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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pr 29. 2022

[Interview]퇴사 40일차, 잘 지냅니까?(1)

쟈스민일보 인터뷰 1탄



바야흐로 퇴사의 시대인 듯하다.

필자의 지인인 ‘아나’는 올 1월 십여 년간 다니던 회사를 나왔다. 그 거대한 공기업에 다니고 있어 우리의 선망을 사던 그였지만, 아무래도 이만하면 됐다고, 더는 시키는 일만 하며 살고 싶지 않다며 진짜 삶을 찾아 떠났다. 비슷한 즈음으로 또래 직장인 이 또한 퇴사를 감행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라 출근하는 매일이 죽을 맛이라더니 결국 본인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던 모양이다. 그보다 3개월 전쯤엔 경미가 나가기도 했다. 돈 걱정을 하면서도 월급보다 소중한 무언가가 회사 밖에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다들 퇴사자가 되었다.





필자 주변의 일만은 아닌 듯 했다. 그간 이토록 긴 사직행렬이 줄을 잇던 시기가 있었나 싶을 만큼 퇴사를 고하거나 지르는 추세로 보인다. 여기저기 퇴사와 관련한 글들을 본다. 여차저차 마음의 결정을 내렸고 앞으론 더, 잘, 해냈으면 한다고. 하나같이 비장하고 한편 가뿐하게도 느껴진다. 여기 손은경 작가도 마찬가지. 그 또한 각 잡고 사직을 준비하다 오는 3월 18일, 직장생활 12년 차에 퇴사행렬에 합류했다. 요즘은 주로 집에서 작업한다던 그를 떠올리면 ‘퇴사자 in the house’라는 노래를 흥얼대게 되는데. 아무튼 직장 다니며 1년에 4권의 책을 내었다는 수치만으로 일견 천재작가라 불리던 그에게 전업창작자로 전향한 40일은 어떠했는지, 그의 퇴사 40일을 맞아 인터뷰를 준비해 봤다. 다음은 그와 진행한 인터뷰 내용이다.






작가님, 오랜만입니다. 매번 광화문에 계셨던 거 같은데 이번엔 강서구에서 뵙게 되었네요. 잘 지내셨나요?


손: 반갑습니다. 퇴사 후 전업창작자로 돌아온 손은경입니다. 잘 지내셨죠? 광화문은 오피스 밀접지라 그런지 한 시가 바쁜 직장인들로 삭막한 감이 없잖았는데 여긴 슉슉 날아다니는 비행기를 주로 볼 수 있어서일까, 늘 여행가는 느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마지못해 가야 했던 광화문의 날들 보다 한결 설렘으로 가득한 요즘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어요. 실제로도 광화문보다 여기가 더 낫지 않나요? 하하. 아무튼 저는 너무나 건강히 잘 지내고 있답니다.





작가님 회사 생활 오래하셨잖아요. 12년 차에 퇴사하셨다고 들었는데, 막상 퇴사하니까 어때요? 퇴사한다고 하면 부러워하는 이들 반 염려하는 이들 반 같아요. 작가님은 퇴사할 때 두려움 같은 건 없으셨어요? 예를 들면 소속감이 사라지는 불안이랄지, 고정소득이 제로가 된다는 궁핍이랄지. 보통 이 부분을 많이 궁금해 하시더라구요.


손: 엄밀히 말하면 2차 퇴사이기는 해요. 첫 번째는 공부하겠다고 때려친 거였는데요. 자격증부터 따고, 그 자격이 쓰일 수 있는 분야로 재취업 하는 게 당시 퇴사의 목적이었어요. 그래서 이번 퇴사와는 전면 다르기도 해요. 두 번째 퇴사는 더 나은 종사를 위한 결정은 아니니까요.




순전히 제 몸뚱어리와 약간의 재능, 그 둘 믿고 퇴사했습니다. 앞서 전업창작자라고 저를 소개했죠. 맞아요. 요즘 저는 업의 전적인 부분을 창작에 맡기고 있어요. 어딘가에 고용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고용한 채 여기저기 글을 매개로 창작 활동 중이죠. 임금을 대가로 정해진 시간 동안 일해야 하는 의무는 사라졌지만, 따라서 고정수입도 없습니다. 월급쟁이에서 벗어나는 건 먹고 사는 문제를 내 자신이 적극 개입해 해결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리죠.





