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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May 06. 2022

가라앉는 엉덩이는 용납할 수 없다

출처 : 캘로그 소속 토니


엉덩이 볼륨이 꺼지고 있다.

근 2주 근력운동을 쉬고 자전거만 디립다 탔더니 고사이를 못 참고 살이 흘러내린다. 젠장.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기란 30kg의 육체 노동을 필수로 살게 한다. 하여 조만간, 그러니까 이 글을 마치고는 헬스장에 갈 계획이다. 오랜만에 헬창으로 돌아와 스쾃이며 런지, 힙 스러스트를 오지게 해낼 예정이다. 단단해질 때까지, 털린 근육으로 주춤주춤 걷게 될 때까지, 그때까지가 나의 목표 운동량이고 내일 의자에 앉는 순간 ‘악’하는 고함으로 시작하기를 바라본다.








번쩍하고 뇌리에 입력되는 문장이 잦은 요즘이다.

아무래도 전업창작자가 된 백수는 할 말이 많다. 에너지가 남기 때문이다. 남은 에너지로 하루에 책 대여섯 권을 읽어 나갈 수 있고, 어쨌거나 쓰지 않는 불안은 견딜 수 없어 그런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넷플릭스 효과음처럼 ‘두둥’하고 문장이 떠오를 때마다 컴퓨터를 켜 글을 쓸 수 있다. 불과 두 달 전, 김부장 부름에 아이디어를 날려할 일은 이젠 없다.








마구 쓰기 시작한다.

일단 가볍게 제목부터 정한 뒤, 미약한 기억력에 곧 허공으로 흩날릴지 모를 문장부터 잡아 때려 넣는다. 지우가 포켓몬을 잡듯, 은경몬은 문장을 한글 파일에 가두는 것이다. 닥치는 대로 잡는다. 두서없이 쓰여 뭐라는 지는 오직 나만 알 수 있을 정도로 가까스로 키워드만 붙잡아 둘 때도 많다. 그러고 나면 문단을 채운다. 얼굴 그리기로 따지면 눈매와 콧구멍만 그린 채 눈동자와 콧등을 스케치 하는 형태다. 종종 그보다 더한 입술 점에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거나 그러다 보면 사람의 얼굴이 되기는 하는데, 다만 처음에 그리고자 했던 얼굴이 얼추 비슷하게 나오기도 하고 전혀 다른 인물이 되어 있기도 하다. 일단 그려봐야 알 일이다. 그러나 모두 성공적이다. “작가는 좋은 평가에 목매는 사람이 아니라, 걸작이든 졸작이든 꾸준히 쓰는 사람이니까.”라는 최민석 작가의 격언 덕에 어떤 (얼)글이던 만족할 수 있다, 며 스스로를 애무해 본다.








그러니까 내가 원래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니었는데 웁스.

또 글이 떴구려. 흠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하소연 하려던 이야기라면 (마구 쓰기 시작할 뿐 대부분은 종료 짓지 못해)그래서 바탕화면은 미제 상태의 글로 커서 딛을 틈 없고 그것은 마치 헐벗어놓기만 한 채 쌓여가는 옷더미를 보는 기분이라 영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즉, 찜찜하다 라는 감정 상태를 터놓고 싶었다. 쓸 글은 많고 마무리 짓지 못하는 꼴에 내 손길을 기다리는 글에게 약간의 죄스러움을 더해간다. 이제라도 사과할게 미안.





끄으응 하나만 더





글은 늘 퇴고 싸움이다.

마무리 글 다듬기란 집들이 후 남은 10인분치 설거지하기 처럼 보통 일 아니다. 요리 보다 뒤치닥거리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도 할 만큼 정성이 필요하고 남은 찌꺼기란 없는지 까다롭게 살펴야 한다. 다 닦아놓고 기름때라도 남아 있음 큰일이다. 뒷심은 청소력이요 글력이겠다. 문제는 뒷심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흑흑. 운동을 할 때도 나는 그런 편이다. 한 셋트 15개를 목표로 한다 치자. 그럼 초기 5개는 미친 의욕으로 활활 불탄다. 운동선수 나시겠다는 심정으로 힘차게 밀어 올리고 근육을 쫀다. 마동석급 열정인데 그러나 금세 시들어 간다. 6개부터 힘이 달린다. 몸으로 느껴진다. 그래도 어찌어찌 읍내 대표 선수급으로 해내지만 마지막 11개부터는 나몰라라, 갱장히 말랑말랑한 상태로 어거지 5회를 채운다. 그쯤이면 뇌에도 힘이 안 들어가는데(아는 이는 공감할 것이다. 운동이 잘 될 댄 뇌에도 힘이 바싹 들어간다), 그래서인지 힘 빠진 내 몸에 너털웃음이 나기도 한다. 이히히히, 아오ㅠㅠ. 망아지 웃음소리로 마지막 15회를 버텼다. 그런 나를 볼 때면 나의 PT선생 우기는 아미노산이 풍부한 소고기를 많이 먹으라 했다. 뭘 알고 한 소리인가 모르겠다만은, BCAA도 챙겨 먹으라고 그랬다. 먹어도 딱히 소용이 없어 마지막 15회가 되면 이히히힝, 하던 말 웃음소리도 빠지지 않고 새어나왔다.








