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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Oct 08. 2022

돈은 얼마만큼의 가치를 제공하겠다는 상대와의 약속이다

퉁쳐서 '돈'

이런 생각을 한 적 있었어요.     



‘아니, 왜 이렇게 다들 돈돈돈이야. 피곤하다 피곤해.’     



듣고 싶은 수업을 듣고, 사고 싶은 옷을 사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했거든요. 내가 도살장 끌려가듯 억지 출근하며 간신히 번 그것의 일부를 지불하라고 했어요. 반대급부로 너는 수업을 듣고 옷을 살 수 있다고요. 따박따박, 그러나 해가 지나도 오르지 않던 작고 귀여운 월급을 받으며 돈이 뭐길래 시발 하던 날도 있었어요.


     

돈이 지닌 속성, ‘교환가치’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거예요. 나는 나의 노동가치과 월급을 일치시키지 못했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고요 회사는 말했어요.     



‘그만큼 주기도 쉽지 않아.’     



내가 얼마간의 노력 끝에 100만원어치 성과를 내면 마치 세금 떼 가듯 50만원 제하고 지금 받았거든요. 아아. 그렇다고 비즈니스 세계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닙니다.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제는 이해해요. 나도 비즈니스를 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인정합니다. 나 또한 회사를 루팡하기도 했어요. 근무시간 카톡은 참맛입니다. 외근 마치고도 여전히 일 중이라며 평일 낮 커피숍 앉아 나른한 시간을 보냈던 것도. 후에 안 것은 회사도 내 시간을 루팡하고 있었다는 거지만, 어찌되었건 월급과 나의 노동 가치를 일치시키지 못했고 정기적으로 일정하게(그것도 아주 일정한 금액인 까닭에) 들어오는 연금이라고 생각했나 봐요. 부끄럽지만 돈의 속성을 모른 채 살았어요.     



프리워커가 된 지금도, 세상은 여전히 ‘돈돈돈’입니다. 여기저기 돈을 갈구하고 없으면 누릴 수 없는 것들과 만나요. 없어서 누리지 못하는 것들이 많기에, 더 많은 돈을 갈망하는 이들도 보고요.     





나는 요즘 회사에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고, 문화 소비자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며 삽니다. 월급 받으며 살던 직장인일 때와 달리 그들에게 ‘직접’ 대가를 요청하게 되었어요. 글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비용은 제가 직접 책정합니다. 그리고 늘 여기서 막힙니다. 애매한 부분이 있어 그렇습니다. 직장인일 때 ‘돈’하면 떠오르던 그 심상과 글방 대표가 되고 그리는 ‘돈’의 이미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때 나는 ‘돈’이 있고 없고에 따라 누릴 수 있는 혜택의 차원이 다름을 못마땅해 했습니다. 우리는 평등한데 왜 이토록 다른 삶을 살아야 할까. 같은 지하철역에 내려 판자촌으로 가는 한 할머니와 고층 아파트로 가는 젊은 남자를 보며, 내 마음은 불편할 때가 많았거든요. 할머니 허리가 유독 굽어보이는 것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돈’에 대한 개념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돈은 내가 얼마만큼의 가치를 제공하겠다는 상대와의 약속이다.’     



이게 정말 재미있습니다. 나 스스로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가치를 비용으로 책정하니, ‘돈돈돈’하던 세상이 그럴싸해졌습니다. 이유 있는 요구였다는 거죠.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와, 비용을 책정할 때 나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에 고민을 합니다.     



‘너무 비쌀까?’

‘무슨 소리야. 네가 제공하는 서비스 가치를 생각해봐. 더 올려.’     



내가 쓰기에 들인 시간과 경험, 마음, 애씀, 잘 쓰고자 부단히 쫓던 이 모든 것들이 한데 뭉쳐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그 힘은 글방을 운영하도록 나를 이끌었지요. 타인이 갖지 못한 걸 나는 지금 꽤나 농축한 상태로 보유 중입니다. 맛 들어지게 발효되고 있고, 가끔 글을 마치고 난 뒤 스스로에 대한 믿음 같은 게 피어나는데 연기처럼 곧잘 사라지기도 하지만 요즘이라면 자주 피어나 그 믿음이 내가 되고 있는 듯하달까. 나밖에 모르는 피땀눈물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세상의 인정은 또 다른 문제지만요).     





그래서 비용 책정은 어떻게 하냐고요?

과감하게 인상하진 못해도, 절대 저렴하게 책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결국 현존하는 세상에 가치는 돈으로 밖에 교환 받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돈의 속성을 이해하고, 인정하거든요.     



돈 자체는 잘못한 게 없으나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저속한 이미지로 브랜딩 되었습니다. 돈 때문에 사람을 속이고, 돈에 눈이 멀어 눈이 멀게 되고, 그것은 타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고요. 돈이 좋은 건 사랑이나 감사, 건강 따위를 제외한 대부분의 것들과 교환할 수 있어서겠지요. 특히 우리가 갈망하는 ‘자유’, 자유에 따른 ‘행복’을 교환하게 해주죠.     



문제는 선한 돈인지 악한 돈이지, 보여 지는 숫자만으론 구분해 낼 능력이 없다는 데에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 순도 높은 가치에 대한 교환 비용인지 아닌지도. 아직은 ‘돈’밖에 발명된 것이 없어 ‘돈’으로 퉁쳐 교환하는 수밖에 없더랍니다. 무엇보다 내가 담은 혼신, 가치 따위를 저비용으로 제공하며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1도 없습니다. 그것이 결국 ‘돈’으로 밖에 표현될 수 없음에도 말입니다.     



온 종일 글과 글방에 마음 담아 창작하는 나는 내가 멋지게 인정받는 날을 기대합니다. 내가 받는 수익(돈)으로 밖에 대변될 수 없다고 할 지라도요. 아마 교환가치로 제공할 마땅한 대안이 ‘돈’ 뿐이라 그렇다 할지라도. 이제는 세상이 판단하는 숫자, 돈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내 멋대로 상상해 본다면, 돈 대신 ‘가치’로 브랜딩 한 새로운 종류의 화폐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순전히 당신의 가치에 대해 지불하는 것 말입니다. 동전의 형태도 좋고 종이의 형태도 좋고 숫자로 통용되는 무엇도 좋습니다. 대신 ₩라고 표기하지 말고 가치(value)의 V를 따 V10,000,000 이라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돈(₩)과 비교했을 때 1:5 비율의 교환가치가 있었으면 합니다. 가치란 그런 거니까요. 그럼 나는 더 떳떳하게 ₩100,000이 아니라 “V100,000입니다” 할 수 있을 겁니다. 마음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주말 낮, 밖이 훤히 보이는 카페에 앉아 그런 상상을 해봅니다. 지금 이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가치로 보상받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럴 것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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