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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Jun 03. 2022

정답은 없어

5교시 국어 시간,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성’하다 말고 담임이 그랬다.     



“고등학생 시절 3년을 잘 보내면 아내 얼굴이 바뀌고 남편 연봉이 달라져요. 그래서 말인데 너희들 청산별곡이 얼마나 시험에 자주 나오는지 아니?”     



점심 먹고 나른한 아이들 정신을 환기시키려 담임이 부린 희망고문이었다. 그런 담임 말은 꼭 엄포 같았다. 몇몇 키득대는 애들을 향해 담임은 웃지 말라며, 10년만 지나 보라고. 내 말이 맞는지 아닌지는 그때가 알 수 있다고 했다. 키득대느라 들썩이던 어깨가 담임 진지함에 일순간 멈춰서더니 아이들 표정마저 굳었다. 미인과 결혼하긴 글렀다 생각한 모양이다. 그제야 담임은 교과서로 돌아왔다. 어디까지 봤더라, 하고는 청산별곡을 해석해 주었다. 담임이 짚어준 부분마다 우리는 일제히 밑줄을 그었고 그 밑에 ‘운율 3‧3‧2조’라고 적었다.    


개중 시작부터 끝까지 웃음기 싹 빼고 담백한 집중을 보이던 아이가 있었다. 잇츠미, 나다. 어렴풋 남들 다 가고 싶어 하는 대학을 가야만 돈 많이 주는 직장에 취업할 수 있다는 걸 체감하던 찰나였다. 들어오는 과목 선생님마다 입 모아 이야기했다. 좋은 대학가라, 지금 네 수준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다. 공부 열심히 해라. 그래야 한다. 3년만, 딱 3년만. 그렇게 바싹 경계심을 조여왔는데 나는 그 말을 믿었던 것이다.     


학창시절 내내 나의 유일한 목표는 내신점수와 모의고사, 오직 이 둘 모두로부터 얻은 높은 성적이었다. 당시 긴장감은 지금도 남아있다. 시험날과 비슷한 압박에 시달리는 날이면 내일이 수능임에도 아무 준비하지 못한 나를 꿈에서 만난다. 꿈 속에서도 나는 꿈이기를 바라며 교과서를 빠르게 넘긴다. 고등학교 내내 백 점을 갈망하던 나는 시험에 나오는 것 위주로 성적에 대비했다. 그럼 시험엔 무엇이 나오느냐. 명확한 것이 나온다. 출제 위원 누구도 이의제기를 바라지 않으므로. 애매하고 모호한 문제를 배제하니 남은, 답이 똑 떨어지는 것들이 시험지면에 등장한다. 예를 들면 국어 지문에서 공감각적 심상일 수도 있고 복합 감각적 심상이 답이 될 수도 있는 지문은 애초에 문제화하지 않는다. 담임이 봐도 답은 없기 때문이다.     



고로 고소득을 꿈꾸며 성적 상위권에 진입하기를 바라던 백 점 바라기들은 재낄 것과 재끼지 말아야 할 것의 분명한 관계를 구분 지을 수 있었다. 불명확한 것은 언제나 나중일 수밖에 없다. 답을 낼 수 없으므로, 1번을 찍은 김과 2번을 찍은 최 중 누구 하나는 맞고 다른 하나는 틀려야 한다. 모호함을 향유하는 기회를 박탈당했다. 시험에 나오지 않아서였다.      





허나 울타리 밖으로 나오니 세상은 온통 애매모호로 점철이다.

답과 오답을 가릴 수 없어, 정답만 추구하던 우리는 종종 길을 잃는다. 자꾸만 답을 알고 싶어 꿈틀대는 이 같은 본능은 입시가 낳은 박테리아인지 모른다. 올해 회충약을 먹은 것도 같은데 죽지 않고 기어 다니는 이것은 그대의 정신 또한 갉아 먹는다.


그러나 진짜 인생에 정답은 없다.     

이것이 답이라면 답이련만, 그래서 담임은 잘 지내고 계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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