그러나 글을 쓸 땐 ‘어쩌다’ 내 글이 조낸 웃길 때를 제외하고 웃지는 않는다.

운동이 한 셋트라면 한 주제당 분량을 A4 두 장이라고 치자. 그럼 첫 장은 너저분하게 널린 쓸 말들로 빠릿빠릿 백지를 채워나갈 수 있다. 헛둘헛둘 생각이 타자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이 문단에서 저 문단을 빠르게 왔다갔다 할 때도 있고, 그러다 보면 ‘이번 글 재밌겠는 걸’하며 흥분으로 더 빠르게 타이핑한다. 남편 글 쓰는 나를 보며 “우리아내 진짜 집중해요.”하는 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마찰열로 손가락이 닿는 키보드엔 스파크가 튀길 때 있다. 허나 그노무 아미노산 부족 탓인지 오래가지 못하는 게 문제다. 한 장 넘어 두 장에 도달하는 순간 나는 약간 뻗어있다.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까지 온 만큼을 또 써야해, 하는 마음의 느슨함이 생겼다. 지구력의 한계를 맞아 활활 타오르던 불길이 이젠 꺼져가는 불씨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내가 운동선수였다면 단거리 마라톤 선수여야만 했을 것이다. 그래서 두 장쯤 되면 딴 짓을 불사한다. 현재 장 상황은 어떤지, 남겨진 톡은 없던지, 좋아요가 눌리기는 했던지 따위를 확인하며 숨을 고른다. 밍기적 밍기적 거릴 거리들은 제법 다양하고 많다. 그러다








아 몰랑.

모르겠다. 머리가 더는 안 돌아간다. 문장도 안 고쳐지고. 구조는 웬 구조, 비문은 무슨 비문. 일단 다시 두뇌를 풀 가동할 에너지부터 채우자! 하고는 가래떡을 구워 먹는다. 설탕 뿌린 간장에 찍어 먹는 가래떡은 제법 먹을 만한 추억의 간식이다. 쫩쫩쩝쩝, 그러다 보면 책이 읽고 싶어지고 유튜브가 보고 싶어지기도 하며 때론 설거지 더미가 유독 눈에 거슬린다. 해야겠다. 컴퓨터는 여전히 켜져 있고 모니터만 눈을 감고 있다. 이내 하루가 저물어, 그렇게 바탕 화면엔 채 마무리 짓지 못한 찰나라는 조각들이 켜켜이 쌓여간다. 오늘 세어 보니 쓰다만 글이 열다섯 개쯤이다.








그래도 이번 글은 (가래떡을 먹고 잠시 책을 뒤적거리는 과정이 포함되기는 했으나)완성한 듯 하다. 걸작과 졸작이든 아미노산과 BCAA 없이도 써냈다. 가끔 이런 날도 있어야 되지 않겠나, 싶다.








막판에 힘이 모자라 급히 마무리 하는 감이 없잖아 있으나 이젠 운동을 하러 가야겠다. 발가벗고도 성감대를 자극하지 못하던 영화 속 그 몸을 떠올리니 불쑥 겁이 난다. 내가 그라면 주저앉아 울었을 것이다. 홀딱 벗어 찰랑찰랑한 두 가슴과 엉덩이를 날로 보였는데도 안 섹시하면 어쩌자는 거냐고. 으으. 기껏 벗어 놓고도 야하지 않은, 그런 쉽지 않은 몸이 되고 싶지는 않다. 이왕이면 여며도 근사한 몸이 되면 더 좋고. 나의 글도 그러기를 바란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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