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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Sep 27. 2022

카페인, 러브, 좀비

<국제결혼이라는 세계>, 오늘은 쉽니다.

커피를 마셔도 잠만 잘 자는 특권이 있습니다. 카페인 성분으로 심장이 벌렁벌렁, 커피 마신 날은 눈 뜬 좀비가 되는 이도 있다고 하지만 나는 좀 사정이 다릅니다. 커피를 마셔도 잠에 쉬이 들고 어떤 날은 가장 맑게 자고 일어난 날이 커피를 두 잔 마신 날이기도 합니다. 시험 기간, 벼락치기를 위해 마신 커피도 쓸모없게 됩니다.     



그래서 해 질 무렵, 어스름한 밤공기를 헤치고 커피숍 가는 길이 겁나지 않습니다. 요즘 작업하는 시간입니다. 가을 학기가 시작되고 남편 얼굴 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매일 밤 8시가 연구실 퇴근 시간인데 인천에서 서울까지 넘어오려면 족히 1시간 30분이 걸립니다. 파죽음이 된 얼굴로 집에 돌아오니 시계는 9시 30분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2시간쯤 서로의 온기를 느끼다 지쳐 잠에 듭니다. 그리고 아침이면 다시 안녕합니다.     





그러고 지내는 터라 남편이 올 때까지 밤 작업을 하게 됩니다. 남편이 없는 이 집은 쓸쓸하고 재미없습니다. 저녁밥도 맛이 없습니다. 먹는 둥 마는 둥, 그러나 한 그릇 뚝딱 비우는 건 왜인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래서 거북이 등딱지 만한 이스트팩을 들쳐 매 집을 나섭니다. 가방엔 노트북과 충전기, 마우스가 들어 있고 시간은 저녁 7시쯤입니다.     



커피숍에 도착하면 저녁 7시 3분쯤 됩니다. 횡단보도 하나 건너 있는 커피숍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엔 손님이 없습니다. 다 자는 저녁, 카페인 섭취는 그런 일인가 봅니다. 서울 빛이 훼방 놓긴 하지만, 창밖은 제법 캄캄합니다. 밖의 어두움을 훤히 볼 수 있게 통창이 난 곳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러고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합니다.     



대놓고 말하면 마시고 싶어 마시는 건 아닙니다. 그저 남편 기다리는 시간이 적적해 한 잔 홀짝이는 것 뿐입니다. 홀로 집에 있기 싫다는 마음이 커피숍으로 나를 내몬 셈이고 덕분에 밤에도 글 작업을 하는 겁니다. 그래도 어두운 밤, 쓴 커피, 글쓰기는 제법 분위기가 납니다. 그런대로 버틸만한 시간이 됩니다. 외로웠던 것도 잊고 글에 몰입도 합니다. 아무도 모르게 집중하고 있으면 메시지가 옵니다.     



주작, 그러나 진실로 그럴 거 같아요


남편이 곧 도착한다는 소식입니다. 곧 9시 30분인가 봅니다. 서둘러 쓰던 것을 마무리하고 윈도우 종료 버튼을 클릭합니다. 거북이 등딱지에서 꺼낸 노트북과 거치대, 마우스를 다시 주섬주섬 챙겨 뛰쳐나가듯 커피숍을 나섭니다. 아무도 없는 컴컴한 집에 남편이 먼저 들어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환한 미소로 그를 반기고 싶습니다.     



나는 커피를 마셔도 잠을 잘 잘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심심하지 않게 남편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커피숍까지 따라붙은 모기와 사투를 벌여야 할지언정, 볶은 커피콩 맛이 아니라 기다림으로 마시는 이 커피를 나는 홀짝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오늘 그와 나란히 누워 잘만 잘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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