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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Feb 25. 2022

다독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글을 잘 쓰려면 다독해야 한다는 조언 한 번쯤 들어보을 겁니다. 책 많이 읽으시라고요. 더 드릴 말이 있어 꺼내는 이야기지만, 우선 맞는 말입니다. 읽고 쓰기는 불가분의 관계지요. 이것은 마치 먹었으니(읽었으니) 화장실 가는 것(쓰는 것)과 같다는 지인 비유가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이는 때에 따라 틀린 말이 되기도 합니다. 오해가 빚어질 때. 화자의 의도는 쏙 빼고 글자 생김 그대로 해석하다가 생긴 오해, 그러니까 '다독하면 글을 잘 쓰게 된다'라는 자칫 틀린 말이 됩니다. 맥락이 빠진 문장은 독이 되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독만 해서는 글이 늘지 않습니다. 가까운 지인을 빌려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그는 1년에 200권씩 10년 넘게 독서해 온 독서광입니다. 200권 곱하기 10년 하면 2000권인가요? 그만큼 독서량도 상당하시고요.


경력만큼 독서 수준도 높으신 분입니다. 독서력만 본다면 저보다 힘이 세다고 할 수 있죠. 연간 200권에 달하는 책을 읽은 기간은 고작 1년쯤이고, 자신 있게 독서 인구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도 몇 년 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분에 비하면 책 읽는 어린이에 불과합니다. 유치부로 가야죠.



다만 쓰기 종목으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글로 표현하는 힘은 제가 조금 센듯합니다. 그분 글을 읽다보면 조금 혼란스러울 때가 생깁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일까' 하고 고민하게 됩니다. 다시 첫 문장으로 가 반복해 읽어야 합니다. 핵심을 찌르지 못한 채 그 주변부를 맴도는, 불필요한 문장을 남발한 까닭입니다.


반면 주저리 없이 쓰인 제 글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읽힙니다. 문단 생김새도 그럴싸하고요. 한 번에 슥 읽힌다는 읽는 즐거움이 있죠. 자랑 같지만 그게 본 의도는 아닙니다. 그저 많이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쓰기에 관해 이야기 하는 중입니다.


그분은 저보다 월등하게 많이 읽어 왔습니다. 허나 써본 양은 절대적으로 제가 많았지요. 실제로 글쓰기 시작한 지 몇 개월 안 된 분이었습니다. 비단 그분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뭉텅뭉텅 덩어리진 생각을 글로 푸는 게 한편 다독과 관계없는 일 아닐까,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읽기는 쓰기의 양분이 맞습니다. 입력이 있어야 출력이 생기는 것처럼요. 여러 분야에 걸쳐 고르게 입력된 지식(혹은 간접경험)은 모두 쓰기 재료가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제게 없어 저는 쓸 수 없는 말을 다독가들은 쓸 수도 있겠죠. 허나 다시 말하지만, 많이 읽는다고 잘 쓰게 되는 건 아닙니다.




