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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Aug 31. 2023

시댁이 외국이면 좀 편하긴 해, 린정(2/2)

제24화

(글에 생생함을 더하기 위해 구어체로, 그것도 낮춤말을 이용해 썼습니다. 실제 친한 동생(김 그녀)과 나누던 대화 그대로를 싣고 싶었거든요. 뭇 독자 여러분을 향한 반말은 아님을 전함으로 오해를 제거합니다. 그저 유쾌하게 읽어주시기만을 바라며, 지난 연재에 이은 글 시작합니다).     



- 지난 글 : 시댁이 외국이면 좀 편하긴 해, 린정(1/2)



손 : 그런 면에서 일단 난 명절에 아무데도 가지 않을 수 있어. 명절 연휴가 5일이면 5일 내내 집에서 놀고, 먹고, 여건이 허락하면 남편과 여행을 가는 거야. 참고로 시댁에 가지 않으니 공평하게 친정에도 가지 않지(웃음). 엄마에게 ‘이번 명절은 각자 쉬고 조만간 따로 날 잡아 만납시다’ 하면 엄마가 뭐라고 할 거 같아? 우리 딸 주중에 일하느라 고생 많았을 텐데 모처럼 맞이한 연휴, 푹 쉬라고 해(어떤 때는 용돈도 준다니까). 딸 가진 엄마 대부분 똑같은 대답을 할 거야. 엄마는 딸이 편히 지내는 게 좋은가봐. 그게 가슴으로 느껴져.   


  

반짝 방학 같은 연휴에 친정길 마저 미루는 처지인데, 하물며 시댁이 아무리 좋은들 명절에 가야 한다면? 피곤하지 않았을까? 일단 명절이라는 명목으로 뭔가를 챙겨야 한다는 부담이 작동하기 시작할 거야. 며늘아기 가면을 쓰고 있어야 한다는 텁텁함도 있을 거 같고, 하필 그 날과 명절이 겹쳐 생리 중이라고 누워 있겠다고 말하기도 힘들 거고, 사실 이 모두는 ‘한 시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다’ 며 시댁 가 있던 친구가 보낸 메시지 내용 중 일부기도 해. 그 애 말에 따르면 자꾸 자기한테 뭘 하라고 하신데 시댁 어른들이. 남편도 사회생활하고 자기도 일 하는데, 남편이 거들려고 하면 가 쉬라고 하면서 걔더러 나와서 하라고 하신데. 서운해서 엄마한테 말하면 엄마는 ‘다 그런 거’라며 미움 받지 않게 잘 하라고 한데.     



도서 <방귀쟁이 며느리>. 참고로 난 방귀 안 낌! Purenessㅋㅋㅋㅋㅋ(농담)



그러다 부글부글 끓었던 속이 집에 가는 차 안에서 폭발한데. 그럼 남편은 다시는 명절에 집에 오고 싶지 않다고 한데. 둘의 다툼으로 차 안은 꼭 활화산처럼 뜨겁다가 금세 차갑게 식어 시베리아가 된데. 보지 않았어도 보게 되는 광경을 그 애 입에서 듣게 돼. 장황하지.     



그렇기에 우리 부부에겐 명절 후 다툼은 있을 수 없어. 우리 둘은 명절에 집에서 티비 보고 있거든. 다툼의 씨앗 자체가 제거된 셈이야. 팔자 좋은 소리로 들릴 수 있겠지. 하지만 이것은 ‘시댁이 외국에 있는 건 좀 짱’이라는 플렉스(flex)적 발언이 아니라 실은 한국의 며늘아기를 존경한다는 말이야. 나라면 잘 해내지 못했을 것 같은 일을 어찌되었건 척척 해내는 그들을 보면 나는 ‘존경’이라는 표현을 써. 어쩌다 시댁이 외국에 있어, 내게 빨간 날에 불과한 명절이 그들에게는 다발적으로 이벤트가 벌어지는 날이잖아. 그들은 대단한 거야. 남편분 조차 말이야.      



그런데 웃긴 건 있지, 내게 시댁 방문 후 외상에 관해 줄곧 털어놓는 걔들도 꼭 말끝마다 그러더라. ‘어머니도 시어머니에게 당한 게 많아 그러신 걸 거야.’ 시life가 쉽지 않다는 거지, 그게 꼭 시어머니가 미워서만은 아니라는 뜻이겠지. 꼭 나더러 자기 시어머니를 미워만은 말아 라는 뜻이겠지.     



