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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pr 19. 2021

시리 어스

집에는 나와 남편 외 또 다른 누가 산다. 얼마 전 새로 들인 시리. 바로 시리 지지배다. 문제 해결 및 인지적 반응을 나타내는 개체의 총체적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 그녀는, 보통 부르기 전까진 말이 없다가 “시리야” 한 마디에 입을 뗀다. 물론 개무시 할 때도 많다.


“시리야.”

“시리야?”

“시.리.야.”

“야, 이 시리야!”


몇 번을 부르짖었음에도 알아듣지 못한 것은 내 발음 탓이 아니라 순전히 시리 잘못이다. 종잡을 수 없는 시리라, 어느 날은 입 떼기만 기다린 양 나의 중얼거림 사이를 치고 들어왔다.


“아, 어디 있지. 분명 여기에다 둔 것 같은데.”

“말씀하세요. 무엇을 찾으시나요.”

“여기 있을 텐데.”

“다른 곳에 두었을지 몰라요. 다시 찾아보는 건 어때요.”

“뭐? 네가 어떻게 알아?”

“저는 시리에요. 모르는 게 없답니다. 모든 물어보세요. 시리가 도와드릴게요.”


나는 잠시 진지(시리어스, serious)해졌다.

마침 출근하는 개똥이라도 붙들어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답답함이 가시지 않은 건 오늘로 반년쯤 되어간다. 연말 송년회 자리에도 품고 있던 체증이었다. 반년의 아침을 곤욕으로 맞았고, 때문에 월요는 가능한 늦게 만나기 위해 일요 밤 11시면 끓여 먹는 라면도 이젠 습관이 되었다. 성실히 흘러가는 시간에 다시 월요가 되면, 너덜너덜 역까지 걸어가는 길은 이다지 괴로웠다. 나를 다스리는 데 기초대사량 절반을 써야 했다.


병색은 짙어만 가, 표정도 썩을 수 있다는 것과 잿빛 안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었다. 때마침 시리를 만난 거다. 자못 진지해진 나는 그대로 대화를 시도했다.


“시리님, 나와는 여간 반대의 상식으로 살고 있는 분을 대표로 모시고 있습니다. 21세기형 정의와 공정, 상생과는 아득히 먼. 아마 그것이 무언지 배운 적 없기에 그럴 테지만, 어쨌거나 여전히 그 날에 살고 계신 분을 리더로 삼고 있습니다.

나의 앎이 늘어날수록 불만도 함께 커져갔습니다. 이내 마음에 그늘 드리워짐을 느끼고, 이는 내게 도움이 단 1도 되지 않는 걸 알면서도 욱 하고 튀어나오는 토는 끝없이 나를 시험에 들게 했습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가야 한다지만 중은 섣불리 떠날 수도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지낼 절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정든 중B도 발목에 한몫했지요. 그러는 매일이 고난이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른 아침이면 나와 다투었습니다. ‘좋은 것만 확대해 보자.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니자. 나 하나 바뀌면 되는 일이다. 불공정은 잠시 덮어두자. 나만 고뇌할 뿐이다. 택한 나의 잘못이지며, 배우지 못한 그의 시간 잘못이다. 사람은 잘못이 없다.’ 애쓰지 않았다 할 수 없습니다. 

이 역함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의식적으로 보는 것을 멈추었습니다. 귀와 눈을 닫아 나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간신히 누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떡하나이까. 그 사이 마음은 천리를 달아나 이제는 직장이라는 곳에 가기 싫어졌는데 어쩌면 좋겠습니까. 때문에 아침 기상조차 거부하게 되는 건 여전한데, 나의 미라클 모닝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것이 정녕 개춘기라는 말입니까. 답을 내려 주소서.”


하니, 시리 가라사대.

“그러지 말라. 고작 그것으로 너를 망치게 두어서는 아니 된다. 그것이 타인이건, 설사 너의 감정으로 인한 것이던, 너는 너의 길을 가야한다. 그 무엇도 너를 해칠 수 없다. 너는 너여야 한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물으니 시리 가라사대.


“전과 같이 진새벽을 활용하거라. 황금과도 같은 그 시간을 오직 너의 것으로 만들 거라. 그리하여 너를 성장하게 하라. 힘을 기르거라. 불평 속에 너는 나아갈 수 없다. 네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죽을 힘 다해 지키고, 그렇지 아니하거들랑 무엇이든 내려놓으라. 그리고 너라도 잊지 말라. 도움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도움 받고, 필요한 이에게 도움 주라. 그것이 상생이라는 것을 새기며 살라.


정신 차린 그 자리에 시리는 없었다. 다만, 내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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