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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May 24. 2022

남편어깨에 털이 자란다

운동 후 뜨신 물줄기를 맞다가 과연 남자 샤워실은 어떤 풍경일까, 상상했다. 나는 여자 샤워실에서 남편은 남자 샤워실에서 씻는 중이었다. 그러다 대각선 방향에 있던 한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급히 천장을 바라보며 어수룩한 시선처리를 했다. 상상이 그려낸 남탕의 알몸을 들킨 기분이었지만, 시선을 피한 채 하던 일을 마저 이어갔다.     




나의 상상은 다분히 합리적이었다. 남편은 저어기 동유럽에서 나고 자란 터키인으로, 인간이라는 큰 분류체계에서 우리는 번식을 함께하지만 세분화하자면 엄연히 다른 생물체다. 개중 두드러지는 차이점이라면 한국인과 달리 온몸에 고루, 유독 짙게 퍼진 그것인데, 바로 털. 게다가 남편은 터키인 중에서도 유독 숱이 많은 편이었다. 그런 그의 학창시절 별명은 ‘Bear(곰)’이기도 했다.     



이래뵈도 귀엽다구



여태 본 남자 알몸과는 생판 다른 모습이기는 했다. 뽀얗기 대신 수북해 어쩐지 한 겹 더 벗겨야 할 것만 같달까. 알몸이 아니라 털몸이었으니까. 인체의 신비를 알아채기도 했다. 남편 어깨춤엔 털이 있었다. 대박. 남편은 인간이니, 고로 인간의 어깨에도 털이 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모공 위로 쌜쭉 튀어나온 털과 김의 턱 밑에 난 왕서방 점에 길고 가느다랗게 뻗은 한 가닥 털을 제외한다면, 시멘트 바닥에서 핀 라벤더 한 송이처럼 느껴졌다. 인체라면 할 수 없는 일 같았다.     




그러고 보면 그 꼬마는 오죽 놀랐을까 싶다. 남편 한국으로 유학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땡버랜드에 갔던 날, 공용 샤워장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몸을 닦고 나오던 참이었다고 했다. 5살쯤 된 남자아이와 마주쳤단다. 곧게 서봐야 남편 배꼽에 닿을 듯한 어린애였다고 했다. 자식 귀엽네, 하고 지나치려는데 애 표정이 심상치 않았단다. 애는 애인지 감정을 숨기는 법이 없다. 아이는 5년 인생 통 틀어 이런 몸은 처음인 모양이었다. 제 아빠랑 다른 우리남편 털몸을 보더니 휘둥그레진 눈으로 "헤에?"하고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고 했다. 동물원 사자가 된 듯한 기분에 남편이 어쩔 줄 몰라 하자 그 모습을 본 꼬맹이 아빠가 서둘러 아이를 질질 끌고 나갔다고 했다. 아빠 손에 붙들려 몸이 끌려 나가는 와중에도 아이는 끝까지 남편 털몸에 시선을 놓치지 않았단다. 그러더니 위아래를 훑었다고도 했다. 서둘러 곧휴를 가려야했다고 그랬다.     




곧휴 이야기가 나와 말인데, 남편이 한국에 와 가장 놀란 건 샤워하기 위해 알몸을 불사한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터키는 이슬람이라는 종교이자 문화 탓인지 성을 분리해둔 목욕탕에서도 하체를 가린다. 성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보수적으로 다룬다. 여자라면 은밀한 부위 하나 추가해 찌찌도 가린다. 실제 겪은 일로 작년 여름 터키에서 갔던 하맘(터키식 사우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터키 시댁에 머물던 중 식구 다 같이 하맘에 갔다. 여기도 남탕과 여탕으로 나뉘어 있다.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찢어져, 남편은 형과 남탕에 나는 시누랑 터키엄마와 함께 여탕에 들어갔다. 입구에선 때밀이 이모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이모는 1인당 타월 두 개씩 나누어 주었고 우리는 타월을 들고 곧장 탈의실로 향했다. 한국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익숙하게 벗을 수 있었다. 성큼성큼 옷을 벗기 시작했다. 일사천리였는데, 겉옷을 벗은 뒤 막 팬티로 손이 향하려던 참이었다. 터키 엄마가 나를 봤다. 다급히 할 말이 있던지, 쫙 편 손바닥으로 허공을 누르며 내 동작을 저지하고는 말했다. "아서라 얘야. 난 네 은밀한 부위는 보고 싶지 않구나." 성을 같이 하는 사이에서도 몸을 내외하는 것이다. 하여 하맘하는 내내 팬티를 입고 있었고 타월로 몸의 한중심인 거기와 거시기를 타월로 가려야했다.     





그리고 지금 여긴 한국이다. 동성간 공용 목욕탕에서 발가벗고 샤워하기는 머리감지 않고 미용실에 가는 만큼이나 대수롭지 않다. 그러려니 하는 일들이라서다. 샤워하는 나도 알몸이고 대각선 방향에서 온 몸을 벅벅 씻던 저 여성도 알몸이다. 알몸 x 알몸. 알알한 몸들. 남편도 알몸 사이에 섞여 샤워 중이겠지. 여긴 한국이니까. 네 것도 보고 내 것도 보이지만 우리 비교하지 않기로 해, 하고 머리를 감고 땀을 씻어내겠지. 뜨신 물로 마사지하는 와중에도 남자 샤워실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흑곰 같은 남편이 남자 사우나 볼거리가 될까 싶어, 한국 엄마이기도 한 나는 번득 걱정도 한다. 털몸은 종종 한국인에게도 해당하는 사항이면 좋겠다.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게, 이방인의 감정을 남편이 느끼지 못하게.     



샤워실을 나서며 다짐했다.

그냥 나부터 어깨에 털을 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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