한다. 그런 그곳과 규만쌤은 몹시 조화롭다. 차분하고, 온화하고, 미소짓고, 소탈하고. 알 수 없는 따뜻함과 편함이 선생님에겐 있어, 찾아 뵐 때면 이유 없이 좋다. 그리고 이유 없이 좋은 사람이 규만쌤이다. "악수하면 어때. 괜찮아." 코로나 방어기제를 보인 내게, 쿨하게 손 내미는 분. 코로나도 사람의 온기는 이길 수 없다는, 느낌 마치 국민 아버지같다.


그런 선생님도 나를 퍽이나 예뻐하는 모양이다.

오늘은 삼계탕을 사주셨다. 일인분에 15,000원이나 하는, 30년도 훨씬 더 된 가게였는데. 보통 애정이 아니다. 식사 중 선생님 고백도 들었다. 도통 말수가 적은 편인 선생님도, 내 앞에서면 수다쟁이가 된다고 했다. 그렇게 깨알 같은 대화를 삼계탕과 함께 나누었는데, 나는 문득 두려워진다.


"이거 교정한 건데 월요일까지 확인해줘."

"흐흐. 네, 선생님."


얼핏 듣긴 했다. 꼭지마다 삽화가 실릴 거라고. 정말이었다. 받아든 교정지엔 꼭지마다 삽화가 실려 있었고, 아마. 예상하건데 컬러 인쇄까지 염두해 두신 것 같다. 출판사 근무 경력은 없어도, 나름 세번째 계약이니 대충은 안다. 1도 인쇄에 비해 얼마는 더더더 추가되는 비용을. 심지어 이번 1쇄 부수가 상당하다. 마냥 기뻐 할 수만은 없게, 부담이 따른다. 작가라는 책임의 무게겠다. 선생님께 폐 끼치고 싶지 않다는 다부짐이겠다.


출간해 주면 그만, 이라는 생각은 해본 일 없다.

신뢰받은 내 글, 그리고 어렵사리 택해 준 출판사에게, 나를 믿어 준 대표님에게 적어도 내가 할 도리는 하고 싶다. 이왕이면 잘 팔리면 좋겠고, 1쇄 정도는 완판하기를 바라고, 나로 인해 덕도 보셨으면 좋겠다. 내 글을 택해 주었다는 그 이유만으로 덕 드릴만 하니까. 내가 받은 감사를, 적어도 나 또한 내어 드리고 싶으니까. 특히 규만쌤 향해 더 강하게 드는 바람이다.


나는 선생님이 좋다. 따뜻한 분이라 곁에 두었다 내 마음 추울 때 마다 불러오고 싶기 때문이다. 초고를 하필 규만쌤이 택해 준 것도, 감사한 마음이다. 그러나 출판사와 작가로 만나, 계약이라는 관계가 섞여 있어 나는 조금 조심스럽다. 출판사 대표라는 당신의 기대를 작가인 내가 져버릴까봐. 그로 인해 나의 소중한 인연인 당신과의 거리가 멀어질까봐. 막중한 책임과 무게를 가지고 움직여야 할 때다.


당신과의 거리가 멀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해소할 수 없이 적체되어 갈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