쓰기 실력이 느는 다독은 두 가지를 전제로 합니다. 하나는 의식적으로 ‘글’을 읽는 것(그러니까 단순히 텍스트를 읽어 나가는 게 아니라, 작가가 ‘어떻게 썼나’를 주의 깊게 관찰하며 읽는 것), 다른 하나는 읽고 ‘쓰는 것’입니다. 결국 써야 글력(쓰는 힘)이 생기거든요. 프로틴(단백질)을 아무리 많이 마신들 웨이트 트레이닝 안하고야 근육 생길 턱이 없는 것 처럼요. 그래서 오늘은 의식하며 읽기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촉을 세워 읽어야 합니다.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임 자체를 인식해야 합니다. 작가가 어떻게 썼는지를 봐야합니다. 내 문장과 문단이 이리 쿵, 저리 쿵 부딪혀 찌그러지지 않고 똑바르게 전달되려면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책엔 배울 게 정말 많습니다. 꼭지 단위로 살펴볼까요. 저라면 우선 꼭지 제목을 볼 겁니다. 문장으로 풀어쓴 형인지, 명사형인지 볼 거고요. 어휘나 표현도 살필 거예요. 그 다음 본문으로 넘어가겠죠. 꼭지 제목에 얼마나 찰떡인 글을 썼나, 어디 한 번 봅시다, 하고 첫 문장을 읽기 시작할 겁니다. 도입이겠습니다. 독자 마음을 확 빨아 당길 매력적인 도입구가 쓰였나 볼 겁니다. 와우, 감탄하는 때면 따로 메모 할 거고요. 글 전반에 걸쳐 흐름을 따라가 보고, 문단 배치, 문단과 문단의 연결, 쓰인 문장 등 샅샅이 탐사할 겁니다. 어떤 예시가 쓰였는지, 구조는 어떠한지 모두. 그리고 다시 돌아와 꼭지 제목으로 갈 겁니다. 제목 한 번 잘 지었다 생각들 때면 ‘크~’하고 얼큰한 경이를 표할 겁니다. 잘 쓰게 되는 독서는 이런 겁니다. 요모조모 글 쓰임을 살피는 일 말입니다.



감각을 살려 읽다보면 글 센스가 생깁니다. 텍스트만 훌훌 읽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유심히 살펴보는 관심에서 비롯된 능력입니다. 이것은 작가 역량이 됩니다. 센스가 발달하면요, 조사 한 음절 넣고, 빼고에도 글투를 알아차려요. 예시 하나 보일까요.



은경은 매일 쓴다.

은경이는 매일 쓴다.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그 차이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나요? 우선 주격조사 ‘이’가 아래 문장에 생겼고요. 어쨌거나 은경이 매일 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던 거였고요. 음. 그뿐인가요? 자, 다시 읽어 봅시다. 은경은 매일 쓴다. 은경이는 매일 쓴다. 첫 번째 문장을 보면요, ‘은경’을 3인칭 인물로 표현했어요. ‘은경이’도 마찬가지지만, ‘이’ 하나가 붙음으로써 친근해졌어요. 다시 보세요. ‘은경’이라고 지칭할 땐 은경이라는 3인칭 인물은 그 인물 자체로 들려요. ‘은경’이라는 사람. 그나 그녀처럼 그 자체로 존재하는 사람. 반면 ‘은경이’가 되면 화자랑 맺은 관계가 드러나는 거죠. 친밀한 사람. 적어도 화자보다 연령이 어리거나 비슷하겠다. 친근한 사이겠다. 법문에 ‘나(or)' 또는 '고(and)' 한 음절로 법 적용 여부가 결정 나는 것처럼, 법조계 종사자는 작가의 예리한 감각을 이해할 겁니다.



자음이나 모음 하나 고민하느라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건 아마 직업병이겠죠. 종이가 아니라 한글 파일이라 다행입니다.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며 너덜너덜 구멍 났을 테니까요.







덜거나 배치를 바꿈으로써, 혹은 서술 방법에 따라 글의 보임이 달라짐을 봅니다. 같은 글자의 나열이지만 누구를 주어 삼느냐, 니은(ㄴ)을 붙이느냐 마느냐, 단어를 앞에 놓느냐 뒤에 놓느냐에 따라 달라요. 동일한 의미를 전달하는 건데도 말이에요. 보임이 달라지니 읽힘도 달라지겠죠. 작가들이 접속사를 배제하고, 불필요한 적, 의, 것, 들은 삭제, 지시대명사 대신 주체 고유로써 이야기 하는 건 여러분을 감화하기 위한 일련의 애씀입니다. 작가는 조사 하나에도 감각하는 센서를 가진 사람입니다. 글은 스토리긴 하지마는, 토시 하나 때문에 글맛이 바뀌기에 우리는 예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심함이 모여 글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리고 섬세한 감각은 오직 씀으로 단련할 수 있다는 것.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 쓰인 유시민 작가님의 격언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책을 많이 읽기만 하면 다 글을 잘 쓰게 될까?
그렇지는 않다.
독서는 글쓰기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유시민 저



고로 써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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