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
(글에 생생함을 더하기 위해 구어체로, 그것도 낮춤말을 이용해 썼습니다. 실제 친한 동생(김 그녀)과 나누던 대화 그대로를 싣고 싶었거든요. 뭇 독자 여러분을 향한 반말은 아님을 전함으로 오해를 제거합니다. 그저 유쾌하게 읽어주시기만을 바라며 글 시작합니다).
다음은 어느 하루, 결혼 5년차에 해당하는 김 그녀가 물어온 질문에 대한 답을 재구성한 것으로 그날 김 그녀는 시엄마에게 받은 상처로 마음에 흉이 진 날이었음을 참고해 주셔라. 물론 그녀는 국제커플에 반대되는 국내커플에 속하며, 한국의 ‘시(媤)’ 정서를 흠뻑 느낄 수 있는 이곳에서 시life를 ‘받아들이고’ 있는 상태임 또한. 그렇게 김 그녀는 질문을 해왔다.
김 : 은경, 시댁이 외국에 있으면 어때요?
아, 질문이 잘못 됐나.
시부모님이 외국사람이 어때요? 많이 달라요?
은경도 매체며 주변에서 익히 들어 알겠지만 사실 한국 시life 만만치 않잖아요. 오죽하면 ‘시월드’라는 은어까지 생겼을까요.
저는 비아냥거리듯 만든 그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는 데에 거북함을 느끼던 1인데요. 그런데 결혼하고 보니 막상 쉽지 않아요. 저도 종종 힘들거든요. (시)어머니를 좋아하고 소중한 우리남편 낳고 길러주심에 너무 감사하지만, 한 번씩 윽 하고 상처 받을 때가 있어요.
오늘도 그런 날이었어요. 어머니 생각나서 작은 선물 하나를 사갔는데요. 어머니가 뭐라고 하셨는지 알아요? 고맙다는, 정말 건성으로 던진 인사 한 마디 후 다른 집 며느리가 그 댁 시어머니에게 준 선물과 비교를 시작했어요. 이거 가격 얼마 되지도 않아 보인다고도 하시면서 포장 뜯은 채로 한 편에 밀어 넣어버리시더라고요.
그때 제 기분이 어땠을지 짐작 가죠? 민망한 정도가 아니라 후회까지 밀려오더라고요. 괜히 사왔다. 비교만 당할 거면, 선물을 가격으로만 치환할 거면 뭐하러 사온 거지. 그때 속상한 기색 하나 못 내고 억지로 웃고 있어야 했던 제 자신을 보며 정말 아렸어요. 그러며 돌아가신 엄마 생각도 나고. 우리엄마는 안 그랬을 텐데…. 나도 모르게 엄마랑 시 어머니랑 비교하게 되면서 왈칵 눈물이 목젖 위로 올라오려 하라고요. 공연히 주방으로 가 물 한 잔 삼키며 눈물을 눌러 내렸어요. 어머니를 미워하고 싶지 않은데, 어머니는 진짜 제 마음을 모르시는 걸까요? 자꾸만 뭘 바라시고….
미안해요. 하소연이 너무 길어졌다.
아무튼 궁금해요! 그래서 시부모님이 외국분이면 어때요? 시댁이 외국에 있으면 뭐가 좀 달라요?
손 : 글쎄. 어떨까?(웃음)
훅 들어온 질문에 은경에 해당하는 나는 생각이란 걸 하기 시작한다. 남편이 외국사람이 아니라 시댁이 외국에 있다는 그 잡채에 관하여, 김에게 답하기 위하여.
손 : 솔직히 말하면 한 번도 생각해 본 일 없던 질문이라 지금 즉시 떠오르는 ‘시댁이 외국인 후기’ 같은 게 없긴 한데. 왜냐하면 시댁이 외국에 있어서 튀르키예인 훈과 결혼한 건 아니니까. 훈이 좋았는데, 평생 그에게 종속되고 싶을 만큼이었는데, 그래서 결혼할 수밖에 없다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는데 그렇게 결혼하고 보니 시댁이 외국에 있네? 그것도 직항 타고 장장 12시간을 날아야만 갈 수 있는 그곳에 있네? 시차는 6시간, 우리가 한참 드르렁대며 잠을 자고 있을 때 그곳은 이제 막 저녁식사를 시작할 시간. 시엄마․아빠와 대화를 하기엔 너무도 먼 당신네?
