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은경 Jan 04. 2021

새로운 "첫"을 맞이하며

2021년 첫 글

글을 잊고 살았다.

읽고, 떠올리고, 쓰는 일이 랜덤으로 반복되는 게 나의 일상이지만, 2020년 마지막 즈음으론 그러지 못했다. 읽고 쓰기를 멈췄다. 철저히 쉬고 싶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덕분에 얼마나 잔건지. 밤 12시에 눈을 감고 낮 12시가 되도록 잠에 취했다. 원 없이 잘 수 있다는 사실이 어쩜 이런 행복이었는지 모른다. 행복하고 싶어 머리가 지끈거리도록 잠에 빠지기도 했다. 이불의 보드라움에 따뜻함이 더해져 어찌나 달콤했는지, 생경해져버린 지난 휴일이다.


그렇게 삼 일이 흘렀다.

12월 31일, 1월 1일, 1월 2일, 딱 삼 일이 흘러 있었다. 글과 멀리한 기억이 희미해진 내가 된 후로는 하루도 빠짐없이 글로 채운 생활이었다. 한 일주일 즈음, 지나간 줄로 알았다. 아주 닫고 살아, 거리 두고 살아 그런 줄 알았는데, 고작 삼 일이었다니. 지나치게 놀고먹기만 하는 것 아닌가, 했던 공연한 꺼림칙함이 공연해져 버린다. 잘 쉬었다.


2021년이 되고 한 첫 출근이다.

이른 새벽에 울린 알람을 십 분쯤 무시하고 간신히 자리에 일어났다. 뒤척임 많던 잠결이었던 까닭인데, 지난 밤 내내 나는 사무실에 있었다. 일을 하고, 확인하고, 다시 챙기느라 여념 없던 밤이다.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그에 맞춰 자다 깨기를 수 번했다. 그러다 아침을 맞이했다. 수면욕을 거두어 대충 준비 마친 후, 지난 저녁 생긴 재활용 쓰레기와 함께 집을 나섰다. 생수 병 두 개와 폐지 들고 나와 각각 분리수거 함에 넣었는데, 아차. 쥐고 있던 핸드폰까지 페트병 분리함에 던져버렸다. 새벽 7시도 안된 겨울 이 시간은 오밤과도 같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나 때문에 못살아, 연신 중얼대다 엎어져 있던 검정색 LG V50 한 마리 발견하고는 냅다 집었다. 사소한 다행이 여기도 있다. 휴,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어쩐지 색다른 아침이다.


오늘 아침 집어든 책은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다.

이런 술술 담백함은 거의 본 일 없지 않나 싶다. 글은 꼭 어려워야 한다는, 길고 장황하여 아무나 쓸(읽을) 수 없다는, 그런 못 되 먹은 심보를 이 책이 누른다. 내 주장이라면 씨알이나 먹혔겠냐만, 강원국 아저씨가 하는 말이라 믿음직해진다. 아저씨 생각을 읽다보면 고개 끄덕여 질 때가 많다. 맞아 맞아, 하다보면 ‘나에게도 강원국의 피가’ 하는 착각이 일 때도 있다. 읽어나가다 쓰고 싶어지는 나를 발견한다. 급히 오른쪽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 꺼내 들어 메모를 한다. 키워드 몇 개를 추려 간단히 메모하고 마저 책을 본다.


2차 버스로 환승하기 위해 1차 버스에 내렸다.

환승 길에 있는 붕어빵 & 오뎅 가게는 오늘도 불이 켜 있다. 새벽 5시에 하는 출근이던, 오늘 같이 아침 7시에 하는 출근이던 상관없다. 그 이른 시간에도 누군가는 오뎅을 찾고, 붕어빵 몇 마릴 뜯는 가보다. 그럼에도 나는 단 한 번 사먹어 본 일이 없다. 출근 시간 그런 호사 누릴 틈 없다는 것도 이유지만, 할머니 기호를 알게 된 후로는 굉장히 꺼려진다.


공복 출근길이 유독 힘겹던 날, 지나가며 할머니 가게를 유심히 쳐다 본 일이 있다. 아마 사 먹을까, 말까를 줄기차게 고민했던 거 같다. 팥 대신 슈크림 붕어빵이라면 도전해 볼까, 이런 생각을 했던 거 같기도 하고. 나의 시선은 그곳에 맴돌았는데 그때, 할머니 손에 든 무언가를 보게 된다. 붕어빵 뒤집는 손 다른 한 편에 걸쳐있던 담배 한 가치. 그러더니 입으로 한 모금 가져다 피웠다. 적지 않은 충격이 있고, 그때로 붕어빵만 보면 빵내 대신 담배빵이 떠오른다. 오늘 할머니는 빈손이다. 내게 들킨 것은 잊은 듯, 평온한 모습으로 오뎅을 살피고 붕어빵을 쌓아 올린다. 나는 그 옆을 망설임 없이 지나왔다.


2차 버스를 이용해 사무실 도착이다. 역시나 내가 일등이다.

쓰겠다, 다짐하고 자리에 앉는다. 손이 언 탓일까, 타자감을 잃은 탓일까. 지난 삼 일 전과 다른 속도감으로 워딩 한다. 경쾌하게 두드리는 대신 진득함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더해 간다. 손이 시려 주먹을 쥐었다 편다.



올 해는 멋진 소설 한 편 써 볼 계획이다.

여러분 앞에 나서게 될 일도 생길 것 같다. 무엇보다 코로나 앞 무력해지는 나를 잡아 일으키는데 할애했던 에너지 전부를, 2021년에는 “정진”에 쓰고 싶다. 힘써 나아가고자 한다. 새로이 맞이할 큰 책임감으로 더 자라난 내가 되었음 한다.


새해맞이 목표로 분명한 한 가지도 세웠다.

아침을 계란 두 알로 시작하겠다. 굶거나, 배고파져 먹는 게 과자 몇 조각이던 아침밥을 삶은 달걀 두 개와 함께하겠다. 나의 2021년 목표다. 어제는 일주일치 계란을 삶아 두었다. 잘 지킬 수 있을까 장담 못하지만, 새해 첫 출근인 오늘은 목표 달성이다. 케첩의 힘을 빌려 먹었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쟛ㅡ민일보(一步) 개간 소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