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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Mar 29. 2021

흠칫 거리는 마스크

술도 아주 많이 마시고 나서는 그립지 않고, 잠도 지겹도록 자고 나서는 꼴깍 밤이 새고 싶어지는 것처럼. 쓰지 않던 글공복 20시간쯤에 결국 글이 고파져 쓰고야 만다. 몇 번이고 떠오르던 글감이라 오늘 쓰지 않고 베길 수 없어 그런 건지도 모르고.


어디를 가던 그것이 외출이면 마스크와 동행 한다. 어느덧 1년이 훌쩍 넘었는데, 아유 지겨와. 이젠 가실 때도 되지 않았나, 싶게 지겹다. 우리끼리 말이지만 왜 쓰고 다녀야 하는지 그 목적마저 까마득해 진 당연함도 생겼다. 어쩌면 시선 의식하느라 착용하고 다니는 건 아닐까, 하는 느낌마저 들 때도. 아무튼 이제나 벗을까, 아니면 저제나, 싶은 마스크 라이프인데.


여기엔 바이러스 전파 방지 역할 외 또 다른 기능이 있음을 알았다. 코와 입을 가려 상대를 알아보기 힘들 게 만드는 기능 말이다. 눈만 보여, 눈대중으로 자네가 자네인 것을 알아채기란 여간 쉬운 것이 아니다. 코와 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렇게 크다는 걸 새삼 배운다. 특히 하고 있는 헤어스타일, 풍채, 심지어 패션 감각마저 대중성을 추구하는 한국인이라 더욱. 어딜 가도 코리안은 알아본다는 조세프 말은 틀리지 않았다. 어제는 헛빵을 날리기도 했다.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남자, 그러니까 나는 그이와 함께였다. 그리고 그곳이 역사(驛舍)라는 사실은 아무 거리낌도 되지 못했다. 우리는 아래로 향한 고개 하나와 위로 치들은 고개 하나를 한 채 한껏 달라붙어 있었고, 대화는 시시콜콜했으나 다분히 하트했다. 나는 한없이 여자로 변해있었다. “미안하다고 할 거면서 미안할 짓은 왜하냐”며 바르다 못해 똑 부러지던 혀는 어느새 반토막이 되어 끝마다 “-또(그러니까 잘했어는 잘해또와 같이)”를 말하고 있었다. 나의 광대는 승천하고 있었다. 헛것을 보기 전까지.


시야로 마스크를 찬 젊은 남자 하나가 들어왔다.

고개 푹 숙인 채 유튜브에 집중하던. 덕분에 그이 품에 달라붙은 매미 같던 나를 볼 순 없었겠지만, 나는 보았다. 검정 머리에 댄디 펌을 하고, 6:4도 아닌 하필 5:5 가르마에 평균보다 작은 편에 속하던 키. 통통한 체형을 가려 줄 검정 슬랙스, 눈에 익던 점퍼, 마지막으로 노출된 옆모습에서 알 수 있던 제법 하얀 피부. 홀리쉿! 흠칫 놀람과 동시에 흐르던 피가 순간 멈춘 듯 했다. 2년을 사귀다 헤어져, 방콕의 나를 삵으로 만든 장본인과 매우 흡사한 남성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그이 팔을 끌어당기며 부랴부랴 자리부터 옮겼다.


“여기 사람 너무 많은 거 같아. 우리 다른 칸에서 타자!”

“그런가? 그러지 뭐.”


백퍼 확신할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코와 입을 가리고 있었다. 따라서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것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자라 같아 흠칫했다. 어쩜 이렇게 닮았어. 엄밀히 말하면 만남이란 것은 신비하여 전에도, 전전에도, 전전전에도, 전전전전에도 헛것을 보곤 했다. 마스크에 가려 눈만 덜렁 내보이고 다니는 크지 않고, 통통하며, 특히 댄디 펌을 한 남자를 볼 때마다 나는 덜컥 놀랐다. 하나의 스타일을 한 남자만 수 번 사귄 것도 아니면서 그랬다. 주제에 그만 만나자 한 건 나라, 엑스가 그립다거나 보고 싶지는 않지만. 미안하기도, 그러나 마음 대부분으로 남아 있는 고마움 때문에 엑스를 닮은 마스크 맨만 봐도 나는 일렁였다. 그런 사람이었다.


엑스도 그럴지 모른다.

긴 속눈썹의 또렷한 눈매를 가진 여자만 봐도 흠칫하여 도망갈지 모른다.

시원하게 뻗은 눈썹에 넓지 않은 이마를 한 여자만 봐도 철렁하여 못 본 척 할지 모른다.

작은 키지만 고집하여 운동화를 신고 있는 여자만 봐도 당황하여 공연히 아무개에게 카톡 할지 모른다.

비슷한 여자만 보아도 내 소식을 궁금해 할지 모른다. 그러며 잘 살기를 바라줄 그라는 걸 안다. 그런 그에게, 당신과 헤어지고 나는 책을 3권이나 내며 작가라 불리게 되었고, 지금은 꿈과 같아 꿈이라 불리울 수 있는 희망을 가지고 산다고. 그 사이 평생 같이 걸어갈 “나의 님”이 생기기도 했다고. 모두 당신이 행복하길 바라준 덕분인데, 그래서 나는 잘 지낸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텔레파시가 있다면 전해지길 바랄뿐. 마음으로만 생각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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