그러니까 부러움 반, 염려 반의 시선은 틀리지 않습니다. 자유를 기반으로 창작할 수 있어 전보다 몹시 즐겁지마는 수입 부분을 고민하지 않을 순 없죠. 그래서 내가 지닌 가치를 수익으로 전환 시킬 안들에 대해 여전히 고민하고 있기도 해요. 나름 재미있는 작업들이고요. 그래서 지속할 수 있는 거 같기도 하고….




결론적으로 월 고정소득이 사라진다는 건 제게 불안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일단 소정의 퇴직금이 몇 달은 버티게 할 거였고(웃음). 또 단단한 우리가 모여 ‘글방’을 형성하기도 했고. 지금이야 딱 열흘 치 먹고 살만한 강의 소득을 올리고 있지마는, 곧 열흘이 한 달로, 한 달이 일 년으로 바뀌지 않을까요. 그런 믿음으로 오늘도 글을 쓰고 수업을 준비해요. 무모하다고 여기실 수도 있지만, 저에겐 볼 수 없으나 분명하고 또렷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무모하지 않을 수 있는데요. 그 근거는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독자와 예비작가님을 이해하려는 저의 마음에서 온 것이구요. 이만하면 제가 저를 고용할 만하겠더라고요. 믿음직한 직원, 뭐 그런 거랄까요. 하하.





자기믿음! 그거였군요. 그래도 사직서를 던지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었나요?


손: 그럼요. 있죠. 있고말고요. 가까워지는 순간, 보이지 않던 진실을 보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퇴사 결심 2년 전쯤 볼 수 있었는데요. 여기도 부정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TV에 나올 법 떠들썩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건 좀 아닌 거 같았어요. 회사 지배구조도 그렇고…. 수긍할 수 없고, 수긍해선 안 되는 일들이었어요. 제가 ENFJ이기도 하거든요. 정의로운 사회 운동가라나. 유독 좀 못 참는 모습들이 있어요. 하하. 그래서인지 감정이 소모될 때가 많았어요. 분해하고 답답해하고.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믿음은 ‘좋은 글은 감정의 지배적 영향하에 있다’는 거예요. 감정의 고양을 돕는 호르몬이 온몸을 순환할 때, 활기차고 발랄하고 유쾌하고 어쩐지 들뜬 기분일 때 저는 글이 잘 써져요. 글도 유쾌하고요, 조금 더 멀리 깊게 나아가기도 하고요, 그제야 창작다운 창작을 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보면 글에 더 집중하고 싶어서 나간 거예요. 저에겐 행복하기, 가 아이들한테 피카추 띠부띠부실만큼 중요한 거라. 평생 월급만큼만 벌고 싶지 않아서기도, 막다른 골목에 있던 상태여서 그랬던 거 같기도, 그래서 일보전진 또는 후퇴 한다면 퇴사일 수밖에 없던 것처럼. 어쩐지 지금이 때였던 거 같아요. 적어도 제 느낌엔 그랬어요. 도약할 때, 컴포트 존에서 벗어나야 할 때, 더는 그곳에 있을 수 없게 된 때.





그래도 매달 25일 들어오는 월급의 힘으로 다들 눈 막고 귀 덮은 채 견디는 거 같아요. 작가님은 퇴사하고 먹고 사는 건 어떠세요?


손: 하하. 걱정이신 거죠? 감사해요. 이번 달은 지난달 25일 나온 마지막 월급으로 잘 버텼습니다. 고작 퇴사 40일차라 그런지 궁핍함을 느낄 수는 없었어요. 퇴사 전처럼 먹고, 마시고, 쇼핑하지 않고 지내다 보니 그런대로 지낼만하겠더라고요. 제가 2월생인데요. 올해 생일날 받았던 기프티콘이 또 쏠쏠하게 쓰이더라고요. 커피 마시고 싶을 때마다 기프티콘 하나씩 까먹고, 과일 받아먹고. 선물해 주신 지인들 덕분에 일정 금액 아끼며 지낼 수 있었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급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요(웃음).




그렇다고 모아둔 돈이 많거나 당장 강의 수입이 월급만 한 건 아니에요. 어쨌거나 벌이를 만들어야 하지만, 일단 소득이 적을 때를 대비한 하나의 팁이라면 적게 쓰면 됩니다.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보통 소비 줄이기를 힘들어 하시더라고요. 불필요한 소비가 많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고요. 잘 생각해 보면 집에 쌓인 옷이 정말 많아요. 올 계절 단 한 번도 못 입고 다시 농에 박힐 옷도, 신발도, 가방도 헤아려보면 수두룩 할 거예요. 그런 것들 생각하면 쇼핑 잘 안 하게 돼요. 적게 벌어도 적게 쓰니까 버틸만 해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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