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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Sep 06. 2023

국제결혼 3년차면

제25화

축하합니다. 결혼 3주년입니다. 여기 트로피랑 꽃다발 받으시고요, 사진 한 장 남기겠습니다. 김치-즈!  


   

그렇다. 결혼 3주년이다. 이 원고 쓰고 있는 날을 기점으로 당장 내일, 우리는 3년산 부부가 된다. 튀르키예인 훈과 한국인 은경은 자그마치 3년을 함께 산 것이다.     



이는 적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하겠다. 그 사이 훈의 여동생이자 나의 시누(7살/에르바)는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는 일생일대 사건을 겪었으며, 나는 12년 다닌 회사를 때려 치기도 했다. 남편 훈은 대학원 진학이라는 지난한 공부를 연속하고 있다. 그 사이 눈가엔 칼로 그은 것 같은 주름 한 줄이, 한국살이 3년차인 훈의 얼굴엔 점점 한국인 테가, 지독히 오래가던 바이러스 놈은 비로소 종식에 가까운 선언을 한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3년. 타인으로 살 수도 있었던 훈과 내 삶에 ‘우리’라는 연대로 하나의 역사를 세워간다. 너의 역사가 곧 나의 역사, 둘은 2배로 깊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우리’로 3년을 보냈다.     





Q. 소감 한 마디 듣고 가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결혼 3주년이라는 게. 할만 했습니까?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3년이 고작 3주처럼 느껴지기는 하다. 결코 오래 지나지 않은 느낌. 나도 이럴 진데 결혼 40년차 대선배 이야기를 들으면 더할 것이다. 그저 몸 부딪히며 한 집에 살았을 뿐인데 1년이 흘렀고, 10년이 흘렀으며, 40년이 되어버렸어. 그게 정말 다야, 하시겠지. 그리고 정말이지 나는 그 기분을 알 것만 같다.     


인생은 줌인과 줌아웃이다. 하루하루는 고되다가 즐겁다가 슬프다가 다시 웃는 감정의 요절복통일지라도(줌인) 지나고 보면(줌아웃) 또 지나가 있더라는 아련함만 남을 뿐이다. 살았을 뿐인데 살아졌다는 누구의 말이 기억나는 건 왜일까.     



그래서인지 결혼 3주년, 할 만 했냐는 물음에 아무 대답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미 줌아웃 되었기 때문이다. 고로 멀리서 3년을 바라보건데 뭉게구름처럼 뭉뚱그려진 느낌 덩어리만 남는다. 나로서는 훈과 결혼했다는 사실에 행복하고 감사하다. 지난 3년, 매일 웃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모두를 상쇄하고 남을 만큼 기뻤다.     



그럼 3년을 어떻게 지냈냐는 물음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그 시절로 줌인하면, 적어도 둘이라는 즐거움이 있었다. 우리는 그저 오늘을 살았다. 죽을 만큼 서로가 밉고 싫었던 날은 없었고 같이 사는 게 지옥 같던 날은, 단언컨대 단 하루도 없었다. 아마 이것이 결혼생활을 3년 끌고 온 강력한 동기 아닐까 한다. 밋밋한 하루 그 자체로 소중하다. 그 사실을 우리 둘은 안다.     






Q. 결혼은 언제 하면 좋습니까? 결혼에 때라는 게 있다고 보십니까?     



지금에 생각하면 좀 무모한 짓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나는 훈과 고작 2주(한 달이 채 안 됨) 만나고 국제결혼을 감행한 인간들이다. 모르실 분을 위해 디테일을 감미하자면 훈은 왕십리에 있는 H대학교로 유학 온 학생으로서, 학기가 끝나 곧 튀르키예로 귀국할 참에 있었다. 2020년 1월 초, 그때 우리가 만났다. 2주간 진한 데이트를 나누었다. 이를 끝으로 훈은 한국을 떠났는데, 망할. 바이러스가 터졌다. 우리는 만날 수 없었다. 그러다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응?) 한국과 튀르키예 입국을 허락받은 몇 안 되는 자가 바로 가족(F6 비자 소지자)이었기 때문이다. 결혼 할래? 하고 훈에게 물었더니 그는 당연하지! 했고, 그게 우리 결혼의 시작이다. 물론 후회란 없다. 훈에게도 물었다.     



“나랑 결혼해서 사니까 어때?”

“아내랑 결혼해서 좋아. 그게 최선이었잖아요(응?) 그렇지만 결혼은 천천히 하면 좋아(응??) 여자친구랑 빨리 결혼하고 싶다는 연구실 친구한테도 말했어. 모두 준비된 다음에 해.”     



훈은 아무 준비 없이 한 결혼에 늘 무거웠던 모양이다. 당시 훈은 학생이었다. 수입이 있던 것도 아니고 두둑히 모아둔 돈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반면 나는 직장인이었는데 아내 혼자 돈을 벌수밖에 없던 그 현실이 그에게 두 배의 책임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그러나 남자가 사회적으로 받아 왔을 가장의 책임감을 나는 모른다. 아무 상관없던 나는 “결혼 잘 했으면 된 거 아니야? 캬캬.” 하고 해맑게 웃고 있을 뿐이다. 나에겐 그가 ‘때(타이밍)’이었다. 그래서 ‘때’라는 게 뭘까 생각하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발가벗겨져도 사랑할 사람을 만났다면 그게 때 같습니다. 껍데기(지위, 명성, 부 따위)가 사라지고 알맹이만 남아도 사랑할 그라면, 저는 그가 곧 때인 거 같아요.’     



그의 입장은 들어봐야 하겠지만.     





Q. 두 분 참 좋아보입니다. 혹시 좋은 배우자 만나는 팁 같은 게 있습니까?     



나는 그것을 오직 ‘느낌’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사람을 만나면 도리 없이 바싹 서는 촉 같은 게 있다. 평가하고 싶어서는 아니었지만 감이 먼저 반응하는 그것. 특히 연애와 사회생활과 대인관계를 오래할수록 촉은 똥촉이 아니라 ‘굿촉’으로 변해 가는데 그럼 알게 된다. 됐다, 임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 나는 결혼에 있어 누구의 조언도 들을 필요 없다고 전한다. 다만 자기 내면에 귀 기울이세요 하고 말하겠다. 의식하지 않아도 내면은 계속 일치와 불일치를 말하고 있을 테니까. 이 사람이다! 혹은 결혼까지는 좀 아닌 거 같아. 확신이 안 서, 라거나. 머리보다 내면이 더 믿을만하다. 내면이 곧 당신이기 때문이다.     



Q. 마지막으로 3년을 버텨준 배우자님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나는 독일의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 주장처럼 부분은 전체를 대변한다고 믿는 자입니다. 부분은 전체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전체는 부분을 통해 알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기에 부분만으로도 전체를 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의 3년은 부분이지만 전체를 관측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지난 3년이 우리의 여생을 전체로서 설명해준다는 생각입니다. 3년을 잘 지내왔으니 남은 70년도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3년인가, 에 관하여 스스로 대충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고백하자면 인생사 3년을 넘긴 인연은 없었습니다. 아마 그와 내가 ‘우리’가 될 것은 아닌 만남을 해왔기에 그렇겠지요.     



그래서 3년은 내게 몹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잘 지내왔으니, 앞으로도 잘 지낼 겁니다. 고맙습니다. 나의 부분이자 전체. 오늘의 영광을 당신에게 돌립니다.     



어리숙한 나와 결혼해주어 고맙습니다!






위는 네이버 연재 중인 글로, 원본에 해당합니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4947032&memberNo=38753951&navigationType=pu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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