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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Dec 12. 2020

현재 시각 새벽 3시 7분

03:07am.

출근해야 하는 다음 날 발생하는 곤욕이라면 이른 새벽 뜨게 된 눈일 거다.

아니아니, 이르다 표현하기엔 좀 부적절하고, 아닌 밤중에 깬 잠이라는 게 더 적합한 표현 일거다.     


“헉” 하고 단 박에 눈을 떴는데 핸드폰 시계는 새벽 2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새벽 2시 30분에서 3시 사이에 깨는 잠에는 공통이 있어 어쩐지 불길했지만, 이왕지사 눈 뜬 김에 노폐물 쉬-하기위해 자리에 일어났다. 이것이 실수였는지 모른다. 참고 자야했는지 모른다.     


가뿐한 방광으로 이불에 돌아오니 개운하기가 석연찮다. 이런 말끔함은 새벽 2시와 3시 사이와 어울리지 않는다. 부스러기 같은 피곤함이 머리와 눈, 몸뚱어리에 질척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바로 잠들 각은 아닌 듯, 아주 깬 느낌으로 누워 눈만 말똥거린다. 깜빡깜빡. 어둠에 깜빡이는 눈이라 뵈는 게 없긴 마찬가지이지만 뜨고, 감고의 활동은 지속된다. 이런 허송세월이 싫다. 뭐라도 하고 싶기에 본능적으로 오른 편에 있던 핸드폰을 쥐어 든다. 이것이 실수였는지 모른다. 눈꺼풀 백 번쯤 깜빡이다 겨우 잠들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N포탈에 접속해 지난 밤 뉴스를 살핀다. 코로나, 그리고 윤과 추 이야기는 여전히 상단을 차지하고 있고, 한참 밑으로 내일 한파라는 소식이 보인다. 경기북부를 포함한 일부 지방은 영하 10도이니 단디 챙겨 입으라는 헤드라인이 눈에 띈다. 개복치적 체온을 가졌다. 더위에 연약하고, 추위에도 약하다. 그런 나지만 한파 소식 따위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건 내일 재택근무이기 때문이다.     


연말까지 수도권 방역 강화다.

거리두기 2.5단계 +a 라고도 하던데, 때문에 많은 것들이 멈추고 거리 두게 된다. 우리도 (드디어)격일 재택근무 하기로 했다. 내 주장으로 이뤄진 재택이라는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바쁘지 않은 요즘 같은 때라면 어쨌거나 나는 좋다. 여왕은 예민하여 눈치가 빠른 편이다. 모르겠다. 제 발이 저린 나 때문인지도. 난 분명히 재택 “근무” 하겠다고 했는데 여왕이 말했다.     


“우리도 격일로 쉬자.”     


내 마음에 들어갔다 나온 건가. 그래서 일부러 까는 건가. 겁나 찔렸지만 좌우당간 월요 근무 내내 생기가 돌았다. 오늘 열심히 하면 내일은 노 출근이기 때문이다. 재택휴무 하는 날이기 때문이당!>_<


뉴스거리를 읽을 만큼 읽고 다시 핸드폰 시계를 들여다보니 새벽 3시가 되었다.

재택근무가 한결 사람 편하게 한다. 평소라면 의지를 들여 자야지, 자야지, 하며 주문 외우고 있었을 테다. 그렇게 1시간쯤은 맨 정신으로 밤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어쩌다 출근하지 않는 다는 건 딱 그런 거였다. 오지 않는 잠에 매달릴 필요 없이 하고 싶은 걸 하기로 하였다. 하여튼 그럴 수 있는 오밤과 새벽 어딘가니까.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노트북을 들고 책상으로 향했다. 냉큼 자리에 앉아 전원 버튼을 누른다. 이것이 실수였는지 모른다. 이불에 누운 채 조금 더 버텼다면 끝내 잠들었을지 모른다. 

    

근 한 달을 양껏 쓰지 못하고 살았다. 나의 시간과 재능을 화폐로 교환한 그 분을 위해 작업해야 했기 때문이다. 시간만 나면 편집 했고, 심지어 쉬어야 할 때에도 작업 했다. 잘 쓰겠다는 욕심으로 사는 내게 하루 어느 시간에도 글 쓸 틈을 두지 못한 것은 내심 조마조마한 심사였다. 글 연습은 게을리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루 빨리 쓰는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편집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그렇게 편집 작업이 마무리 되고 다시 여유가 생겼다.

누군가 교환해 갈 나의 시간과 재능을 쌓을 틈이 주어졌다. 올 내(來)를 위해 나를 채울 오늘을 마주한다. 비축해 두었던 쓰는 시간은 온전히 “쓰는 시간”이 되고, 쓰고 싶으면 또 쓸 수 있게 된다. 지금처럼.     

그리하여 집에서 일 한다는 이유만으로 이유 없이 생긴 이 여유에 야심함을 즐겨본다. 두드리고 싶을 때 두드릴 수 있다는 자유로움으로 글을 써 나간다. 노트북 올려놓을 책상과, 궁둥이 붙여 놓을 의자만으로 충분한 이 1평짜리 즐거움이 나는 좋다. 아아. 이것은 실수가 아니었다. 고요한 어둠과 함께이기 때문이다.     


03:57am.     

새로운 밤을 만나러 가야겠다.

허리의 뻐근함이 밀려온다. 야심한 집중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하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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