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나에게

by 손은경


누운 밤 생각으로 가득 차 차마 잠들지 못하는 나에게, 오늘은 훗날 읽을지 모를 글을 쓴다. 오밤중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 노트북 앞에 앉은 건 지금에 써야 할 말이라서겠지.






2년 채 못 되었으니, 그것만으로 오랜 시간 고민했음을 안다. 미숙하고 아득해 보이지 않던 시간은 8년쯤으로 길었다. 그러다 분별이 성숙해, 보이고 들리게 된지 2년이나 지났으니. 10년 중 고작 1/5이나 절대 적지 않은 건 너의 마음고생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출근길 울렁이는 속과 자주 아픈 몸으로 발현되었다. 우리의 본능은 기대한다고 믿는다. 무의식의 선이 우리를 맑고, 화목하고, 따뜻하고, 바른 곳에 위치시키고 싶어 한다는 걸. 몰아치는 답답함에 한숨 쉴 때면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은 컴컴한 응원을 해주곤 했다. 어디가나 다 그러니 참아, 혹은 어쩌겠냐. 위로가 될 수 없었다. 적응해 버린 그들을 연민하는 감정만 키워줄 뿐이었다.







그렇게 버틸만 하다던, 참을 수 있을 거라던 나의 의지는 이제 아집이 되었다. 어쩌면 아집이 되고야 결정지을 수 있던 거겠지만 불가피한 견딤을 오래도록 해왔음을 깨닫는다. ‘불가피’와 ‘견딤’은 만나선 안 되는 거였다. 너는 둘 다를 어깨에 진 채 낑낑대고 출근해왔으니 고생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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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기 전에 나가야 했다. 그래서 너는 나가는 것이다.

작가이기 전 너는 직장인이었다. 좋은 대학을 나와 보수 높은 직장에 취업하기를 지상 최고로 배운 까닭에, 직장인으로 오래 살아온 내게 쉬운 결심은 아니었다. One of 직장인이기를 바라던 세상에 대한 탈피라서다. 첫 직장 최종 합격소식을 전하고 나의 엄마가 기뻐하던 날이 떠오른다. 그제야 한시름 놓은 듯, 엄마는 안심했고 하물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 “더 이상은”, “퇴사하겠다”, 는 내 말에 할 말을 이으려다 만 엄마 목소리를 기억한다. 마련한 뒷구석이라도 있는 건지 묻고 싶었으리라. 실은 말리고 싶었으리라. 언제 끝날지, 과연 끝나기나 할지 싶은 노후 준비로 여전히 당직근무 서는 엄마라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그랬으리라. 속 시원히 “그래, 하고 싶은 거 해.”할 수 없어서였으리라. 허나 엄마는 “우리 딸 알아서 잘 하겠지.”라며 이번에도 나를 믿어주었다. 뒤이어 나는 말했다.







“알아서 할게. 걱정 안 해도 돼.”






엄마에게 더 줄 말이 없어 맺은 인사였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지만 엄마가 걱정 않도록 잘 해보겠다, 는 말만 진실로 남기 때문이다. 그렇다. 뚜렷한 보장은 없다. 이직 대신 간헐적으로 고용되는 프리랜서의 삶은 원래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는 건 실재하는 믿을 구석 때문에. 부서지지 않는 몸뚱이와 정신. 내려놓을 게 많지 않다는 특장점 또한 나를 돕는다. 가볍고 싶다.







읽고 쓰며 나부터 변해야 할 것과 나만은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을 배운다.

그리하여 나가기로 한다. 변해야 할 것은 내가 아니라 그곳에 있기에. 지금이라면 퇴사가 나의 소모된 감정과 건강을 전부 회복시켜 같지만 후에 후회가 찾아오는 날이 있을 거라는 걸 알아도.

그래서 나에게 쓰는 편지.







여기를 벗어나는 순간이 고통의 해결일 수는 없다. 어느 때건 또 다른 고통이 찾아와 성장의 문을 열어줄 테다. 아프겠지만 기꺼이 즐겨야 한다. 무럭무럭 자라게 될 테니. 다만 환경이 바뀌게 되었다는 것 하나로 너는 건강해지겠지. 지금으로선 그거면 되었다. 생계를 위해 마지못해 다니던 역함에서 스스로 자유로워지기를 결정했으니. 퇴사라는 작업에 이토록 두려워했던 것을 가소로워 할 날을 기대한다.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선택을 최고로 만드는 것,

그 뿐이다.







너의 날을 축복한다.

젊은 날의 멋진 예가 되기를 바라본다.






2022.02.06. 자정께


잠 못 이루는 내가

꿈 꾸는 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