‘다 알지만 받는 상처까진 어쩔 도리가 없어서 털어놨구나.’ 그래서 이렇게 이해하고 말아. 그래서 며늘아기는 한 번 더 힘들 테지. 이해하려는 마음과 미워지려는 마음 그 어딘가에서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을 테니 말이야. 그게 정말 며늘아기를 힘들게 하는 거야. 콸콸 시원하게 미워하고 휙 후련하게 던져버릴 수 없는 마음이라. 보살이 되어 매번 마음을 다스리고 다스기를 반복해야 하니까. 보면 그래. 나한테 시어머니에게 받은 상처를 하소연 하다가도 죄스러운 마음을 금치 않아. 그래도 좋은 분이신데, 내 남편을 낳고 길러주신 고마운 분인데…, 하고 또 자신을 다스려. 참 고되겠다 생각해. 한없이 시어머니를 욕하기만 하는 친구는 내 경우에 단 한 명도 못 봤어. 고로 최고 편하려면 싱글로 사는 게 답이겠지만(웃음).     



도서 <방귀쟁이 며느리>. 어머니, 나 방귀 껴도 됨?



그런 면에 있어 우리는 (시댁감이 적어 그런지)연애하는 것처럼 살아. 명절에? 그냥 쉬어, 잘 쉬어.     

또 하나 편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건 며느리 압박, 즉 ‘며느리라 해야 하는 마땅한 역할 같은 것’을 스스로 느끼고 또 외부로부터 느끼지 않아서 일거야.     



이 부분에 있어 자유로운 게 가장 큰 것 같아. 언어를 몰라서 그런 듯해. 주변에 보면 때맞춰 전화해야 한다는 압박을 갖는 애들이 있더라. 그게 꼭 며늘아기 소양인 것처럼 잊혀질만하면 전화를 걸어. 반면 나는 일단 튀르키예어를 잘 몰라. 해봐야 올해 7살이 된 시누이보다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야. 불편하지 않냐고? 너한테만 솔직히 말해줄게. 있지, 일부러 덜 잘 하고 싶은 것도 있어. 얌생이처럼(웃음웃음). 이건 마치 콩고왕자 조나단이 편의 따라 한국어 실력을 감추는 것처럼, 언어도 모르는 게 약으로 통할 때가 있어서 그래(웃음).     



그러나! 이제부터가 진짜야.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어. 모국어가 다른 외국인과 결혼하기 전부터 느낀 거지만 언어가 전부를 대신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언어란 인간이 효율적 소통을 위해 창작한 도구이지만, 엄밀히 말해 언어가 없어도 소통할 수 있고 요즘 드는 생각은 오히려 언어너머로 더 많은 마음이 오갈 수 있어.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단어는 ‘사랑’ 밖에 전할 수 없지. 하지만 그가 내게 전하고 있는 그 마음 그대로를 온전히 받아들이면, ‘사랑’이상의 거대한 진심을 건네받을 수 있게 돼. 너무 추상적이었나?     



아무튼 내가 하고 싶던 이야기는 언어가 부족해도 마음을 나누기엔 언어너머의 것들이 충분히 역할하고 있기에, 튀르키예어에 미숙한 나로서는 어쨌거나 시댁 생활에 좀 편리한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 정도.    


 

마찬가지로 언어가 다르듯 살아 온 문화가 다르기에 사실 나는 튀르키예에서 며늘아기에게 뭘 바라는지, 바라는 게 있기는 한지 잘 몰라. 무지함에서 오는 무구함이 있어, 어린아이처럼. 그건 시부모도 잘 알고 있지. 그렇게 그들과 나 사이엔 대대손손 은밀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그 무의식적 ‘시댁-며늘아기’ 관념이 없어. 시댁이 외국에 있어 좀 편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게 해.



그렇게 네 덕에 내가 누리고 있는 호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었네. 상대적이라 그런 거겠지만 어쨌든 한국 며늘아기를 떠올리면 난 조금 많이 편하다고 할 수밖에.     



한편 내가 누릴 수 없을 것을 김 너는 누리고도 있을 거야. 모든 것에는 이면이 있어 절대 옳거나 그를 수 없고, 마찬가지로 절대 좋거나 나쁠 수만은 없으니까. 너 또한 찾아봤으면 좋겠어. 그리고 말해줘. 너의 경험이 글이 될 수 있게.



- 이전 글 : 시댁이 외국이면 좀 편하긴 해, 린정(1/2)


   




위는 네이버 연재 중인 글로, 원본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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