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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pr 20. 2022

침 닦는 제크



제크 광고를 보다 그래서 재구는 잘 사는가, 묻고 싶었다. 재구가 좋아하던 제크가 아직도 시판되고 있다는 사실에 그의 생존 여부 또한 궁금했던 것이다. 지 이름 같은 과자를 좋아한다며 (자기)어필 하는 까닭에 스승의 날 선물로 제크를 받쳐야 했던 우리. 옛날옛적 우리 고등학교에는 재구가 살았다.



재구가 좋아하던 제크



재구는 과학선생이었다. H대를 나왔고 사교육계에서 과학장르로 한 따까리하다가 공교육으로 전향한 케이스였다. 노관심이었는데 본인이 말해줘서 알게 되었다. 와이프 자랑을 그렇게 해대던 사람이었다. Y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수재에, 아이들 경제 교육을 위해 용돈은 그들 노동의 댓가로서만 지불하는 치밀함이 있고, 본인이 존경할 만큼 스마트한. 책은 또 어찌나 많이 읽으시던지, 신사임당이 환생 한다면 마치 재구 와이프가 아닐까 싶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수업시간이면 주구장창 <위대한 와이프>를 들어야 했다. 반복된 패턴이었는데 침이 마르도록 와이프 자랑을 하고 나면 아이들에게 수학 문제를 풀으라 한 뒤 책상 맨 뒤에 앉아 김을 불렀다.




“김아. 문제 다 풀었니? 잠깐 와볼래?”     




김은 긴 생머리에 눈웃음까지 장착한, 반에서 가장 여성스럽고 예쁜 아이였다. 작은 키와 높은 학구열로 인해 늘 맨 앞줄에 앉던 나는, 김이 재구의 어깨를 주무른다는 사실은 나중에 들을 수 있었다. 뒷자리에 앉던 여자애들은 곁눈질로 보고 있던 모양이었다.     




“야, 제크(가끔 재구를 과자로 불렀다) 왜 저래? 걔 맨날 우리 수학 푸는 동안 맨 뒷자리 가서 김한테 어깨 주무르라 하잖아. 몰랐어?”

“헐 대박. 진짜?”

“몰랐어? 더 어이없는 건 재구가 김의 마사지를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거지. 자식이 효도한다며 엄마아빠 어깨 주물러 주듯이, 자기는 선생이니까 학생한테 그런 은혜쯤은 받아도 된다고 여기는 거 같아.”

미친 거 아니야?”

이제 알았냐?ㅋㅋ”     



논란과 놀림의 중심은 언제나 재구로부터였다



재구는 늘 논란과 놀림의 중심에 있었다.

재구는 침 닦는 습관이 있던 사람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것 입가항상 침이 고여있던 사람이어서다. 뿌여멀건한 두 점이 입꼬리 끝과 끝을 장식하던 기억이 난다. 입가 용모단정을 위해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입 매무새를 눌러 닦던 것도. 그리곤 자신의 엄지와 검지에 묻은 침 냄새를 맡그는, 냄새 장인이었다. 그런 그를 두고 애들은 재구 침 냄새 존나 좋아하잖아, 라며 낄낄대곤 했다. 그 나이대 아이들의 말은 거침이 없고, 말의 겹을 다 벗긴 것처럼 솔직해 복근이 당길 정도로 폭소하기에 딱 좋았다. 그리고 조롱 덕에 재구에게 수업 듣는 학생들은 재구를 반면교사 삼아 침 냄새 맡기를 중단했다는 소문 나돌기도 했다.     




재구는 모르는 것 같았다. 알면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은 행동을 지속했다. 수업시간에 자기 침 냄새 맡는 것도 그랬고(어떤 애는 재구가 침 닦는 게 침이 고여서가 아니라, 침 냄새 맡으려고 하는 행위라고도 했다), “그대야”라고 부르는 것도 그랬다.   




“그대야. 오늘 수업시간 10분 정도 늦을 거 같거든. 애들 자습시키고 있어. 부탁한다, 그대여.”     




들을 때마다 꼴사나운 호칭이 있다면 두말할 것 없이 ‘그대’였다. 누구도 재구의 그대가 되고 싶지는 않아 했다. 그대야, 나와서 문제 풀어봐. 그대야, 물 좀 줄래. 그대야, 그대야…. 재구만의 의미부여가 있었으리란 짐작만 있을 뿐, 결국 이 또한 재구 성대모사거리가 되어 스터디 룸에 모인 우리들 사이 한참이나 회자 되곤 했다. 그대야 에어컨 온도 좀 낮춰줄래, 그대야 문제집 좀 빌려줄래. 그럴 때면 온도를 높였고 문제집을 창밖으로 내던졌다.     



팃낙한 제크



어떤 날들은 수학 교과서에 책을 포갠 채 교실로 들어오기도 했다. 재구에겐 가끔 그런 심보가 있었다. 자신이 유희한 책을 학생에게 공유하려는 심보, 구두로 서평 하려는 심보, 마지막으로 지식을 과시하려는 심보. 다분히 재구다워 재구스럽다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재구는 창조해내곤 했다. 그날은 팃낙한 스님 책을 들고 온 날이었다. 스님 중 ‘팃낙한’이라는 분이 계시다는 걸 처음 안 날이기도 했다. 대략 굉장히 멋진 분이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재구 말은 하나도 듣지 않아 남은 알맹이란 없었지만, 이 장면만은 기억한다. 침 닦아가며 한참 스님 이야기를 이어가던 재구가 순간 멈칫하더니 붉어진 눈으로 말했다.     




“팃낙한 책은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없어 더 못 넘기겠다. 그대들에게도 이런 책이 있나?”     




곧 눈물이라도 보일 듯 팃낙한 스님 책에 깊이 감동한 재구가 침 닦는 모습과, 여학생에게 어깨를 주무르도록 주문하는 재구는 몹시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재구의 쇼맨십을 볼 때마다 교과서에 이런 메시지를 주고받곤 했다.

- 왜 저래

- ㅋㅋㅋㅋㅋㅋ



*

해시태그

#변태 제크, #침 닦는 제크, #팃낙한 제크


광고 속 여주인공이 바삭 한 입을 베어문 것관 상관없이 다양한 제크맛이 떠오른다.

아무래도 재구는 빨간 맛.

지금도 온갖 수식어가 재구를 따라다닐지, 새로운 수식어로 둘러싸인 그가 되지 않았을지, 그럼에도 #침 닦는 제크는 살아남지 않았을런지. 여전히 미지수로 남는다.

     

그러나 어떠한 재구 건 제크를 먹고 싶지는 않다.

학창시절을 추억할 재구면 충분하다는 것 외에 더 바랄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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