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시절
우리는
서로의 부모가 되어주곤 했다
도드라진 특징을 잡아
그 아이가 좋아하던 싫어하던
부모가 자식의 이름을 짓듯
서로의 별명을 지어주고
이름 대신
별명으로 불렀다
1.
‘막막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조물주가 그를 만들 때
손이 아팠던지
대충 치대다 만 모습으로
그 애 얼굴을 완성했다
막 만들었다고 해서
막막이였다
그 애 아빠가 의사라 다행이라고
애들은 수근대었다
2.
‘비둘기 아줌마(혹은 둘기맘)’도 있었다
영화 <나 홀로 집에> 나오는
비둘기 아줌마랑 닮았기 때문이다
하루는 선생님이
종이 한 장을 건네며
돌아가며 각자 집 주소를 적으라고 했는데
냉큼
주소록을 받아든 남자아이들이
그 친구를 대신해
'둥지'라고 적었다
둘기맘은 걔들을 쥐어 팰 것처럼
노려보았다
3.
‘딱지’
수업시간, 맨 뒷자리에 앉아
코딱지를 파먹다가
여자애들에게 들켜서 생긴
별명이다
지금 잘생긴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걔 말이다
4.
‘취발이’
그는 강한 힘과 성적능력이 있다
국어 시간에 배웠던
양주 별산대놀이 등장인물 중 하나인
취발이는
그 애가 종종
남자애들에게 불리던
별명이었다
왜 때문인지 가물가물 하지만
여자애들은 단 한 번도
걔에게
대놓고 취발이라 하지
않았다
그 애 별명의 기원이
강한 성적능력이라는 걸
우리는 말하지 않고도
짐작하고 있던 모양이다
*
그때, 서로의 부모가 되어주던 걔들은
요즘
별명이 ‘지민’이거나 ‘범일’이어야 할 것처럼
저들과 똑 닮았다는 특징을 가진
제 아이를 낳아
부모로 살고 있다
철이 든 부모는 무겁다
더는 걔들에게서
어려서의 입심발랄함은 찾기 힘들다
탁월한 언어조작 능력을
이제라도 배우고 싶다만
‘나 이제 애 아빠잖아’
예의랍시고 말 못할 속내를
막막이로, 둘기맘으로, 딱지로, 취발이로
부르는 방법을
이제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게 작가인 내겐 오호통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