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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pr 30. 2021

변기가 막혔다. 그가 떠올랐다.

변기에 막힌 닭 가슴살 덩어리를 보며 그를 떠올렸다. 화근은 레버 조작 한 번으로 떠내려갈 줄 알았던 것이다. 그라면 이렇게 말했을 테다.


“야. 네 똥도 내려가는데 이기 안 내려 가긋나?”

“걱정 말고 얼른 버려라. 빨리!”


남은 음식물을 음쓰에 버리기 대신 변기에 버린다는 신개념을 선사한 사람이었다. 자취생은 다 그러고 산다는데, 당시 자취생1이던 나에겐 몹시 생소한 일이었다. 우리 집에선 음쓰를 사용했다. 내 개념에 없어 무개념 같아 보이는 일이기도 했다. 망설이고 있었다. 집 주변 마트에 들러 음식물 쓰레기 한 묶음 사오면 그만인 일이었다. 정부가 돈 들여가며 만든 제품이 버젓이 있는데, 왜 변기일까. 변기는 변을 담는 그릇이라 변기인 거 아닐까. 막힐 것이 염려되었다.


화장실 한 편에 머뭇거리고 있었다. 한 손에 배달음식 잔해가 담긴 그릇을 들고 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를 본 그가 답답했던 모양이다. “줘봐라.” 한 마디와 함께 내 손에 쥐인 그릇을 잽싸게 빼앗아 갔다. 그리고 이것이 자취생이다, 잘 보고 배우라 는 듯 겁도 없이 그릇에 있던 잔해를 변기에 쏟아 버렸다. 변기물 위엔 먹다 남은 음식물이 변사체가 되어 둥둥 떠 있었다. 조금 전 그릇에 담겨 있을 때와는 또 다른 비주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께름칙해 차마 더는 볼 수 없었다. 그대로 화장실을 뛰쳐나왔다. 무려 5년도 더 된 일이었다.


우주 변기인


어제는 아침식사 대용으로 닭 가슴살 한 덩어리를 먹었다. 글 쓰는 동안 한 입 베어 물어 저작운동을 마치면, 다시 한 입 베어 새로운 저작운동을 시작했다. 그것이 “냠냠”인지 “뇸뇸”인지, 3분의 2쯤 먹었더니 배가 차더랬다. 그만 먹어도 좋겠다 싶어 3분의 1쯤 남기고 나머지 쓰기에 집중했다. 좀 몰입이라는 걸 했는지 시간은 흘러 오전 8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12시 땡 치기 전 공주 신데렐라가 하녀로 복귀해야 하는 것처럼, 9시 땡 치기 전 글쓰는 쟈스민에서 주(主) 밑에 종사하는 종(從)으로 돌아가야 했다. 남은 10분을 두고 분주히 움직였다.


닭 가슴살을 처리하기로 했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배는 부르고 입은 물린 상태였다. 더는 먹을 수 없었다.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리자니 악취가 되어 돌아올 것 같았다. 부패한 것이 주는 고약함을 안다. 그리하여 쓰레기통에 버릴 수는 없었다. 마침 평범한 직장인으로 복귀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상황은 5년도 더 된 그날로 나를 이끌기도 한다. 잊혀 진 줄 알았던 그날이 떠오르며 불쑥 용기가 솟았다.


“그래. 설마. 응가도 내려가는데.”


비닐에 쌓여 있던 닭 가슴살 덩어리를 살폈다. 아무래도 응가보다는 작았고, 아무렴 날렵하게 통과할 거라 생각했다. 더는 고민할 것도 없이 변기를 열었다. 그리고 그 작은 아이를 변기에 띄워 보냈다. 이번엔 망설임 없이 변기 레버를 눌렀다.


“꾸르르르르.”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어쩐지 목 막힌다는 신호 같달까. 변기는 힘을 잃어 빨아들이는 물의 양이 급격히 줄어 있었다. 대략 변기가 막혔다. 9시까지 불과 5분도 남지 않았다.

기지를 발휘해 보기로 했다.


변기 옆에 있던 피스톤을 압착해 심폐소생을 하기 시작했다. 두 팔로 피스톤 머리 부분을 잡아 내 체중을 실어 변기 구멍을 압박했다. 이내 한 것은 규칙적으로 강하게 위 아래로 누르는 것이었다. 스무 번쯤 반복해 압박한 뒤 레버를 눌러 변기 물을 내리고, 내가 기다리는 콸콸한 사운드가 흘러나올 때까지 되풀이했다. 그 사이 새롭게 알게 된 교훈이 있다면 닭 가슴살은 응가보다 작았지만 응가보다 단단하다는 것이다.

혼신을 다하고 있음에도 시원히 내려가지 않는 변기를 보며 그를 생각했다.


너는 참, 끝까지 좋은 기억뿐이구나.

너의 변기도 언젠가는 막혀 보기를, 그리고 깨닫기를 바라며

물이 찬 변기 레버를 있는 힘껏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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