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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Dec 24. 2022

12월 25일, 홀리 월급 데이

월간 교양잡지 '샘터'에 실린 글


월간 교양잡지 '샘터' 2022년 12월호에 글이 실렸습니다.

제목은 <12월 25일, 홀리 월급 데이>.






글은 웹면이나 지면을 통해 읽어보실 수 있고요.

아래는 잡지에 실린 글이 아닌, 원본에 해당하는 作입니다. 본 글은 다소 거친 상녀자 느낌이라···. 따뜻하고 아름다운 샘터 결에 맞추기 위해 곱게 다듬지 않을 수 없었다는 후문이.





12월 25일, 홀리 월급 데이,  손은경



(원글)

크리스마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날을 표시하는 숫자. 그러니까 날짜. 12월하고 ‘25일’. 그렇게 나는 크리스마스를 (12월)25일이라는 특정일로 인식하고 있다. 그의 탄생보다 더 축하할 일이 하필 25일이면 생겨서다. 나는 종교인이 아니라 직장인이라. 분명히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는 25라는 뚜렷한 숫자로 뇌리에 남아 있다. 이토록 호들갑인 것은 매달 25일이 월급날이라 그렇고.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아득한 날이다.



불과 8개월 전까지 나는 서울 도심에 위치한 모 회사 소속 직원이었다. 때려잡아 11내지 12년쯤 다녔고 다니는 동안엔 사치 같던 그 직급, 팀장으로 불리게 되었으나 열두 해 동안 열두 번에 나누어 연봉을 받는 신세는 변하지 않았더랬다. 그리고 매달 25일은 한 달치 급여가 나오는 날이었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받은 소정의 급여였지만 나는 그날을 매우 사랑했다. 그러나 25일 월급날을 제외한 나머지 날에는 정 붙이기 힘들었다. 직장생활은 어른맛 같은 것이었다.



12월이라고 달라질 건 없었다. 그달 25일도 내겐 월급날로 통했다. 그러나 다른 달과 다른 점이 있었으니 12월 25일은 ‘유독’ 반겼다는 것이다. 세 가지 이유였다. 하나는 빨간 날이라는 것, 그래서 회사를 쉬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고정 월급날보다 하루 앞당긴 24일이나 24일마저 빨간 날인 경우 23일로 급여를 당겨 받았다는 것, 마지막 하나는 그 돈으로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겼다는 것이었다. 회사가 건넨 12월급(여)로 폭죽 같은 하루를 보내곤 했다. 파티라 해봐야 특별하지 않았지만 마냥 들떴다는 기억이 난다. 연말 분위기를 제대로 낼 수 있었다. 12월 25일이면 기분 좋게 돈을 썼다. 평소 씀씀이보다 큰돈을 먹거나 마시는 곳에 썼고 가끔 기분 내려 내게 크리스마스 셀프 선물을 하기도 했다. 어느 해에는 갤럭시 워치를 지르기도 했고 백화점에만 입점 된 그 샵에 가 겨울 점퍼를 구매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2022년 3월, 퇴사를 계기로 나는 월급이라는 고정 수입을 잃었다. 4월부터는 매 25일이어도 들어오는 돈이 없을 수 있음을, 통장 입출입 기록을 보며 깨닫고 있다. 조금 더 버티네 마네 하면서도 버티면 들어오던 25일의 월급이 이제는 없다. 따박따박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일은 프리랜서가 되고 아무것도 없었다(퇴사 후 나는 프리랜서라 불리는 사람으로 지내고 있다). 그리고 프리랜서가 일정한 소속 없이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면, 소득의 들락임도 자유롭다는 걸 알아야만 한다. 고로 어떤 달 어떤 날이 25일의 역할을 대신해줄지 나는 모른다. 그렇기에 간헐적으로 들어 온 수입을 반으로 쪼개고 또 반으로 쪼개 쓸 수밖에. 올해 그때의 파티는 없다.



그러나 결코 가엽지 않은 나의 삶이라 단언할 수 있는 건 없으므로 있게 된 날과 매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월급은 사라졌지만 그 덕에 생겨난 것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우선 무소속 신세가 대출한도를 극도로 제한하지만, 무소속이기에 어디든 속할 수 있다는 자유에서 오는 기쁨이 더 크다. 가장 큰 수혜는 시간 측면일 것이다. 요즘은 집 작은방에 마련한 작업실로 출퇴근한다. 소요 시간은 고작 10초로, 직장 다닐 때 1시간씩 걸리던 그것에 비하면 정말이지 개꿀이다. 시간은 돈이라고 했다. 출퇴근에 쏟을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니 새로운 일 하나를 더 할 수 있다. 그리고 별 다섯 개나 차지할 만큼 가장 중요한 부분. 비로소 내가 있게 되었다. 온전한 나로 시작해 나로 끝나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낼지 온전한 내 하루를 스스로 설계한다. 하루는 나에 의해 지시되고 나에 의해 행해진다. 그게 내게는 행복이다.



그래서 올 12월 25일 거창한 크리스마스 축배 따위는 없겠지만 마음은 빈하지 않다. 언젠간 매일이 25일 같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한다. 상상만으로 온 몸이 달싹인다. 그럼에도 월급 없이 보내는 2022 첫 크리스마스는 경건하게 보낼 것이다. 프리랜서에게 있어 경건함이란 소박함일 것이다. 고작 12월 25일 하루가 아니라 앞으로의 날을 축복하며 가볍게 라면에 소주 한 잔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둑한 밤 라면에 소주를 밝힐 조명등 하나를 켠 채, 동요 ‘창밖을 보라’를 듣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리고 작가의 말



크리스마스 전날 공개하려, 이 글을 미리 저장한 채

시댁이 있는 튀르키예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글이 게시 된 즈음 나는 그곳에서 안식하고 있을 테고,

당신도 한 번쯤 내 생각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한국과는 시차 6시간으로 튀르키예가 늦은 편에 해당합니다.

한국이 아침 8시라면 튀르키예는 새벽 2시라는 말입니다.

당신이 기지개를 펴며 하루를 시작할 적에

나는 이제 막 꿈 속에서 뛰놀기 시작할 거라는 말이기도 하겠고요.


그러니까 나는 조금 천천히 지내다 가려고 합니다.

뒷서거니, 느긋하게 보내며 못다 채운 6시간을 회복하고 가려 합니다.


그러나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시공을 같이하건 그러하지 않건,

모두의 안온을 기원할 겁니다.


2022년 정말이지 수고 많으셨습니다.^_^

감사한 한 해였습니다.


고것은 진심, 마르지 않을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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