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은경 Apr 11. 2022

생경한 한강의 얼굴들


어느 계절은 우리를 가만두지 않고 밖으로 꺼내고야 만다. 이 좋은 날 집에 머물기는 모종의 죄로 작용하는 듯, 죄책감에 나가고야 마는. 지난 4월 9일, 여의도 벚꽃 축제를 거쳐 한강엘 갔다. 무려 3년만에 만난 날이기도 했다. 반팔차림이 어색하지 않은 따스한 봄이었다.





꽃길인 여의서로(국회뒤편)에 진입하니 인파로 도로가 가득 찼다. 도로엔 개화의 절정을 달한 벚꽃이 늘어서 있었는데, 공간을 지배한 분홍빛에 하나같이 동요된 듯했다. 다들 사진으로 담느라 초입부터 한 걸음 나가기가 더디다. 벚꽃나무는 방문객으로 점철되었다. 한 나무 건너 다른 나무 앞에 서 촬영 중이었고, 마스크에 가린 그 입은 미소짓고 있었다. 곧 그들 프로필 사진이 바뀔 것도 같았다.



3년만에 열린 여의도 벚꽃축제



우리 일행 또한 몇 장의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여간 아쉬운 게 아니던 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휴대폰이 담을 수 없어서였다. 기술은 어디까지나 현장감을 따라가지 못하고, 그건 대면의 대안인 비대면 세계에서도 마찬가지. 비로소 만났을 때 채워지는 감정이 있다.




걸으며 이름 모를 낯선이와 팔이 스쳤다. “젊음이 좋긴 좋네.”하던 노장의 혼잣말이 귀에 선명히 박히기도 했다. 그만큼 밀접한 채 걸었다. 곁을 5cm쯤 남긴 상태였는데 문득 용감해졌다고 생각했다. 2년 전 2월, 서로를 바이러스 취급하던 때에 비하면 무척이나 강해진 건 분명하니까. 원래 우리가 알고 있던 서로의 거리를 찾은 듯 할 뿐이었다.



씽씽이 주차중인 한강의 아이들



방향을 틀어 여의도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들놀이 하며 나른한 오후를 보내려던 심사였다. 다들 비슷한 마음이던지 공원엔 가족 단위의 방문자나 커플, 친구사이로 보이는 한강객으로 가득했다. 어디서 많이 본 듯 하더니 3년 전 한강에서 봤던 그 풍경이다.





양지바른 자리를 찾아 헤매다 마땅한 곳에 자리를 폈다. 챙겨 온 주전부리를 돗자리 중간에 내며, 허기를 달래기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 그제야 코와 입으로 봄 공기가 온전히 들어왔다. 푸른 잔디 냄새가 따랐다.


한강 힐링



두 팔을 뒤로 세워 살짝 몸을 뉘었다. 내리쬐는 햇발에 눈을 찡그려야 했지만 바람의 이고 나감이 해의 뜨거움을 잊게 했다. 봄은 봄이다. 나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기대앉아 주위를 둘렀다. 젓가락에 들린 치킨을 종이컵에 받쳐 먹거나 편의점에서 끓여 온 라면을 취식하기도 하는 모습, 이따금 맥주를 마시기도, 음악을 튼 채 수다를 떤다. 먹었고, 마셨고, 떠들었고, 모두 웃고 있었고. 일상이던 것들을 2년간 잃어본 뒤, 마침내 차지한 한강 잔디 한 조각에서 본 그 입들 참 오랜만이다. 노마스크 존이 된 돗자리 위의 생경한 얼굴들. 고만고만한 모습으로 웃고 떠드는 한강객을 보자니 이 순간이 벅차다. 



허락된 날씨와, 활동 할 수 있는 자유와, 우리가 모이는 것, 이 모두 얼마나 기다렸던지.

마스크만 썼을 뿐, 봄을 기다리던 우리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의 원본격 글입니다.

기사 보러 가기

http://omn.kr/1yaah




작가의 이전글 쟈스민일보(一步) 제10호 : 글글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