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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pr 08. 2021

반면교사

너를 통해 나를 바로 잡는다

출장으로 동해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밤이 다 되어 서울 도착하는 바람에 집까지 택시타고 가라는 이사님 말에, 회사는 나의 것이라는 주인의식으로, 한 푼 아끼겠다며 한사코 나는 전철을 택했다. 이토록 거짓인 건, 실은 잡히는 택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젠장. 내 한 몸 불살라 이만 원 아껴준다.’ 온갖 생색과 함께 동해부터 데려 온 러시아산 킹크랩 한 마리를 등에 메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게무겁고, 개피곤한 날이었다.


누구도 잡아가지 않을 나를 나는 염려해, 밤거리 배회하지 않은 지 제법 되었다. 내게 마지막 서울은 일과를 마친 저녁 8시이고 그 길로 나는 꽁꽁 집에 숨는다. 더욱이 나의 하루는 일찍 종료되는 편이라 그렇기도 한데, 밤 10시만 되도 눈이 감기어 어영부영 11시쯤엔 잠을 자니까. 그래서겠지만 다들 그런 줄로 알았다.


피곤에 절여 있는 나와, 못지않게 바쁘던 직장인 몇 뿐으로 지하철은 한산할 줄 알았다. 어쩐지 스스로에게 애잔했던 건 그 때문이기도 했다. 밤이 되어도 쉴 수 없는 소수에 나도 속해있구나. 열심히, 가 사람 지치게도 한다는 걸 체감하고 있던 즈음이었다. 동해에서 데려 온 러시아산 킹크랩 들쳐 멘 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생각했다. ‘어른의 삶이란.’ 동해부터 들고 온 러시아산 킹크랩 무게 탓인지 나는 한껏 짓눌려 있었다. 곧 방화행 지하철이 도착했다. 텅텅 비어, 한 자리쯤 킹크랩에게 내어줄 줄 알았던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밤 10시가 넘은 서울의 지하철은 가(히 장)관이었다.

지하철은 인산인해였다. 오락실에서 줄기차게 했던 지하철에 탄 사람 수 맞추기처럼, “하나둘셋넷다여일곱@#%$_^(%TEd 에이 몰라 ㅅㅂ” 수준의 인파였다. 어떻게든 묻어가고자 동해에서 데려 온 러시아산 킹크랩과 나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할 것을 잃었다.


킹크랩 싣고 올 것을 직감했던지, 출장 가방엔 책 한권을 두지 않았다. 내게 이런 일은 마치 핸드폰 없이 외출한 것과 같은 것인데, 왜인지 모르나 어쨌거나 그랬다. 악 중 악이라면 핸드폰 배터리마저 동 났다는 것이다. 할 일 없는 지하철은 당신 생각하는 그것만큼 무료하여 따분하다. 집에 도착하는 20분을 어떻게든 버텨야 했으므로, 무엇이든 하고자 했다. 그때도 떠오르는 건 “글”과 관련한 전부였는데, 나는 귀를 열어 글감을 찾기로 했다. 마침 옆에 있던 남2와 여1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듣지 않으려야 그러지 않을 수 없기도 했다. 만취한 여자가 쉼 없이 “오뽜”와 “이 쉐끼”를 번갈아 외쳤기 때문이다. 다분히 흥미로운 소재였다. 나는 눈을 보태 그들 이야기에 기울여 보기로 했다.


마스크에 가려도 대충 마흔 중반으로 보이는 셋이었다. 양보 할 수 없이 마흔 중반이었다. 쿨(편의상 남녀 2:1 혼성 그룹인 쿨이라 하겠다.)은 퇴근 후 한 잔 걸친 듯 했다. 그럼에도 김성수와 이재훈은 멀쩡해 보였고, 술은 혼자 다 마셨는지 나 홀로 취해있던 유리를 성수와 재훈이 케어하고 있었다. 재훈(편의상 오른쪽 남을 재훈이라 하겠다.)은 유리의 백가방을 들고 있었다. 특히 눈에 띄던 건 유리의 백구두였다. 과하게 밝아 형광색으로 보이던 백구두는, 커피색 스타킹과 대조되어 더욱 빛났다. 여기까지가 내가 본 그들 외관이었다. 다음은 쿨의 대화였다.


만취한 유리는 과감했다. 둘에게 바싹 다가가 끼, 라고 불리는 그것을 성수와 재훈에게 시도했다.

성수에게 다가가.

“오뽜, 구뤠서 좋아? 그 여좌 솨룽훼? 솨룽하냐고 이 쉐끼야.”


다시 재훈에게 밀착해.

“이 쉐끼, 너 내가 예존에 고붹했돈 거 욜라 후훼한다. 이 쉐끼야. 쩍팔료서 증말.”


다시 유리 가슴이 성수에 닿을 만큼 기대.

“오뽜, 좋냐궈. 그래서 좋냐궈! 솨룽훼? 솨룽 같아?”


이번엔 재훈에게 어깨동무하며.

“눼가 예존에 고붹했지 너 이 쉐끼한테.”


유리는 외로워보였다. 사랑 찾아 떠난 성수와 재훈을 원망하기도 했으며, 때론 그것이 트루 러브가 맞는지 확인하고자 하였다. 얼마나 깊게 묻고 싶던 건지, 과하게 밀착한 탓에 성수와 재훈은 유리 가슴의 물컹거림을 느꼈을 테다. 그저 곁눈질로 보고 있던 내가 말리고 싶던 정도였으므로, 내일이 오면 후회할 것이 뻔하였다. 술이 원수였다. 맨 정신이 아닌 유리는 죄가 없다. 그러며 이따금 나의 주취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어땠나, 유리 같았나, 재훈 같았나, 아님 성수 같았나. 이럴 때 아니지. 좌우당간 저러지는 말아야지. 곱게 마셔야지. 아무렴 그래야지. 그때로 제목은 “반면교사”가 되었다.


“오뽜, 우리 집에서 한 좐 더 할꽙?”


등에 업힌 동해부터 달고 온 러시아산 킹크랩과 나는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하철 문으로 내가 비추었다.


*

덧붙여,

어제 네 번째 책 계약하고 왔습니다.

좋아서 출판한다는, 책 만드는 일이 자기 희열이자 중독이라는

너무나 멋진 대표님과 함께 작업하게 되었어요.

그녀 열정에 매료되어 고민 없이 계약하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배움이 있을 거 같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쟈스민 3종 셋뚜셋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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