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너는 내게 남은 가장 오래 된 친구로
햇수로 헤아리니 자그마치 17년이나 되었다
그 사이 너는 이름을 바꾸었고
나는 업을 버리고 욕망을 택해 작가가 되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
*
우리 여느 때처럼 만난 이십대 어느 날
어느 곳이었던지는 희뿌연 안개처럼 남아 있지만
찰방찰방 소주가 담긴 잔을 더 들지 못하고
입술만 질근질근 깨물던 너를 기억한다
고백할 게 있다고 했다
솔직히 말해도 멀어지지 않아 주겠느냐고
겁은 나지만
네게 거짓하고 싶지는 않다며
너는 나를 한참이나 쫄게 만들었고
그래서 뭐니, 약속하마
네 고백을 전후로 우리 관계가 달라지는 일은 없도록 하마
말한 뒤로도
짐짓 입에 좌물쇠라도 잠겼는지
차마 입을 떼지 못한 채
내 두 눈만 뚫어져라 응시하던 너였다
비로소 네가 말했다
- 나 그런데서 일해
그 뒤로 우리가 나눈 말은 기억나지 않으나
네가 화류계를 택할 수밖에 없던 지극히 개인적인 상황, 판단
모두를 존중하지만 당장이라도 털고 오기를
바라며 기다려 온 지금은 기억할 수 있다
그 사이 너는 이름을, 나는 업을 바꾸었다
너의 업은 변하지 않았다
*
너는 종종 말한다
- 은경아 너 정말 대단하다. 똑똑한 거 같아
- 나도 네 남편처럼 좋은 사람 만나고 싶어
나는 그 말이 결코 긍지로 스미지 않는다
대신 안타까움이 되어 내 입가를 맴돈다
그리 말하는 너도 고등학생 땐 깨나 공부를 잘하던 축에 속해 있었고
소위 좋은 사람 만나 사랑받아 마땅한 네 입에서
마치 그게 너는 아닌양 말하기 때문에
- 네가 어때서. 좋은 남자도 제법 많아. 네가 봐온 세상이 전부는 아니지. 어디나 그런 건 아니지
한편 나 또한 너를 자극할까 싶어 조심스레
허나 진심을 담아 진실로 말해도
너는 치열한 싸움터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듯 지친 눈으로
내 말을 잘, 잘 믿지 못한다
*
그래서 너는 오만하다
언제나 네가 겪은 세상이 네겐 전부였다
그곳에 빗대어 인간을 평하고 너도 같은 취급 받을 것이라 믿는다
유흥과 쾌락이 난무하는 어둡고 매캐한 그곳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걸
너는 믿을 수 없는 눈치다
네게 세상은 쿰쿰하고 닳아 해졌다
그게 전부였으므로
문 밖으로 또 다른 세상이 나여 있다는 걸
문 밖에 서 나는 네 발로 깨쳐 나오기를
기다린다
네가 겪은 세상이 전부일 거란 지독한 오만에서 빠져 나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