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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May 27. 2022

갓생은 어디에

귀찮은 일은 무엇인가.     


우선 양파를 써는 일일 것이다. 흙 묻은 양파를 손에 쥐어 물에 박박 씻는 것도 모자라 껍질 벗긴 뒤 얇게 썰어내기란. 대파 소분만큼 귀찮은 일이다. 으으. 진짜 별로. 마트에 가면 내 대신 곱게 까 진공포장까지 해둔 양파가 알알이 진열되어 있지만 무손질 양파에 비하면 배나 비싸 쉽사리 살 수 없다. 귀찮아도 내 몫이 된다.     




두 번째는 기름 낀 사각형 통을 닦는 일일 것이다. 하필 통은 왜 사각인가. 왜 네 개의 각이 있는가. 세제 닿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잘 닦이지도 않는 귀퉁 네 개를 어거지로 닦는 일은 정말이지 성가시다. 기름과 사각의 조합은 가히 최악이다.     




세 번째는 양말 수십 조각을 하나하나 건조대에 너는 일일 것이다. 한 짝 털어 철푸덕 건조대에 걸치고는 다른 한 짝마저 털어 걸치고(…). 기계에 가까운 동작을 수십 번 반복해 하고 있노라면 지루함 극복에 가깝다. 소스라치게 귀찮은 날이면 결국 바닥에 양말을 내동댕이쳐 버리고 만다. 양말 씨앗이 거실 바닥에 스며 곧 자랄 것 같은 기분은 기분 탓이다.     




나른한 금요일이다.

양파도 까고 기름긴 사각형 통도 닦고 양말 수십 조각을 바닥에 뿌렸다. 모처럼 찾아온 무일정에 가뿐한 아침을 맞이했건만 귀찮음이 나를 기다린다. 아아.     


갓생 살긴 그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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