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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Dec 04. 2020

현실 자각 타임 : 어디로 가야하나

지금이 나라, 내가 지금이라, 하물며 여기서도 만족이 있는지라 그런대로 살아간다.

40분 만에 출근이라는 서울 살이의 호사를 누리고 있기도 하고, 나의 12평에 익숙해진 탓도 있겠고, 멀지 않은 곳에 산도 있고 마트도 있고, 음. 생각해 보니 나쁜 점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험상궂은 사람이 제법 보이는 동네고, 지하철역까지 10분 남짓 걸어가야 하고, 누가 지은 집인지 습하여 곰팡이가 쉽게 핀다. 가끔 놀러와 곳곳에 핀 곰팡이 때를 지우던 엄마는 “내년엔 이사 가야지.”한다.


아주 처음, 직장생활하며 모아둔 소규모 종잣돈과 은행을 통해 일으킨 대규모 론(loan)으로 구한 첫 (남의)집이다. 동생과 거주할 집을 구하기로 했다. 나이 슴여섯 살이 되니 돈이 조금 모여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매매는 둘째 치더라도 어쨌거나 전셋집 정도는 마련할 줄로 알았다. 집을 알아보기 전까진. 그러다 첫 번째 현실 자각을 하게 된다.


“얼마 생각하세요?”

“딱 이정도만 갖춰있으면 되는데. 이렇게 소박한 전세 집이요. 얼마 생각해야 하나요?”

“보통 갖고 있는 금액대로 집을 맞춰 드리는데, 만약 이런 집을 원하신다면 1억은 족히 넘는다고 생각하시면 되요.”


큰 무언가를 바란 것도 아닌데, 전셋집 대부분은 1억을 후울쩍 넘었다. 헉 소리 나는 부담이었다. 내가 가진 돈으론 한참 모자랐기 때문이다. 덤벼볼 만한 금액의 집은 아무래도 여자 둘 살기엔 위험해 보였다(진입장벽이 낮은 대신 침입장벽 또한 낮았다.). 그때 들었던 두 가지 생각은 1) 이런 거구나, 2) 단디 살아야겠다.


빌릴 수 있는 최대 금액의 대출을 실행해(무조건이었다. 최대가 되지 않으면 턱도 없었다.) 어찌저찌 구하긴 했다. 구하고 나서도 무겁긴 마찬가지였다. “전세금 되받을 가능성”에 대해 염려했던 나와, 아기자기한 월급이 소득의 전부였던 내게 1억이 훨 넘는 전세금은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굉장히 묵직한 집이었다. 그나마도 어렵게 구한 거였다. 작금의 출판시황이 불경기 된 게 어제오늘 같은 것처럼, 전세물량 또한 예나 지금이나 부족했다. 그런 중 계약한 집이다. 처음 일으킨 대출과, 엄마가 아닌 내가 계약의 주체가 되었다는 것과, 그리하여 이 집으로 인해 생긴 빚은 모조리 내 것이라는 야릇한 뿌듯함으로 동생을 들였다.


“야, 어때?”

“뭐야. 왜 이렇게 작아 집이.”

“내가 이 집을 어떻게 구했는지 알고 하는 말이야? 서울에서 집구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어? 네가 구해 볼래?”


현실 자각 경험이 없던 동생의 철없는 소리가 나를 자극했다. 나는 좀 극대노했다.


“어떻게 구한 집”, 이 집은 그런 집이다.

그때로 몇 년을 더 살았다. 살수록 이곳의 단점 하나하나를 알아갔지만, 집주인은 집의 하자 따위 무시하고 전세 값을 올렸다. 살며 확 트인 넓은 집, 습하지 않고 깨끗한 그런 집에 사는 누가 부러운 적도 있지만, 어쨌거나 정착해 (올린 전세 값에도)잘 살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 계약만료일이 다가오고 있다. 이번엔 뜰 것을 계획한다.




네이버 부동산에 접속해 집값을 들여다본다. 그러다 두 번째 현실 자각을 하였다. 살고 싶은 곳은 겁나 비싸다. 덜 살고 싶은 곳도 비싸다. 이 집을 구하며 들었던 생각이 몇 년이 흐른 지금에도 든다. 현자타임, 현타, 뭐 그런 말들이 내 것이 된다. 잘 해왔다고 철썩 같이 믿었는데, ‘조금 더 아껴야 했나, 조금 더 아찔한 투자를 감행해야 했나, 너무 안일하게 살았나, 그동안 뭐한 거지.’라는 생각이 나를 차지한다. 아득하여 부모에게 손을 벌리고도 싶으나 그럴 형편은 못 된다. 아까 나눈 카톡 대화에 엄마는 오늘 나이트 근무라 했다. 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다 문득 나로 돌아온다.

마음 듬뿍 사랑하는 책과 거기 쓰여진 글귀가 떠오른다.


“그대 허공의 아들아, 잠 속에서도 잠들지 못하는 그대는 덫에 걸리지도 말고 길들여지지도 말라.
그대의 집을 닻이 아니라 돛이게 하라.”

- 칼릴 지브란 <예언자> -


풍족하여 넓어지는 선택의 범위 대신, 내려놓아 넓어지는 범위를 선택했다. 역에서 조금 멀면 어때, 조금 오래되면 어때, 좁으면 좀 어때, 아무렴 어때. 어느 곳에 살아도 나는 행복할 수 있음이 자신에 찬다. 그럼에도 넓고 깨끗한 집에 대한 꿈은 잊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그 날이 오면 그곳에 살겠지만, 아직은 어렵다는 현실에 내 마음을 맞춘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야하나. 이것은 고민해 볼 문제다. 네이버 부동산에 재접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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