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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pr 26. 2021

깡패 아저씨

그 날도 깡패 아저씨 피해 돌아오는 길이었다.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직선거리를 갈지자 형태로 돌아가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었지만, 별 수 없었다. 아저씨만 나타났다 하면 동네 아이들은 어김없이 소리 질렀다.


“꺄악! 깡패 아저씨다! 깡패 아저씨!”

“꺄아아악!”


김이 내지르는 소리는 마치 경고음과 같아, 깡패아저씨 최약체이던 우리는 술래잡기 하느라 숨어 있다 말고 각자 집으로 튀어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있던 작은 터널에 상주하는 아저씨가, 초등학생이던 내겐 위협적인 존재였다. 검붉어 그것이 술 톤이라 불리는 모습도, 아마 알코올중독이라 그렇게 된 것이라는 추측도, 빈 수레에 싣고 다니던 나무 막대기로 아이들 팬다는 뜬소문도, 아저씨를 경계하기에 충분했다. 엄밀히 말해 전부 추정에 지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저씨는 깡패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우리들 사이 은밀한 언어로 깡패 아저씨가 된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처음부터 깡패 아저씨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다만 우리가 본 첫 그의 모습이 깡패 같았을 뿐이고, 보다 어쩌면 처음부터 술주정뱅이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지금에야 만땅 취한 모습으로 빈 수레만 끌고 다니는 걸지도 모를 일이다. “꺄아악” 소리 지르며 도망가는 우리를 보더니 아저씨는 잔뜩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뭐 임마? 너 이리와, 이리 내려와. 이자식이!”


잠깐 째려보더니 다 썩은 나무로 만든 빈 수레 끌고 다시 제 갈길 가는 아저씨였다. 그제야 우리는 술래잡기를 재개할 수 있었다. 아저씨가 지나 간 자리는 평화로웠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두려움보다 한동안 오지 않겠다는 확신이 우리 마음에 이었기 때문이다. 술래이던 최가 나를 발견할 때까지, 나는 모종의 안도감으로 고무 대야 옆에 숨어 있었다.


최는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도 찾지 못했다. 알 수 있던 건 “찾았다!”라는 외침을 아직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개라도 찾아주었으면 하는 바람마저 들기 시작했다. 다리에 쥐가 나 술래인 최가 나를 발견한 들, 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따분한 시간이었다. 그 무렵이었다. 무료한 나머지 생각이라는 게 차올랐다. 그리고 그리움과는 별개로 조금 전 지나간 깡패아저씨가 떠올랐다. 아저씨 괴물 보듯 대하는 가능동 아이들, 괴물 취급당하는 아저씨. 그런 아저씨 기분은 어땠을까를 떠올리며, 돌연 깡패 아저씨는 따뜻한 사람이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실 아저씨가 폭력에 휘말렸다거나, 돈을 훔쳤다거나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일 없었다. 아저씨 정체조차 모르던 우리였다. 그저 한 결 같이 취해있어 그것이 횡포 같았을 뿐이다. 우리아빠같이. 우리아빠는 깡패가 아니라 단지 내가 미워했던 사람인 것처럼, 깡패 아저씨도 술의 기운을 빌려 사는 사람일 수 있겠다 문득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저씨 때문에 매일 돌아 간 하교 길은 어린 내가 만든 겁 때문이었는지 모를 일이 되었다. 만들어낸 겁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잃었던 것이다. 우선 언제나 수고스러운 하교 길이었다. 아저씨 자주 출몰한다는 오후 2시부터 3시, 그 시간을 피해 친구 집에 기생하기도 했고, 혼자 오는 날엔 한 마을 넘어 가는 사서고생을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고된 건 마음이었다. 수업 마쳐 집에 갈 때면 그랬다. 아저씨 있으면 어떡하지, 아저씨 만나면 어떡하지, 아저씨가 나 잡아가면 어떡하지. 지금 이 키에 머물러 있는 건, 더 자라지 못한 건 그때 느낀 압박 때문인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아저씨를 잃었다. 오직 겉모습만 보고, 우리는 그의 가능성 전부를 닫았다.


“찾았다!”


집에서 잠이 들어버린 정을 술래 최가 드디어 발견했다. 나는 하던 생각을 멈추어 쩔뚝거리는 다리로 고무 대야 곁을 나설 수 있었다.


멈추었던 생각을, 이십년도 더 흘러 어른이 된 지금 다시 재생시켜 본다. 어른이 된 내가 만든 겁은 무엇일까. 나는 내가 만든 겁에 짓눌려 살진 않았나.


그리고 다짐해 본다. 그러지 말아야지, 잃지는 말아야지. 겁이나 도망가지는 말아야지.

술래잡기하던 날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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