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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Jan 18. 2023

내 글이 잘못 쓰였다고 지레 판단하는 이유

시제, 과거형과 현재형에 관하여


다음은 어제 진행 되었던 글방(시제-기초편) 핵심 리뷰입니다.




지난 번에도 남긴 바 있지만 시제에 관한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 듯 합니다. 과거형과 현재형의 혼합, 쓰고 나서 보니 멘붕. 도대체 쓰는 내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글에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란 탓이겠죠.

- 읽으러 가기 : 시제, 과거와 현재의 카오스



그런데 있지요.

실은 질문 자체가 잘못 되었다는 것 알고 계셨나요?



아니, 질문이 잘못 되었다구요?



우선 질문의 시작부터 알아야겠습니다.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질문이란 자기 내면에 세워진 '가설'로부터 발화합니다. 가설이 질문의 전제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전제가 없으면 질문이 만들어질 수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그래서 질문이 잘못 되었다는 건 잘못된 가설을 지니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잘못된 가설이었음을, 그는 모르고 저는 알고 있던 것 뿐이겠고요.



그렇게 과거형과 현재형 시제가 한 글에 섞여 있어 내 글이 잘못 된 것이라고, 그렇게 판단하고 제게 건넨 질문은 결국 잘못된 가설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럼 다시 물으시겠죠.

무엇이 잘못된 가설이었습니까? 잘못된 줄도 모르고 품고 있던 그 잘못된 가설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바로 이겁니다.

"과거형과 현재형 시제가 하나의 글에 섞이면 안 될 거라는 잘못된 가설."

질문자 내면에는 이런 믿음이 있었을 겁니다. 하나의 글에는 하나의 시제만 쓰여야지, 그런데 왜 내 글엔 엉뚱하게 두 가지 시제가 섞인 거지. 분명 나는 한 시점을 바라보며 글을 쓰고 있었는데.



그래서 제가 고이 정정해 보내드린 가설이 무엇이냐면요.

과거형과 현재형 시제가 한 글에 혼합 될 수 있어요. 다만, 말이 된다면요. 그래서 어느 시점을 말하는 건지 독자에게 혼란을 야기 시키지 않는 글이라면요. 얼마든요. 오히려 어떤 때는 과거형과 현재형을 의도적으로 넘나 들기도 하는 걸요. (중략)



그런데 있지요. 진짜 삶에서 해결해야 할 진짜 문제는 이게 아닙니다. 바로, 잘못된 가설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입니다. 자신이 만든 잘못된 그 가설을, 믿음을 유리창 배트로 치듯 와장창 깨트리기 전엔 영원히 같은 질문과 고민 속에 지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가설은 결정의 판단근거가 되기도 하므로 가설이 바뀌지 않는 한, 영원히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없을 테니까요.




"공부는 본질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설을 바꾸는 과정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이 가진 가설을 바탕으로 모든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청쟈, 『다시 배우는 공부법』, 시그마북스




그래서 어제 가장 나누고 싶던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글쓰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리가 공부하는 목적, 잘못된 가설을 깨부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요. 그러니까 공부해야 한다고 말이에요. 우리는 인지하지 못한 채 수많은 잘못된 가설 속에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결정에 고통하며 살고 있습니다. 가령 돈은 나쁜 것이라는 가설 하에 부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산다는 둥 말이죠.



짧게 쓰려 했는데 역시나 길어졌습니다. 나머지 내용은 생략하며, 그래서 결론은 뭐다?

공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설을 바꾸기 위함'이라는 것. 글 공부도 마찬가지 아닐까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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