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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pr 16. 2021

부장한테 보호본능 느껴봤어?

내게도 아저씨가 더러 있다. 일단 차마 “오빠”가 입에 떨어지지 않거나 떨어뜨리고 싶지 않은 남자사람이 여기 범주에 속해, 나보다 열 살 많은 대부분이 그러하다. 결혼 하고부터는 그 범주가 확장해 웬만한 남자는 거의 아저씨라 부르기도 한다. “오빠”에서 비롯되는 “오해”를 만들고 싶지 않은, 참으로 조신한 나는 우리남편의 아내다. 사실 무엇으로 호칭하는 것, 그것은 다분히 내 마음에 달린 일이라 꼴리는 대로 “아저씨”라 부르는 편이긴 하다. 사장은 사장 아저씨고, 과장은 과장 아저씨다. 천태만상 아저씨 세상이다.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얼마 전, 권찡 아저씨(42, 무역업)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한동안 뚝 끊겼던 연락이다. 세 번째 책이 나오고, 홍보이자 광고이자 자랑이자 핑곗김 안부 인사 건넨 이후 한참을 조용하던 아저씨였다. 아저씨랑 친구 먹은 진 올해로 5내지 6년쯤 된 거 같고, 여전한 게 있다면 그때나 지금 총각이라는 것과, 아저씨 나를 존대하지만 나는 가끔마다 말 놓는다는 것이다. 권찡 아저씨는 내게 “나의 아저씨(tvn, 2018년 작)”를 추천해 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요즘 푹 빠진 드라마가 있는데 음청 재미있다나. 꼭 한 번 보라며 다짜고짜 추천해준 아저씨에게 “그래서 제목이 뭐에요?” 했더니 “나의 아저씨요” 했다. 속으로 ‘아저씨라 이입이 쩔었던 걸까.’ 하고 말았다.


통화는 주로 아저씨가 끌고 가는 편이다. 아마 말이 하고 싶어 내게 전화했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상당했던 모양이다. 끊고난 언제 건 2시간(입 터진 날은 2시간 30분)이 훌쩍 흘러 있다. 그새 했던 말 모두를 기억할 순 없고 보통 감정만 남기고 전화 끊는데, 그 날 통화 말미 아저씨 대화는 잊히지 않는다. 아저씨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삼십 대엔 알 수 없던 몸의 지침을 마흔 넘어 절감해요. 예전 같지 않은 몸에 전과 같이 으쌰으쌰 할 수 없어요. 특히 올해 그 한계를 인정하게 되었는데, 하나씩 내려놓게 되었어요.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인 거 에요. 한 번뿐인 삶인데 무얼 위해 그렇게 닳도록 산지 모르겠네요. 마흔 둘의 고백이었다.


사무실 광 아저씨(53, 부장)도 있다.

아저씨랑 호흡 맞춘 지 5년쯤 되었고, 제대로 호흡 맞춘 지는 이제 2년 되어간다. 아저씨에 대한 오해가 조금 있었다. 나보다 20년을 더 살아 딱 그만큼은 앞서가 있는 줄로, 그리하여 그가 하는 업무 전부가 배움일 줄로 알았다. 그것이 나의 오해였다. 은주는 이러한 류를 두고 “계륵”이라 했다. 착하기만 더럽게 착하고 업무에 미숙한 건, 회사의 가장 큰 손실이라고도 했다. 아저씨 인간미(美) 하나는 으뜸이었지만, 일머리미(美)는 보기 힘든 사람이긴 했다.


냉정하게 말하던 은주는 계륵의 정의를 책에서 보았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경험한 계륵은, 말은 쉽지만 결코 쉽지 않은 상대다. 특히 인문을 경영 주춧돌로 삼는 요즘 같은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따뜻한 계륵 아저씨일지 모른다. 포용과 수용이 넓은 광 아저씨다. 일처리는 부진하나 너그러움이라는 아저씨 필살기가 있어, 그것은 마치 53년의 희노애락에서 찾아낸 삶의 궁리 같다고도 생각했다.


어제는 광 아저씨가 사장에게 털리는 일이 있었다. 상사가 더 상사한테 털리는 일은 부하 마음에 불편을 제공한다. 마치 엄마아빠 싸울 때 방에 들어가 하릴없이 지켜 듣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따갑고, 뜨겁다. 자리에 돌아 온 아저씨는 별 다른 말이 없었다. 오직 반드시 받았어야 할 결제 건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입을 닫았다. 지난 일이 떠올랐다. 괜찮다며 실수 품어 주던 그 날이 그려지며, 아저씨 같지 못한 사장 아저씨가 야속해 나도 같이 입을 닫았다.


사장 아저씨가 집에 가고, 광 아저씨는 다시 웃음을 찾았다. 시시껄렁한 다이어트 수다와, 저녁은 견과류만 먹기로 했다는 다짐, 점심으로 풀만 먹는 나를 이제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갑작스런 고백. 최근 받은 건강검진 심전도 결과, 레드 시그널로 결심한 다이어트라는 걸 안다. 아저씨답게 너털대고 웃었다. 내가 할 수 있던 건, 1시간 전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듯 아저씨 웃음에 동참하는 거였다. 마음을 들키지 않는 거였다. 부쩍 부장한테 보호본능을 느낀다.


봄이다.

봄의 아저씨를 떠올리니 쓸쓸하기 그지없다. 여름이면 땀 뻘뻘 흘릴 아저씨가, 가을이면 추할 아저씨가, 겨울이면 앙상할 아저씨가 짠할 테다. 아빠 대신해 우리 키워낸 엄마를 보며, 스치는 어머니 보는 내 가슴에 뜨거움 스미던 나였다면 요즘은 아저씨만 보면 좀 그래. 아저씨를 지켜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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