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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Jul 25. 2023

글이 깊어지려면 [비교]할 것!

글쓰기에 진심인 [지성]님들은 진작 바라고 계셨을 테지요.     



아, 나도 공감 받는 글 쓰고 싶다.     



이러한 바람은 글은 쓸수록 잘 쓰고 싶어진다는 특성에 기원합니다. 처음엔 막무가내로 쓰기만 했다면 어느새 하나 둘, 글에 바람을 투영하게 되고, 이는 욕구의 다름 아니겠습니다. 그럼 욕구는 어디서 시작한 걸까요? 바로 결핍(즉 부족, 이 글에선 ‘한계’)입니다.     



쓰는 동안 전진하던 나의 글은 어느 순간 자기 한계라는 벽에 부딪힙니다. 비로소 한계를 만나며, 욕구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한계를 만나지 않는 한 욕구가 생겨날 일 없습니다. 결핍, 즉 부족이란 느낀 적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잘 쓰고 싶다’라는 욕구가 됩니다. 하나 둘, 글에 바람을 투영하는 건 바로 이 때문. 공감 받는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도, 잘 쓰고 싶다의 일부입니다.     



한편 이는 글로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인간 본성에 다름 아닐 겁니다. 어찌되었건 깊이 있는 공감을 얻고 싶다는 마음은 모든 글 쓰는 이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바람입니다. 


    

하여 오늘은 [공감 받는 글]이 되기 위한 꿀팁 방출용 칼럼입니다.     





공감 받는 글이 되기 위한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말하기 대신 보여주기, 독자 마음 꿰뚫어 쓰기, …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오늘은 [비교 기술]에 대해 나누려 하는데요. 이는 굉장히 간단하면서 적용하기 쉬운 방법입니다. 이것 한 문장 추가하기만 해도 독자 공감을 살 수 있습니다. 독자 머리에 뜬 물음표(?)가 느낌표(!)로 변하는 마법을 일으키고, 이때 독자는 ‘아하!’ 하게 됩니다. 비로소 글에 완전한 몰입이 이루어지는 순간. 반면 초보님 글에는 전혀 볼 수 없는 이 한 문장, 추가할     



준비 되셨나요?     



우선 [비교 기술]이란 뭔가부터 알아봐야겠습니다.     



[비교 기술]이란 작가 본인이 지어낸 표현입니다. 크큭. 사실 뜻은 별 거 없습니다. 쓰임과 같이, 비교함으로 독자의 공감을 삼에 다름 아닌데요. 비교란 알고 계시는 그 [비교] 맞습니다. 서로 견주어 유사점과 차이점 따위를 고찰하는 일. 다만 [비교 기술]에서 뜻하는 비교란, 직접 비교라기보다는 하나의 구체적 상황을 한 문장으로서 제시하고 이를 통해 독자 머릿속에 자연스러운 비교를 하게 함으로서 글에 쓰인 [상황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라 하겠습니다. 지금 이해가 안 가셔도 좋습니다. 차분히 글을 다 읽어나간 마지막쯤 아하(!) 하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써야 공감 받는 글이 되는 걸까요? 방법을 알아보기 전에 ‘왜’부터 알아야겠습니다.

어찌하여 [비교 기술]이 독자 공감을 사기에 딱 좋은 것인가.     



바로 인간의 이해구조 때문입니다.     





인간은 비교를 통해 이해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여자친구와 영화관에 갔습니다. 한참 치고 받고 부수고 다치고, 절정에 다다른 참인데 갑자기 여자친구가 귓속말을 합니다. 배고프답니다. 당장 뭐라도 먹어야겠다네요. 남자친구는 말합니다. “조금만 참아봐. 30분만 있으면 영화 끝나.” 그러나 여자친구는 배고프다고 징징대죠. “못 참겠다고! 내가 오죽 못 참겠으면 귓속말까지 하겠어!” 머리끝까지 서운해진 여자친구는 불쑥 영화관 밖으로 나가 버립니다. 반면 남자친구는 ‘30분만 참으라고 한 것 가지고 뭘 그래’ 하며 어이없어 하지요.     



어쩌다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요? 바로 이해의 [정도 차이] 때문입니다. 남자친구는 배고픔의 [정도]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배고픔도 0부터 10이 있습니다(예시 들어 놓고도 웃깁니다ㅋ). 참을만해 부터 아사 직전이야! 까지. 여자친구 입장에 절대 공감할 상황은 아마 8부터 10이였을 겁니다. 상황의 긴급성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배고프다’고만 할 뿐, 마땅한 비교 상황이 제시되지 않았기에 남자친구는 그저 자기 기준으로 ‘배고픔’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가슴으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머리로 받아들여, ‘배고픔 그까짓 거’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한편 배고픔에 신물이 올라와 속이 메스꺼운 지경에 이른 여자친구는, 굉장히 속상해 하죠. 참으라고? 이 상태로 버티라고?     



