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나에겐 튀르키예 국적의 외국인 남편이 하나 있다. 이름은 훈, 그가 태어난 나라는 대대손손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국민 90%이상이 믿고 있다(고 미디어에서) 말하고 있고 여하튼 대다수 이슬람 신자인 것은 맞다고 보여진다. 비근한 예로, 나의 시부모부터 종교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슬람교. 반면 며느리인 나는 종교가 없다. ‘굳이 꼽자면 불교?’라고 말하는 축에 속하긴 하지만 이것은 ‘굳이’ 고르라 할 경우에 한정하고, 그래서 고르라면 찬송가 대신 불경을 고른다는 점에 지나지 않다. 남편 훈은 굳이 말할 것도 없이 무교다. 엄격히 말하면 열여덟 살 전반까지 이슬람 신자였다가 열여덟 살 후반부터 믿지 않게 되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유는 지극히 사적이라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시부모는 (특히 시엄마)신실한 종교인임에도 어찌 무교인 나와 결혼을 허락 할 수 있었는가, 하면 이는 The power of love로 이겨냈다고 할 수밖에는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무교라는 것 보다 문화차이에 더 크게 신경 쓰던 시부모였다. 여기서 문화란 종교 이외의 살아온 배경, 언어, 식습관 등을 아우른다. 그래서 문화적 다름이 보다 현실적인 문제라고 생각한 듯하다. 어쨌거나 사랑 뒤에 숨은 훈과 나의 무모함 덕에 결혼에 골인했다.
허나 시부모의 종교적 태도는 무시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못 될 때가 있다. 특히 시댁이 있는 튀르키예에 가면 그렇다. 시엄마나 시아빠는 나를 그들 첫째 딸쯤으로 여길 만큼 애정한다. 이 부분을 며늘‘아기’인 나, 모를 수 없으며 그렇기에 무교임을, 한국은 국민 다수가 믿는 특정 종교가 없음을 인정한다. 한국이란 나라는 그런 나라, 자란 환경이 다르므로 문화적 배경 또한 다르겠거니 하고 고개를 끄덕일 뿐.
하여 코란(이슬람교 경전)을 읽어라, 라마단엔 금식을 하자, 히잡으로 너의 검고 섹시한 머리카락과 목덜미 살을 가려라, 다리 결을 내보이지 마라, 돼지를 먹지마라, 하지 않는다. 거기 있어도 나는 시원시원하게 팔 다리 내놓고 다니며 나를 위해 내 하고 싶은 도리를 다 하고 다닐 수 있다. 어느 시댁 생활에 비교할 수 없는 자유스러움이 있고 이런 나를 나로서 받아주는 시부모에게 깊은 감사를 느끼는데.
하지만.
유일하게 시부모, 그리고 시아빠 보다 시엄마와 종교적 룰로 작은 스파크 튀길 때가 있으니, 다름 아닌 맥주 때문에. 시엄마는 맥주가 오줌 같다고 했다. 누리끼리한 액체에 보글보글 거품이 낀 그게, 오줌 아니고 뭐냐고. 어느 날 훈에게 물었단다.
“아니, 엄마. 마셔보지도 않고 오줌이라뇨? 거 신성한 맥주 앞에 너무한 거 아닙니까?”
그 말을 전해들은, 맥주를 취기 있는 콜라쯤으로 생각하는, 나는, 즉시 반감이 들었다.
발단은 인스타그램이였다. 종종 우리는 내면에 심취한 나머지 내 계정을 염탐하는 그들까진 안중에 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예쁘게 찍어 적당한 문구와 함께 게시물로 업로드 하고 싶다는 마음 밖에는, 그날도 그런 날의 하루였다. 남편 훈과 차갑게 달궈진 맥주를 각 1깡씩 마시기로 했다. 저녁 식탁엔 약 1시간쯤 냉동 숙성시킨 맥주가 깨질 듯 차가운 유리잔에 담겨 있었고 그 모습을 본 나는 흐뭇한 나머지 즉시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역시 불금엔 맥주지!” 대충 이런 감탄도 적어 보냈다. 그때만 해도 나는 후에 있을 (후폭풍 까진 아니더라도)바람 풍(風)은 예상하지 못한다. 사진 업로드 후 유리잔으로 짠, 입으로 짠 하는 소리와 함께 벌컥벌컥 따가운 줄도 모르고 맥주를 들이켰다. 목젖에 터지는 슈팅스타처럼 기분도 디스코 팡팡 터졌다.