시엄마가 튀르키예어로 말하면 나는 못 알아들어 씨익 웃어 보일 수밖에 없고, 시아빠가 남편에게 왕왕 소리 높이더라도 나는 또 알아듣지 못해 적당히 자리를 피할 수 있고. 가고 싶다고 갈 수 없고, 그래서 비행기 삯과 가공할 시간을 모아 한 방에 갈 수 있고. 반면 (아직 그런 일은 없었지만)가기 싫다면 시댁행을 미룰 핑계가 충분하고.
그렇게 일곱 빛깔 무지개 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부딪힘이 극도로 적다 보니 아무렴 시life가 존재한다는 느낌은 거의 없어. 아, 오해는 하면 안 돼. 여기서 시life는 한국의 그 생활을 말하는 거야. 너는 나보다 더 잘 알겠지. 네 시부모님의 경우 대대손손이 한국인이었고 너는 거기 며늘아기로서 시life를 5년이나 지속하고 있으니까.
오히려 내게 시댁은 가족 같아. 또 하나의 가족도 아니고, 그냥 나의 일부로서 가족. 나를 지탱하는 힘. 그 느낌의 근원은 글쎄. 꼭 시댁이 외국인이라서, 시부모가 외국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하면 또 그건 아닌 거 같아. 여러 가지가 맞물린 듯해. 우선 서로 다르다는 걸 너무 잘 인지하고 있어. 다름을 인지할 때 존중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잘 생각해 보면 다툼은 ‘나는 너랑 같다고 생각했는데 왜 너는 달라?’에서 시작하거든. 그런 것처럼 튀르키예 엄마아빠는 내가 그들과 다른 생활양식 속에서 살아 온 한 인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 그래서 나를 방치하시는 걸까?(웃음) 그건 몰라도 내게 (튀르키예식)며늘아기로서 기대하는 바는 거의 없으신 듯해. 아무튼 다름을 인지하고 거기서 시작된 존중이 너무 중요한 거 같아. 그게 참, 나로서는 고마운 일.
한편 우리는 잘 만날 수 없기에 한 번 만날 때마다, 그 기다림이 너무 강렬해 그런지 함께 있는 1분 1초를 안도와 고마움으로 보낼 수 있어. 무언가를 바란 상태로 서로를 만나는 게 아니라 얼굴 맞댄 채 밥 한 끼 먹을 수 있어, 그것만으로 충분한 우리 만남이라고 해야 할까.
(손을 턱에 괸 채 잠시 생각하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네 질문에 답이 있던 거 같아. 시댁이 외국에 있으면 달라. 다르긴 달라. 그리고 말하며 곱씹어 보니 솔직히 시댁이 외국에 있어서 편하긴 한 거 같아.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다.
우선 다들 보면 명절을 제일 힘들어 하잖아. 간만의 휴일인데 시댁까지 가 궁둥이 붙일 틈 없이 일해야 한다는 압박, ‘시댁에 가야 하는 구나’ 하고 크게 호흡하고 갔더니 돌아오는 건 애 안 낳느냐는 은근한 쑤심, 오랜만에 본 당신 아들 살이라도 빠졌으면 잘 해먹이라며 돌아오는 핀잔, 살이 찌면 쪘다고 관리 좀 시키라는 훈시, 그러며 딸 같다던 내 걱정이나 관심은 어디 하나 없는 그분. 며늘아기에게 바라기만 하는 시부모님. 명절에 시댁 가기 싫을만해. 요새 저는 안 가고 남편만 보내는 며늘아기도 많아졌다고 들었고. 남편도 이해하는 추세.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것보다 낫다는 심정이겠지. 그래서 장 언니도 남편과 합의 하에 안 간다더라. 대충 들어보니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가 어마어마하던데.
그래서겠지? 물론 시댁 나름이겠지만, 주변 대다수 며늘아기를 보면 명절 시댁에 가고 싶지 않아하는 거 같아.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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