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은경 Dec 07. 2020

4개 만 원, 기꺼이 지불하겠어요.


작은 아낌을 좋아하는 지라 맥주도 생선 맛(사실 생선 로고의 맥주다. 따라서 비린 맛은 없다.)만 골라 마신다. 긴 캔 하나에 천삼백 원 정도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어낸 생선맛 맥쥬


곱하기 4를 하면 네 깡 오천 원 남짓으로 구매 가능하고, 여기에 2를 더 곱하면 만 원에 여덟 깡이나 살 수 있다. 둔감한 혀를 둔 덕에 카ㅇ, 하이ㅇ, 테ㅇ을 마셔도 그놈이 그놈으로 느껴지는 나라, 생선 맛 맥주도 나름 만족하고 지낸다. 4.5%의 알코올이 포함 되어 있어 어쨌거나 마시면 취한다는 것, 소주에 섞는 동시 맛을 구분하기란 더욱 힘들다는 것도 한몫하고. 아무렴 상쾌하게 취하려고 마시는 것, 그뿐 아니겠니.


그러다 “맥주 맛”술이 아니라 “맥주”를 맛보게 된다.

간만에 지르자는 심사였다. 기분 좀 내자며 편의점에 들러 네 깡에 만 원(이나 하는) 외쿡 맥주를 샀다. 하여튼 다른 맛이라 했다. 해외여행 또는 출장 중일 때 마셨던 그것들은 방콕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싱가폴이 주는 분위기만으로, 칭따오에서 마시는 칭따오라는 이유로 맛있었다. 분간 없이 맛있었다는 이야기다. 분위기에 취해 몰라봤던 맥주였는데, 주변 사람들은 하여튼 다른 퀄리티랬다. 그리하여 고르게 되었다. 오늘만큼은 만 원짜리 한 장에 기분 내고 싶었다.


내가 고른 블랑 하나, 그이가 좋아하는 칼스버그 하나, 다시 내가 고른 칭따오 하나, 그이가 고른 흑맥주 하나를 품에 안고 계산대로 향했다. 한 겨울, 양 손에 이고 가기엔 두 손이 너무 시려 비닐봉지 하나까지 추가하고는 총 만 백 원의 지출과 함께 편의점을 나섰다.


블랑으로 시작해 칭따오로 마무리 할 것을 계획했다. 소주는 타지 않기로 했다. 고유의 이천 오백 원을 즐길 심사였기 때문이다. 딸칵, 하는 캔 뚜껑의 오픈 소리와 함께 껄껄껄껄 맥주를 따랐다. 잔의 칠 할이 차고, 짠, 외침과 함께 잔을 부딪쳐 이내 입으로 가져다 대었다. 꼴깍꼴깍꼴깍.


“뭔 맥주가 이렇게 맛있어?”


맥주는 그저 시원하거나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게 아니라, 안주 빨 세우기 위해 먹는 음료가 아니라, 자극하는 침샘으로도 먹는 것임을 배우게 된다. 지불한 만 원 짜리 한 장이 내 세치 혀와 목구멍을 빛나게 한다. 가치가 이것이라면, 기꺼이 지불해 아깝지 않은 일이라면 약 두 배나 더 비싼 이 맥주를 즐겨 찾겠다고 결심한다. 지불할 만한 일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지불해 아깝지 않다고 여기는 것에 기꺼이 지불”이다.

그것과의 교환에 몇 개의 0과, 몇 장의 지폐가 필요할지라도, “응당 그럴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거침없이 페이다. 다른 나만 보아도 그렇다. 한 봉지 천오백 원이나 하는 질소과자가 겁나 비싸다며 투덜거리기도 하지만, 그보다 10배 비싼 책만큼은 불평 없이 구매한다. 만 오천 원 이상의 배부름을 내게 가져다줄 걸 알기 때문이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함께 보내 마지않은 사람에게 내 시간을 쓴다. 아주 때로는 “제발”이라는 부사가 붙기도 한다. 얼마라도 지불 할 테니 제발 내 것이 되어다오, 언제라도 좋으니 부디 내게 시간을 내어다오.


뭐든 그런 거 같다. 가치 있는 곳에 쓰는 내 것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어 거리낌이 없다. 어쩌면 가치를 내 돈과 시간을 이용해 교환해 오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치는 사라지기 대신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가치”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나”라는 사람의 고유 가치는 진즉 알게 된 사람이지만, 여기서 멈추어선 안 된다는 요즘의 생각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며, 그리고 다양한 일을 맡고 하게 되며, 가지고 있던 꿈을 이룰 것을 꿈꾼다. 소박하지만 거창한, 거창하여 또 꿈다운 그런.


아무래도 내가 브랜드이니, 나라는 브랜드 가치를 높여야 될 일이다.

여러 안(案)이 떠오르지만 뭐니뭐니해도 ‘타당한’브랜드가 되어야겠다는 게 가장 우뚝 선 중심이다. ‘마땅한’사람이 되고 싶다. ‘나만이’ 가능한 그런 내가 되고 싶다. 비범하거나 경외롭다면 더욱 좋다. 그런 나를 만들어야겠고, 또 보여야겠다.


차곡차곡 예쁘게 쌓아 가고 싶다.

견고하여 무엇에도 무너지지 않고, 궁금하여 들어오고 싶으나 쉽게 그럴 수 없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이왕이면 잘 쓰이고 싶다는 욕심은, 버려선 안 되는 거니까.


편맥 마시다 가치창조가 떠올랐다.

매거진의 이전글 현실 자각 타임 : 어디로 가야하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