그렇게 몇 달을 건너 시댁에 온 날. 아침 먹는 자리였다. 식탁엔 집 앞 가게에서 사온 따끈한 빵과 치즈 세 종류, 살구잼, 체리잼, 꿀, 카이막, 감자튀김, 토마토와 오이 샐러드 가득 한상 차림을 두고 엄마아빠와 나 그리고 훈이 둘러앉았다. 한국엔 반찬이 밥도둑이라면 튀르키예에선 잼이 빵 도둑인 셈인데, 우왁스럽게 잼을 빵에 척척 바르던 그때. 불현 듯 추궁이 들어왔다. 손으로 먹을 만큼의 빵을 뜯던 시아빠가 씨익 웃으며 훈에게 말했다. “비라 블라블라블라~” 여기서 비라(bira)란 튀르키예어로 맥주를 뜻한다. 거의 맨 처음 배운 튀르키예어라 잊지 않고 있었다. 시아빠는 맥주에 관한 한 뭔가를 전하고 있는 거였다. 훈은 천연색색 알아듣고 있었을 테였다. 조금 전까지 큰 목소리로 정치에 관한 자기 의견을 피력하던 훈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그러다 고개를 살짝 떨구며 잼을 향하더니 이런저런 말을 버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얼버무리기였고 나는 대충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감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러나 불리할 때만큼은 나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한국인이 된다. 튀르키예어를 모르고 들어도, 들을 수 없는 게 된다. 다만 훈과 비슷한 각도로 고개를 떨군 채 음식에 집중해야만 했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 그날이 ‘맥주 오줌 설’의 시초였다.
시엄마 반응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이슬람교에선 몇 가지 터부시 하는 음식이 있다. 하나는 돼지고기 또 하나는 술인데, 맥주는 술에 속하는 터.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에 어찌 쓰여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죄를 상징하는 음료로 나타나있음은 분명해 보였고 그런 까닭에 시엄마는 태어나 술 한 방울 마시지 않은 청정 무알콜 인류였다. 튀르키예엔 전통 술 라크도 있고, 맥주도 있으며 위스키나 와인 등 술이 없지 않으나 그녀는 믿음에 따라 마시지 않았다. 그 믿음만은 우리도 지키기를 바라신 거겠지.
그렇지만.
이제와 말하는 거지만, 사실 시엄마와 시아빠 눈길을 피하고는 있었지만 나는 할 수 있다면 말하고 싶었다.
어머니, 그런데 그 오줌, 너무 청량하고 맛있어요. 제 경험상 튀르키예에서 만든 그 오줌 같은 맥주가 훨씬 맛있던데요 어머니. 에페스랑 보몬티는 특히 제가 듣기만 해도 흥분하는 브랜드인데요, 어머니. 한 번 시음이라도 해보는 건 어떠실는지. 미관으로 평가하지 마시고 일단 잡솨보고 다시 이야기 하는 건 어떨까요.
허나 ‘며늘’아기 라는 번쩍 든 내 정체성에 그저 시선을 회피할 수밖에는.
“마시지 마러. 몸에 좋지도 않은 걸.”
튀르키예에 차(tea) 문화가 있다면 한국엔 술(alcohol) 문화가 있다고 훈이 말해도 오줌은 넘사벽이었다. 훈은 “알겠어요”하고 의미 없는 대꾸로 이 불편함을 일단락 지었고 그 다음날 밤인가.
우리는 안탈리아 올드 타운에 가 에페스 한 병과 보몬티 한 병을 시켜 땅콩에 피스타치오와 함께 목구멍 파티를 즐겼다. 엄마한테는 비밀로 해야겠어 인스타그램에는 올리지 않았다. 그녀 정신건강에도 편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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