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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Sep 14. 2022

그래서 나를 추앙하는 거 맞아여?

인스타그램(@writist_son) 좌측면에 보름달처럼 뜬 나의 정면 사진을 보고 멀끔하게 생긴 남자가 팔로우를 해왔다. 한 둘이 아니고 대여섯쯤? 내가 아는 ‘그’인가 싶어 두 눈 크게 뜨고 핸드폰을 가까이 대니 생경한 얼굴이, 어떤 날은 멋지게 차려입은 수트 차림으로 한 손엔 샴페인 잔을 다른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꽂은 그가 미소를 띄고 있다. 까리뽕쌈한 게 순간 연예인인줄. 아무튼 나는 그를 만난 적 없고 그도 나를 알지 못할 것이었다. 다만 사진 속 남정네들은 하나같이 (사진만은)단정하고 준수했다.     



그들에겐 멀끔한 외모 외 공통점이 있었다. 나의 어느 글에도 '좋아요' 하지 않았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보고 팔로우 했다기엔 심지어 어떤 ‘그’는 중국인이었다. 나는 그저 글 쓰는 나와 연결을 원하는 그 일거라 믿었다. 내 게시물이 퍽 마음에 들었지만 구태여 좋아요 하지 않았다거나 한국어에 몹시 능한 외국인이었다는 전제를 깔았다. 그러곤 최근 올린 글 몇 개를 읽었다. 나쁘지 않다. 인스타그램 초보였으므로, 소수에게로부터였지만 글을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기뻤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니 팔로우가 줄었다. 브런치 꼴도 비슷하지만 천 밑 단위를 소수점 처리하지 못하는 신세란 그렇다. 하나 들고 나간 자리가 획기적으로 잘 보인다. 며칠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숫자를 보면 그렇게 된다. 후에 연을 만난 날이었다. 인스타그램 선배이자 제 나름 인플루언서인 연에게 최근 계정 판 사실을 일러주었다. 서로를 쫓자며 각자 계정에 접속해 아이디를 주고받았고, 연은 인스타그램에 관한 몇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개중엔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팔로우(숫자) 끌려고 자신에게 관심 있을 법한 상대를 무자비 팔로우한 뒤 맞팔로우 하지 않으면 쳐내는 인스타그래머도 있어.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의미도 없는 “헐, 대박”을 외쳤고 그것은 좌측면에 띄운 보름달(젊은 여성인 나의 사진)을 시발(始發)로 했다. 준수한 젊은 남녀가 인스타그램 친구 사귀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내가 맞팔로우 하지 않은 모두가 나를 떠났다.     





그리하여 친구는 고작 54명에 불과하나 필요에 따라 잘 사용 중이다. 살며 이따금 종종 미친 듯이 짧은 글을 쓰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인스타그램은 그런 면에서 내게 해우소 역할을 한다. 남편과 나란히 거실 소파에 앉아 여행 유튜브를 보다 안방에 들어가 아무 말 없는 나는 언제나 짧은 글을 쓰고 있다. 침대 맡에 앉아 슬라임 놀이 하듯 양 손으로 핸드폰을 쪼물락 쪼물락 한다. ‘은’이라 쓸지 ‘이’라 쓸지 몇 번이고 반복해 읽으며 고민하고 있으면 거실에 있던 남편이 부른다. 베이비 뭐해, 잠든 줄 알았어. 글이 짧을수록 한 음절마다 의미가 덩어리지는데, 어떤 덩어리를 놓을지 궁리하는 그 시간이 유희이자 비로소 내가 나다워지는 순간인 것이다. 그리하여 1kg이 훌쩍 넘는 2015년 8월산 노트북을 무릎에 올려놓고 전원을 누르고 윈도우가 켜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핸드폰 버튼 몇 개로 바로 글을 쓰기 시작할 수 있는 이 공간(인스타그램)이 반갑다.     



어, 금방 갈게.     



남편에게 대꾸 할쯤이면 짧은 글 한 편을 완성한 시점이다. 그에게 돌아가기 위해 종이비행기 모양의 그것을 누르기만 하면 끝인데 한껏 다 쓰고는 새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흠 문구가 들어간 강려크한 썸네일로 이목을 끌어야 할까 그냥 나대로, 이미지 한 장과 함께 줄글을 올려야할까. 손으로 턱을 괸 채 볼 어귀를 매 만진다. 5분이 흘렀다.     



플랫폼은 종종 브랜딩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쓰이는 듯하다(새삼 조낸 신기한 세상을 발견한 듯 글을 쓴다). 싸이월드 미니미 뭐 그런 것과는 다르다. 하나의 결로, 글이면 글 책이면 책 운동이면 운동 요리면 요리. 어찌나 정갈한지 똑같은 틀 다른 색감 고 밑에 숨겨진 글을 드러낼 이미지 3x5가 그의 인스타를 도배한다. 무척이나 질서정연한 것이 미적 아름다움마저 깃든다. 드러내고 발산하고 늘어나기를 바라는 잘 꾸며진 공간 하나다. 공간엔 내것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많은 하트가 쌓여있다. 한참을 눈 호강하다 창을 닫는다. 5분을 소모한 나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온다.     



반면 내 인스타그램엔 여기저기 조화되지 못한 이미지와 글 15개가 정신없이 놓여있다. 비건식단이 있다가 웬 개가 튀어나왔다가 내가 나왔다가 글이 나온다. 색감은 커녕 질서도 없다. 깔끔하지 못한 게 다소 나 같아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다 창을 닫는다. 아우, 나도 저래 해야 하나. 하나의 결로 뭘 좀 정돈해야 하나. 5분이 지나도 답을 내리지 못하던 나는 그냥 나로 살기로 한다. 어떻게든 나는 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때는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어수선한 글 카드를 만들어 대표 이미지로 하고 어느 때는 마음 가는대로 아무 이미지나 집어 올린다.     



그렇게 잡동사니 같은 이미지와 글이 쌓여간다. 그게 나라는 생각도 함께다. 결코 한 방향으로 결이 난 사람이 나는 아니다. 글이라면 한 없이 진심인 작가였다가도,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다 지쳐 잠에 드는 노동자였다가도, 거참 상스럽다 생각할 때가 많으면서도 바퀴달린 입을 즐겨보는 구독자였다가도, 운동할 때면 지가 김연아 인줄 착각하는 비전문 운동인이었다가도, 나였다가도, 너였다가도, 그러다 내가 아니었다가도, 어쨌거나 나이다가도. 이럴 거면 5분 왜 고민하는지 모르겠다가도.     



그래서 브랜딩이 뭔지 여전히 정의할 수 없다.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음 하는데….

다시 턱을 괸 왼 손으로 오른 볼을 매만진다. 이 글 역시 참으로 나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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