그렇습니다. 특정 상황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얼마나]라는 깊이로 만들어집니다. 우리가 그저 예쁘다고, 멋지다고, 사랑한다고 했을 때와 달리 ‘손으로 만든 동그라미를 뺀 나머지만큼 예뻐, 멋져, 사랑해’라고 했을 때. 와, 나를 너무너무너무 좋아하네? 하고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좀 어이없는 예시일까요?ㅋㅋ).     


이는 글쓰기 묘사로도 가능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공감을 살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얼마나]라는 정도가 포함된 한 문장 추가입니다. 제가 주장하는 [비교 기술]이 바로 그것입니다.     



A라는 특정 상황만 진술했을 땐 표면으로만 이해했던 내용을, 비교가 들어간 순간 깊숙이 저 심해까지는 못 닿더라도 지하 암반수까지는 닿게 합니다. 표면에 그친 글은 스르르 독자 마음에 미끄러져 갈 뿐이므로 공감을 얻기 어렵습니다. 반면 표면을 뚫고 아래로 아래로 깊이를 더한 글은 독자 가슴에 박힙니다. 이때 비교대상은 가늠자 역할을 가늠자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글에 깊이 있는 공감을 얻고 싶다면 [비교 기술]해야겠습니다.

어떻게 적용하면 될지 예시를 들어 설명해 볼게요.     



“김씨 딸 공부 잘 하잖아.”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김씨 딸이 공부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듣고 온 이씨가 이 같은 문장을 진술했습니다.     



또 다른 예시.     



“이번에 이직한 회사 페이가 나쁘지 않다.”     



그렇다고 합니다. 페이가 나쁘지 않답니다. 그러나 그때, 이 문장을 본 인간은 그 즉시 두뇌가 5G급으로 회전하기 시작합니다. 페이가 나쁘지 않다에 대해 감을 잡고 싶어 하는 겁니다. 그래서 얼마일까, 연봉 얼마이기에 페이가 나쁘지 않다고 하는 걸까. 나쁘지 않다의 기준은 뭘까. 내 기준에선 연봉 x천만원인데 이 정도 맞으려나. 하여튼 부러운데.     



이는 이야기 들은 직후 나오는 반응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몇 등]인데?’

‘그래서 [얼마] 버는데?’

‘그래서 [어느 정도]로 잘하는데?’

‘그래서 [얼만큼] 대단한 건데?’     



이는 [얼마나]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임을 대변합니다. [정도]에 관한 깊은 관심, 정도를 통해 깊이를 판단하고 이해하는 인간의 이해 구조 때문이죠.     



비교가 없으면 감 잡기 어렵습니다. 때문에 가늠자를 독자에게 제시해 주어야 하고, 이것이 바로 쓰기의 [비교 기술]입니다. 가늠자는 곧 비교 할 상황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얼마나, 어느 정도, 몇을 가늠하게 해줄 상황을 하나의 문장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말이겠습니다. [정도]를 받아들이는 순간 공감이 생깁니다. 혹자는 공감할 수 없는 분명한 상황조차 ‘공감할 수 없다’는 공감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나]가 포함된 딱 한 문장 추가해 보겠습니다.     



“김씨 딸 공부 잘 하잖아. 이번에 전국 모의고사에서 1등 했다던데?”     

“이번에 이직한 회사 페이가 나쁘지 않다. 전 직장에서는 연봉 4,000만원 받았는데 지금은 연봉 1억은 받는다.”     



문장 하나씩 추가했을 뿐인데 독자는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요? 맞습니다. 조금 전 여러분이 입에서 나온 그것.     



‘와, 정말 공부 잘하네.’

‘완전. 연봉 1억이면 다닐 만 하네.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고 할 게 아니라 좋다고 해야하는 거 아님?’     



그래서 초보님 글에 자주 보이는, ‘아파서 아팠다’고만 쓰면 반점짜리 글이 됩니다. [깊이]가 빠져 공감이 덜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얼마나] 아팠는지를 뒤 문장 하나 넣어줘야 합니다. 가령 ‘결국 구급차가 나를 응급실로 싣고 갔다’와 같은 문장 하나 말이죠. 그럴 제, 나머지 반점을 채울 수 있습니다.     



추가로 말씀 드리면 비교의 기준은 독자, 즉 ‘상대’의 경험을 기준으로 두면 좋습니다. 예를 들어 독자가 수능 세대라면 수능에 관한 이야기를 비교 상황으로 쓰고, 학력고사 세대라면 학력고사에 관한 이야기를 비교 상황으로 써야 합니다. 즉, 독자 눈높이에 맞추라는 의미. 이 모두는 [독자의 공감]을 바라며 작가가 사부작사부작 금가루 뿌리는 작업입니다. 이정도 노력은 있어야 독자에게 정성이 전해집니다. 작은 요소요소가 모여 글을 탄탄하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은 다음 칼럼 예고를 하고 마치려 합니다.

‘내 글은 어디쯤 인가요?’ 자기 글의 위치를 확인 받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한 칼럼입니다. 어두컴컴한 동굴을 걷던 쓰기 생활에 터널 끝 빛이 되기를 바라며,



읽으러 와주실 거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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